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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May 21. 2020

진격의거인

간단한 리뷰 입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멋진, 최소한 탄탄하고 확실하게 짜여진 세계관이죠. 현대와 가상의 세계를 짜집기한 이세계물의 근본은 다양한 세계관에 대한 목마름이라 생각합니다. 진격의 거인은 도입부에서부터 확실한 설정을 보여줍니다. 흡사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암울하고 희망이 없는 세계관을.
 
인류는 인간을 먹는 식인 거인에 의해 멸망했고, 소수의 생존자들이 거대한 벽안에서 살아갑니다. 너무나 압도적인 거인들은 인간을 먹는 것 외엔 어떤 목적도 갈망도 없습니다. 인류는 거인을 이길 수 없다. 오직 그 현실에 눌려 조금이나마 벽 안에서 삶을 이어갈 뿐이죠.
 
그런 현실에 반기를 드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벽 안의 사회에서 치안을 지키고 벽을 관리하는 군인들 중 바깥세계로 나서는 조사병단. 자유의 날개라 불리는 이들은 거인을 죽이기 위한 무기를 가지고 인류의 천적 거인과 맞서 싸웁니다.
 
주인공 엘런은 어려서부터 벽 안에 사는 부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조사병단을 동경했습니다. 비록 벽 바깥에 나간 조사병단이 늘 괴멸 수준의 피해를 받고 돌아온다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거인들의 습격에 벽의 일부가 파괴되고 인류의 영역은 또 한번 빼았깁니다. 어린 엘런은 어머니의 죽음을 눈 앞에서 바라보고 절망에서 찾아낸 분노를 불태웁니다. 모든 거인을 쓰러뜨리고 말 거라고.
 
시간은 흘러 병사가 된 엘런은 상위 10위권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정식 병사가 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운명처럼 찾아오는 시련의 순간을.
 
다시 한번 거인의 발자국이 남은 벽 안을 짓밟습니다. 거인을 죽이기 위해 훈련받은 소년소녀들은 전의를 불태우지만 다가오는 것은 허무할 만치 잔인한 죽음. 친구를 구하고 거인의 위장 속에 들어간 엘런은 최후의 순간까지 저항합니다.
 
그리고 벌어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흡사 그간 거인에 짓밟혀 온 모든 인류의 분노가 형상화된 듯한 압도적인 현실이.
 
이후 하나의 상징이자 인류의 희망이 된 엘런은 조사병단에 소속되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입체기동이라는 허구적 재미와 더해가는 의문, 절망의 드라마가 거친 선의 작화로 펼쳐지죠. 벽안의 권력 다툼과 비밀을 풀어가는 와중 많은 이들이 죽어갑니다. 자신들이 바친 심장이 인류의 희망에 밑거름이 될 거라 믿으며.
 
벽안의 세계가 조금이나마 안정되고 엘런과 그 일행들이 최후라 여겼던 싸움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의 잔인함에 뒤지지 않는 비극을 넘어 찾아낸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야기는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감당하기 힘든 진실 아래 그간의 의문점들이 거진 해소됩니다. 
 
몇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롭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지금까지 다소 순진하고 감정적으로 보였던 엘런은 잔혹하고 차가운 청년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자신을 막으려는 이도, 도우려는 이에게, 스스로 말합니다. 자유를 손에 얻겠다고.
 
진격의 거인을 신간까지 본 감상은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가혹한 싸움'입니다. 초반 거인에게 저항하는 조사병단. 벽 안의 권력 다툼에 이어지는 세계의 진실까지 모든 것은 거대한 힘 앞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의 발악이자 의지입니다.
 
후반부에 들어 약간 허무주의 적인 면도 보이지만 30권의 마지막은 노예로 지내온 이천년의 역사를 넘어 마침내 시작된 저항으로 보였습니다. 이제 곧 완결이 멀지 않았다는 예측이 있는데 과연 자유를 향한 엘런의 싸움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기다릴 뿐입니다.
 
진격의 거인의 작화는 초반에 흥미를 잃는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거칠고 가다듬어 지지 않았습니다.  의문이 계속되는 이야기는 벽 밖의 세계가 드러난 후 많은 분들이 작품을 하차할 만큼 호불호가 갈리고 있고요.
 
어둡고 암울한, 검게 말라붙은 핏자국이 연상되는 이 작품은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파격적인 설정을 등에 업고 무척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수께끼와 입체기동이라는 만화적 과장. 의외의 진실과 긴장감있는 이야기 전개.
 
어두운 줄거리와 그에 저항하는 인간이라는 드라마는 '진격의 거인'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가 밝혀지는 장면에서 하나의 정점을 이룹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자유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모든 분께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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