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y 김명현

난 벌레 보듯 아리마와 그 휘하 부하들을 훑어보았다. 가브리엘은 나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그의 영향력 아래 있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성모 마리아의 안티테제로서 반대의 이름을 쓰고, 타락천사 특유의 호기심과 자존심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부하들은 천사나 악마가 아니면서 짐승의 기운도 없었다. 살아있긴 하지만 누더기를 기운 듯 억지가 느껴지는 것이 가공된 생명 특유의 느낌이 든다.


난 인상을 찡그렸다. 적의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가식적인 분위기와 위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브리엘이 말 한대로 날 먼저 찾아왔지만 생각보다 빠르고 갑작스러워 아까는 나도 두려워한 게 사실이다.



“뭐가 어찌 됐건 너희들은 내 적이다. 인사를 오래 끌 생각은 없어. 아니면 그저 인간에 불과한 나를 죽여 너희들의 앞날에 변수를 줘 보든가.”



“무슨 말씀을. 그랏죠 님에게 무례를 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지금껏 괴로우셨고 앞으로도 힘든 나날이 기다릴 텐데..저희와의 만남으로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착각하지 마라. 난 쾌락에 이끌려 천국을 떠난 천사가 아니야. 욕망을 시험하며 흰 날개를 저버린 것들과 같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게다가..”



난 늑대이던 시절 그랬듯 이를 드러냈다. 분노로 싸늘해진 얼굴에 차가운 경멸의 눈으로 아리마를 주시하면서.



“난 위험한 일 하지 말라는 부탁을 또 어기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아. 생명을 기워놓은 반푼이들과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타락천사를 두려워할 근본도 아니고. 싸움을 걸 생각이 없다면 사라져.”



아리마는 방긋 하고 웃었다. 동방박사들이 경의를 표한 어린 어머니의 그것과 비슷한, 하지만 인간의 마이너스 감정을 복잡하게 얽어 놓은 미소였다. 우아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더니 바로 사라져 버린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일곱 명도 그렇고, 천사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난 고개를 들었다. 가느다랗고 처연한 초승달과 부드러운 어둠을 주시하며 말한다.



“당신은 잔인하고 오만해. 저녁 달빛이란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아.”



주는 모든 것을 보고 듣는다.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부정해도 겉으로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지, 하지만 결국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조물들의 믿음을 시험할 뿐이야. 난 긴장이 풀리는 와중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또 한번 가브리엘의 명령에 따라야겠구나. 인간 상태의 힘을 전부 발휘할 것도 허락받았고 협조도 있을 것. 지금의 난 먹고 자야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일 뿐이다.



“좀 먹어 두자. 피곤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리아와 함께 빵을 먹었던 아까 일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점차 소란스러워 지는 번화가를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내일 아침부터 갑자기 일상이 변하진 않을 테니 가게 문도 열고 일도 해야 했다. 아리마와 만났을 때의 고요는 곧 빛을 잃었다. 음식 냄새와 말소리에 묻히듯 할 때, 문득 늦은 밤 돈 보스코 신부님을 지키며 어두운 숲을 걸었던 때가 기억난다. 내 삶에서 몇 안 되는 감사의 시간이.



좀 끌리는 게 있는 가하고 한참을 걸었지만 별로 구미가 당기질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결국 빨간 실타래 까지 오게 되었는데, 잠을 잘 기분이 아니다. 시장을 향해 걸으며 날고기라도 좀 씹을까 싶었고 결국 의식을 되찾았을 땐 시장에서 가장 큰 정육점 앞에 있었다.



“어머, 견회 씨?”



정육점과 고깃집을 동시에 운영하기에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직접 발골 작업과 고기 자르는 일을 하는 서른 살 여사장 백안이 나를 반가이 맞이한다. 살짝 여윈 체격이지만 타고난 강골이라 시장에서 무력으로 손에 꼽힌다. 고기가 익는 불향과 소주 내음으로 가득한 분위기 사이로 나는 가벼이 손을 흔들었다.



“잠이 좀 안 와서. 오늘도 수고가 많아.”



“요즘 통 얼굴을 못 봤는데 이렇게 와 주고, 고기 먹고 싶어서 왔어? 이리 와서 앉아, 오늘 돼지 목살 아주 좋은 게 들어왔어. 돈 안 받을 테니까.”



“거절할 수 없는 걸. 나중에 우리 가게 오면 케이크 서비스 할게.”



“아주 좋아!”



남자 직원 세 명에게 일을 맡긴 후 백안은 나를 불판 앞으로 잡아끌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에 기름이 떨어지며 나는 탄내가 굉장하다. 흰 지방과 분홍빛 고기가 식욕을 돋우어 마음 같아선 그대로 씹어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늑대였을 땐 타락천사 입장이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후 식욕을 알았다. 백안이 익은 고기를 능숙하게 잘라줄 때까지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괴로웠고, 기대가 되었다.



“아주 맛있어.”



입안에 스며드는 육즙과 고기 특유의 감칠맛. 불맛을 즐기는 건 꽤나 좋은 경험. 백안은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표현도 충분히 하고 나에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여인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은 내게 버거웠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잠이 안 온다고 돌아다니는 성격은 아니잖아.”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긴 했어.”



“요즘 주먹을 많이 쓰는 것 같긴 하더라. 애들한테 술 담배 파는 집에 가서 한바탕 했다며. 석범 씨가 같이 있었다지만 너무 위험한 일을 하진 마. 리아도 걱정할 텐데.”



리아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조금 어색하다. 나와 리아가 얼마나 가까운지 알고 있기에 언급되는 것일 테니. 난 고기를 집어 먹는 걸로 잠시 감정을 숨겼다.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하군.



“있잖아. 리아 얘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나도 걱정이 돼서 그래. 견회 씨가 싸움에 강하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자꾸 그렇게 막 나가다가..혹여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 좀 더 몸 생각도 해가면서 살아야지.”



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혹여 무책임하거나 쌀쌀한 느낌을 준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백안에겐 더 상처가 되리라. “고기 맛있었어.” 무의미한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백안은 뭔가 말을 하려던 표정이었지만 아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견회 씨. 난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어. 진심이야.”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게 내 나름의 예의. 줄곧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빨리 거두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다음 날, 가게를 연지 얼마 안 되어 선호가 찾아왔다. 나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듯한 얼굴. 줄곧 리아를 향하고 있는 시선엔 소년과 같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어제 봤던 그 초콜릿을 앞으로 내밀 때 리아의 얼굴엔 깊은 행복으로 그린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선호와 리아는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을 뿐. 그 시선엔 담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난 섣불리 말을 얹지 않고 가만히 그 모습을 주시한다. 현실로 돌아온 듯 눈을 깜빡이던 선호는 내게 목례한 후 바로 가게를 나섰다. 초콜릿 상자를 손에 쥐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리아는 23살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린 소녀를 연상케 한다.



“잘 어울려.”



내가 말을 했을 때 리아도 꿈에서 깬 듯했다. 얼굴을 붉히며 “몰라요..”말끝을 흐리는 모습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손님들이 올 거란 걸 알기에 얼른 초콜릿을 카운터 밑 서랍에 넣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쿠키도 종류별로 하나씩 주세요.”



자주 오는 게임 회사 팀장 석현 씨. 난 얼음을 퍼서 플라스틱 잔에 붓고, 물을 따른 후 에스프레소를 붓는 일련의 과정 동안 생각한 바를 정리했다. 소분하여 포장한 쿠키를 종이봉투에 넣는 사이 머릿속에서 반복했던 질문을 특정한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쿠키 묶음을 내밀며 말했다.



“석현 씨. 혹시 괜찮으면 ‘여왕의 십자가’란 모임에 대해 알아봐 주실 수 있나요?”



석현 씨는 단순한 단골이 아니었다. 해커로서 일류인 그는 위험한 일을 곧잘 하는 내게 정보 수집으로 도움을 준 적이 있는 바. 석범 씨, 사환 신부와도 알고 지내는 그는 매니아적인 성격이었지만 불의를 참지 못했다. 눈치도 아주 빨라서 내가 케이크 데코를 하라고 리아를 주방으로 보낸 것과 신경 쓰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 것까지 알아 챈 듯, 은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과장된 어투로 인사했다.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고 테이블 손님들에게 라테 아트를 그려 대접하는 와중 난 어제 만난 아리마를 생각했다. 늑대의 육체 안에 갇혀 있던 시절 나는 천사의 능력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주의 뜻은 지극히 잔인하며 불합리하다. 어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한 천사의 힘. 일곱 명의 부하들에게 느껴진 이질적인 기운 역시 천사로서 생명을 가공한 것 같았다. 내가 가진 지혜로 추측하자면 낙태당한 아이들의 영혼을 억지로 만든 육체에 구겨 넣은 것인 듯하다. 명령에 따르는 인형으로서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내게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사의 힘을 가진 자신이 인간의 한계에 갇힌 나보다 우위에 있다는 여유와 자만심에 의한 것.



영업을 마칠 시간, 초콜릿을 소중히 품고 가는 리아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느끼기에 앞서 노트북을 열어야 함이 불쾌했다. 감히 성모의 이름을 역으로 이용하는 반푼이, 내 기쁨을 방해한 죗값은 제대로 치러야 할 거다.



석현 씨가 보낸 메일을 열어 본다. 요즘 신작 게임이 베타 서비스 중이라 할 일이 많을 텐데도 늦지 않게 알아봐 준 것이 고마웠다. 여왕의 십자가에 대해선 생각보다 정보가 있었다. 오랜 세월 그림자 속에서 세력을 키워 온 이단의 분파로서 약 10년 전부터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까지. 아리마가 스스로 타락천사란 걸 밝히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터. 기독교 교리에서 마리아를 신격화 시키고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가져온 바탕은 이단의 전형적인 작태였다. 점차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과 주로 십대 아이들에게 게임 감각으로 다가간다는 부분을 읽을 때 내 미간은 불쾌하게 구겨져 있었다.



난 메일을 꼼꼼히 확인한 후 바로 삭제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난 오른 손으로 턱을 받힌 채 생각에 잠겼다.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이단은 그 수가 되는 편. 해외에 연결된 경우도 상당히 많고, 여왕의 십자가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주가 이렇게 나에게 직접 명령을 전할 정도는 아닌 듯한데.



체력을 비축해 놓는 것도 중요했다. 난 방에 들어가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했다. 아주 천천히, 팔 하나에 체중을 실으며 최대한 집중하며 힘을 쓴다. 백번을 채우기까지 전해지는 고통은 몇 번이고 해도 질리질 않아. 맨몸으로 훈련된 전사들이 지배했던 고대 세계 때의 훈련법이 현대까지 전해지는 사실에 재미를 느낀다. 한손 팔굽혀펴기와 외발로 앉았다 일어서기. 숱한 전설의 영웅들이 애용했던 동작을 2800년을 겪어온 영혼이 인간의 육체로 반복한다. 꽤나 흥미로운 현실이 아닌가. 거의 사십분을 꽉 채워 맨몸 운동을 하자 몸은 땀으로 젖었다.



가브리엘은 내게 인간의 힘을 끌어낼 것을 허락했다. 인간의 극점에 있었던 위대한 권성들 수준의 힘을 낼 수는 있지만 그래 봤자 결국은 죽어야 할 육체. 강력한 능력을 가진 타락 천사와 그 부하들을 당해낼 순 없으리라. 찬 물로 샤워를 하는 와중 살갗에 닿는 물방울이 뜨겁게 느껴질 만큼 긴장한다.



사실, 돈 보스코 신부님과의 첫 만남 때도 지금 못지않게 두려웠다. 아무리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다지만 인간은 인간이었다. 약한 면도 추한 모습도 있겠지. 그가 사랑했던 소년들처럼 무구한 웃음을 지었던 신부님. 자신을 따라오는 나를 그랏 죠라 부르며 집에 가라고 했던 그 목소리가 그리웠다. 칼을 들고 달려드는 상대 앞에서도 당당히 선 모습. 괴한들을 정말로 물어 죽이려 했던 나를 오히려 말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고 싶습니다. 보스코 신부님.”



내가 겪어온 선인들은 상당히 많았다.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모습 또한 수없이 봐왔고. 책으로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민초들 중에서도 천사가 부끄러울 만큼 선하고 용기 있는 이들이 많았다. 인간들의 어두운 면으로 추잡한 상흔을 새겼을지언정 종교는 어둠을 밝혀주는 데 큰 역할을 한 존재. 내가 주를 비난하면서도 결국 명령에 따르는 것은 인간들의 상냥한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신으로 욕실을 나왔을 때, 그리운 친구가 옆에 있음이 느껴졌다. 천사 외에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건 악마. 우수한 천사였지만 불필요할 만큼 악마들과 친하게 지내어 가브리엘의 총애와 경계를 받았던 내 과거였다. 그런 시선을 피해 곧잘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지옥의 2인자. 벨제붑의 영혼이 내 안식처에 와 있었다.



“오랜만이다. 오랜 벗이여.”



“일부러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난 악마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이 세계의 모든 재산과 권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경의로써. 인간들이 악마들을 천사와 대립하는 존재로 묘사한 건 최악의 오류 중 하나다. 예수님 역시 악마의 유혹에서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던가.



“큰 짐을 지게 되었다는 걸 들었다. 되도록 본체로 오고 싶었지만 지옥의 질서를 깨뜨릴 수 어 영혼 하나로만 대하는 걸 용서해 다오.”



고위악마들은 영혼이 여러 개가 있다. 본인은 미안하다 했지만 친구인 나를 위해 영혼 중 하나를 드러낸 건 천사의 축복 비길 수 있는 예의였다. 난 두 손을 모으며 화살을 쏘듯 기도했다. 친구와의 만남에 감사한다고.



“이단 하나와 싸우는 것뿐 입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타락천사 상대하는 거니까..당신과 비교하면 하찮은 나지만 인간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걸요.”



“그래도..”



내 방은 그냥 보기엔 텅 비어 있었다. 나 역시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기에 친구가 곁에 있음을 알아도 혼자 중얼거리듯 말할 수밖에. 그런 시선으로는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허공에서 하나의 눈동자가 어둠을 찢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구슬 같은 크기였는데 점차 주변을 핥듯 안구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 정도의 도움은 주고 싶었다.”



벨제붑의 목소리는 울림이 크고 부드러웠다. 난 손을 뻗어 눈동자를 감싸 쥐었다. 오른쪽 눈가에 갖다 대자 원래의 눈동자를 먹어치우는 듯한 떨림이 일더니 곧 전혀 다른 시야가 펼쳐졌다.



“이건..”



난 정말로 감탄했다. 아무 것도 없는 내 방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모든 사물이 정확하게 보인다. 한번 고개를 돌리는 사이 움직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정도의 동체 시력이라면 아마 총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느낌이 가르쳐 주는 대로 눈을 두 번 깜빡이자 곧 보통의 시력이 돌아오고, 다시 두 번 깜빡이니 아까의 시선이 펼쳐지는 것까지 확인할 때 난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 안력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내 영혼의 한쪽 눈을 주는 것이라면 과하지 않겠지. 가브리엘도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다. 너의 싸움에 바치는 약간의 성의야. 이미 모든 것은 정해져 있다. 그 시나리오대로 움직일지언정, 조금이라도 네게 도움이 되면 좋겠구나.”



바람이 부는 듯 일어나는 가벼운 떨림. 벨제붑의 영혼이 사라짐을 느끼며 난 두 손을 모았다. 이미 일상처럼 되어버린 기도문 중 하나를 암송하면서.



하느님. 하느님은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뼛속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고통. 이전 성모송을 외웠을 때와는 다른 아픔이 전율처럼 피어났다. 인간의 육체를 가진 지금의 나에게 기도문이 괴로움으로 다가올 리는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주에게서 등을 돌린 내 영혼이 초래한 현실. 주를 찾을 때마다 극심한 격통이 온 몸을 흔든다. 그리고 몇 번이고 되풀이 되며 울리는 목소리.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이시듯 주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 되기를 바라셨나이다.



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의 한 구절이 미친 송아지마냥 내 안에서 날뛰는 고통을 똑바로 바라본다. 아마 내 눈은 눈물과 핏물이 복잡하게 얽혀 충혈되어 있으리라. 하지만 벨제붑이 선물한 눈동자엔 아무런 고통도, 심지어 이질감도 없었다. 내 입에 지어진 웃음은 그 모든 것을 인정한다. 기도문이 불러온 괴로움마저 주시하며 악마의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는 타락천사. 나의 정체성은 그걸로 충분했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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