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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내가 늑대가 되어 이 세상을 방랑할 때, 몇 번 살인을 한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을 물어 죽이고, 때로 죄를 짓고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던 이들의 최후를 잔혹하게 물어뜯어, 고통에 몸부림치며 후회하는 와중 죽어가게 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다. 보스코 신부님을 모셨을 때 몇 번 악한들을 그 자리에서 물어 죽이는 걸 참는 건 꽤 힘들었다.

난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푸르게 보일 만큼 처연한 달빛 아래서 피로를 다독인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험하지 않은 산에 자리한 약수터.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한 현재 시간은 새벽 2시 17분이었다. 부지런한 사람들도 아직은 수면의 장막에 덮여있을 시간이다.



“이걸로 하나인가.”



발밑을 내려다본다. 붉은 피와 어지러운 추상화처럼 흩어진 고깃 조각들이 벨제붑에게 받은 악마의 눈동자에 선명히 비추었다. 굳이 찾으려고 하지 말라고, 그들이 먼저 다가올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말은 사실이었다. 삼십분 전 나는 아리마가 보낸 첫 번째 사도와 만났다. 인간의 피부 조각을 실로 얼기설기 기워놓은 낯짝을 한 녀석이 눈은 초롱초롱했다. 체격은 2미터는 될 법한데 움직임은 싸구려 마리오네트를 연상시켰다. 녀석이 왔다는 건 벨베붑의 눈동자에 신호가 오는 것으로 알았다. 가브리엘이 내 눈동자를 적절하게 잘 이용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지금 서 있는 약수터로 나왔고, 첫 번째 싸움을 치루었다.



아리마는 장난을 좋아한다기보다 잔인한 성격이었다. 완력은 강했지만 첫 번째 사도는 어린 아이만도 못한 싸움실력이었으니. 물론 약물로 만든 근육이 엄청나게 커서 한 대라도 맞았다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걸 넘어 뼈까지 박살나겠지만 악마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마추어 복서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속도의 공격을 맞는 건 농담으로도 불가능했다.



자기방어의 본능이 풀린 내 손가락은 무리한 활동으로 파열될 듯 떨려온다. 난 첫 번째 사도의 살갗을 한 뼘 한 뼘 잡아 찢었다. 예측한 대로 아리마의 사도들은 낙태당한 아이들의 혼이었다. 고통을 느낄 때 자제를 못하고 울부짖는 모습은 죄책감이 들 만큼 연약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멈출 순 없었지만.



난 왼쪽 눈과 턱 아래쪽이 떨어져 나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탄생을 경험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은 영혼을 동정할 수밖에 없는 걸까.



“용서를 빌진 않는다. 네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머리를 잡고 있던 내 손에 핏줄이 불거진다. 난 기도하듯 양 손바닥을 맞닿게 하고자 힘을 주었고, 반쯤 부서져 있던 얼굴이 납작한 고깃덩이에 안구와 뇌수, 뼈가 비어져 나오는 와중 읊조렸다.



“주님께서는 저희를 사도직에 부르셨으니 성령의 불로 저희를 새롭게 하시어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과 힘을 합쳐 이 세상에 진리와 자유.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이제 언급하기도 귀찮아 지는 아픔. 그 타전에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갔고 가엾은 사도의 얼굴은 그 몸뚱이가 그렇듯 역한 채취로 스러져 버렸다. 내 옷에는 피가 묻어있고 내장의 채취가 배었으리라. 이걸 내 힘으로 뒤처리하자면 다음날 뉴스거리에 나오기 딱 좋을 터였다.



“안녕..”



난 피와 뇌수에 젖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검은 두건과 망토를 깊게 눌러 쓴 악마. 해골과 뼈만 남은 손이 보이는 와중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하얗게 빛나는 커다란 낫은 달빛을 받아 서늘한 기운이 머물렀다. 천사의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들을 인도하는 죽음의 악마가 버림받은 태아를 거두기 위해 찾아왔구나. 악마는 사방에 뿌려진 피와 박살난 뼛조각 고깃덩이를 향해 낫을 한번 휘둘렀다. 연필로 진하게 겹쳐 적은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듯 점차 옅어지는 싸움의 흔적. 태아의 원혼과 내 잔인함을 대변하듯 흔적은 한번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낫을 빙글 빙글 돌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마침내 첫 번째 사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오랜만이야.”



난 말끔해진 손을 몇 번 쥐었다 피면서 말을 늘였다. 죽음의 악마. 흔히 사신이라 불리는 내 오랜 친구는 용무를 마친 후에도 침묵 속에 머물렀다.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예의임을 알기에 내 마음은 반가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어서 가봐. 오래 있다간 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친구임은 확실했다. 사신은 노래를 불렀다. 달과 별의 이면을 알고 있는 처연한 음색은 인간이라면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웠다. 기도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악마의 존재로 위안을 얻는 나를 위한 노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친구는 떠났고, 난 이명처럼 남은 노래를 읊조리며 빨간 실타래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내 유일한 혈육인 현희에 대한 꿈을. 인간 모습이 아니라 나와 함께 주를 따르던 천사 시절의 모습이었다. 우주의 끝까지 몇 번이고 함께 날았던 행복은 무척 오랫동안 나에게 위안이 되어 준 기억. 가브리엘이 지정한 이의 주변을 맴돌며 삶을 지키던 나와 생명의 여로를 끝마친 이들을 인도하던 현희. 각자 의무를 다하는 와중 서로를 보며 웃었던 그때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눈을 떴을 때야 꿈이란 걸 인식했다. 방의 불을 켜고 서랍을 뒤적이는 짧은 움직임이 무척이가 길게 느껴진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네 식구가 함께 찍었던 유일한 사진이 잘 봉해져 있었다. 아직 첫돌도 맞지 못한 현희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내가, 슬픔이 아닌 기쁨을 택한 부모님의 품에 자리하는 모습.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아무리 모욕하고 무시하려 해도, 결국 난 주의 손을 벗어날 수 없구나. 본래 기상 시간보다 삼십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더 눈을 붙일까 하던 사이, 시간에 어울리지 않게 스마트폰에서 벨 소리가 들려온다. 번호를 확인하기 전 현희 일거라고 생각한 건 정확했다.



“현희야. 무슨 일이야?”



두 명의 수행원이 있는 한 신변에 위협이 일어 날리는 없고, 고민이라도 있는지 싶었다. 현희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 오른쪽 눈에서 찌릿한 아픔이 느껴진다. 그 순간, 비행기 안에 있는 현희의 모습이 이미지로 선명히 비췄다.



“응 오빠. 나 지금 한국으로 가고 있어. 아마..내일 밤 열두시 쯤 김포 공항으로 도착할 거야. 일정을 공개하지 않아서 특별히 사람들이 오진 않을 것 같아. 오빠 토요일에도 가게 문 안 연다고 했으니..혹시 와 줄 수 있어? 얼굴을 보고 싶어.”



현희는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한국 책 몇 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발음 연습을 한 것 같다. 가까이서 캠코더로 촬영하는 듯한 이미지가 내게 비추는 데 신뢰할 수 있는 두 수행원이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알기로 현희는 영화 촬영 건으로 인도에 간 걸로 알고 있다. 오늘은 목요일. 내일 밤이라면 가게 문 닫고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일정.



“응. 갈 수 있어. 케이크 좀 가져갈까?”



“가지고 오기 번거롭잖아. 쿠키면 돼. 오빠가 만든 쿠키 하나씩 먹어보고 싶어.”



“좋아. 많이는 못 먹을 테니 몇 개씩 챙길게. 인도에서 맛있는 것 좀 먹었어?”



“라씨가 맛있더라.”



통화를 길게 잇고 싶었지만, 눈 밑이 검어질 만큼 피곤해 하는 게 이미지로 다가오니 그럴 마음을 접게 된다. “내일 김포 공항으로 갈게. 연습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좀 눈을 붙여.” 전화기를 끊자 이미지도 사라졌다. 벨제붑의 영혼 중 하나여서 일까. 눈동자에는 이런 힘까지 있구나. 새삼 놀라움과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가게 준비를 하고, 이전 여왕의 십자가에 대해 조사해준 석현 씨에게 주려고 쿠키를 포장할 때였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석현 씨가 가게 안에 들어왔다. 내가 쿠키 봉투를 주는 것조차 잊을 만큼 그의 얼굴엔 흥분과 상기된 마음이 비치고 있었다.



“견회 씨.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세요?”



리아가 놀랄 만큼 석현 씨의 태도엔 거침이 없었다. 늘 매니아적인 말을 하거나 아침 할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평소완 확실히 다르다. 짧은 순간 석현 씨와 나의 접점을 생각하는 와중 현희가 생각이 났다. 애니메이션 성우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현희. 난 주변 사람들에게 현희의 팬이라고 곧잘 말하고 했다. 약간 예상이 되는 가운데 티는 내지 않고 되묻는다.



“무슨 일이신가요?”



“오늘 저녁 12시에, 김포 공항에 김현희가 귀국한대요. 벌써 관련 커뮤니티에선 그 사실로 난리에요.”



현희는 분명 조용히 돌아온다고 말했는데, 수행원들이 그 사실을 알릴만큼 가벼운 사람들도 아니고. 파파라치나 사생 팬들이 얽힌 일일까. 리아는 내가 바로 대응하지 않자 자기가 이어 말을 붙였다.



“근래에 김현희가 출국했다는 기사는 못 본 것 같은데..어떻게 알게 되신 건가요?”



“유튜브에 영상이 하나 올라왔거든요! 어제 오후에 올라온 영상인데, 해외에서도 반응이 대단해요. 한번 봐보세요! 두 분 다 팬이시잖아요? 아차, 오늘 야근 안하려면 오늘 일 빨리 끝내야 하니까 빨리 가 봐야 겠네요. 유튜브에 ‘인도에서 현희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검색 꼭 해보세요!”



난 결국 쿠키를 못 건냈고, 아메리카노도 사지 않은 채 석현씨는 나가 버렸다. 현희의 광팬인 건 알고 있었지만 리아와 나에게 그 얘기를 하려고 일부러 일찍 온 게 어떤 의미론 대단하군. 리아는 십대 학생 같은 석현의 모습에 악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석현 씨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 한번 봐 보세요. 나쁜 일 같진 않아요.”



유튜브 앱을 여는 간단한 동작에도 동요가 느껴진다. 어제 통화를 했으니 큰일은 없겠지 하면서도 무슨 영상인지 신경 쓰였다.



“인도에서..현희에게..”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스마트폰을 누를 때였다. 흰 바탕에 푸른색 선이 그어진 수녀 복을 입은 여인의 이미지가 맨 위에 자리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녀들과 접점이 있던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하며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오른쪽 시선에 빛이 한번 확 끼치더니, 수녀가 말하는 순간이 영상으로 펼쳐졌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여러분. 전 인도 캘커타에 있는 수녀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주일 전, 현희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저희 수도원에 찾아 왔습니다.”



현희는 수행원들을 데리고 왔지만 혹여 강압적인 분위기를 걱정했는지 멀리서 바라봐 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일인가 경계하는 수녀들에게 최대한 친절한 태도를 보이며 자신을 밝힌다. 한국의 연예인으로 평소 선행에 관심이 많음과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수녀님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2주일 간 함께 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그녀는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보름 동안 저희를 돕고 싶다고..너무나 간절히 부탁해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그녀는 열심히 저희가 하는 일을 했습니다. 한센 병 환자들의 상처를 닦아주고, 정신 지체인들의 수발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현희는 정말 아름다웠다. 살이 문드러진 이들의 몸을 씻어 주며 조금도 불편해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하게 웃는 와중 진심으로 병자들을 걱정했다. 음식을 흘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이들에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게 달래준다. 현희의 손길이 닿는 사이 괴로워하는 신음은 시냇물 소리처럼 잔잔하게 잦아들었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를 향한 노랫소리는 영원을 연상케 한다. 어린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을 위해 노래하는 현희에게 다가갔고, 다정한 손길과 미소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과 봉사의 마음이 있다 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 자유롭기란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밝게 웃으며 우리들과 함께 했습니다. 마치 천사처럼..아니, 천사라 해도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지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어제 헤어지면서 그녀가 유명한 연예인이고, 비밀 일정으로 인도에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 주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현희의 모습이 보이는 와중 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리아가 걱정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내 동생이 실천하는 선행을 바라볼 뿐.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웃음과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내는 현희에게서 천사 시절을 떠올리는 것, 주가 나에게 준 형벌일지언정 난 그 시간을 선명하게 느꼈다.



“제가 그녀에게서 단 한 가지 슬픔을 느낀 건..그녀가 저희를 찾아왔을 때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떠나버린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어떤 칭찬도 축복도 바라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그녀가 한국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는지는 모릅니다. 다만..그녀가 저희에게 준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 영상을 보시는 한국인 여러분. 부디 그녀가 돌아왔을 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잘 돌아왔다고..참 좋은 일을 했다고..저희가 정말로 그녀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대신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현희와 그녀의 나라를..이 영상을 보시는 한국의 여러분을 축복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난 가게 문을 닫은 후 약속한 쿠키를 가지고 김포 공항으로 갔다. 현희의 소속사는 폭주하는 요청을 외면하지 못하고 현희가 오는 비행기 편 시간대를 공개했다. 공항에는 약 오십명쯤 되는 팬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소속사는 팬클럽과 협의하여 인원을 조절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구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전해진 메시지는 다행스럽게도 받아들여 졌다. 현희가 비밀일정으로 떠났다는 것과 현재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팬들은 놀라운 자제심을 보여주었다. 결국 하루가 안 되는 사이 인원을 추려 생각보다 적은 사람들이 현희를 기다린다.



“왜 안 오지..”



“다음 비행기가 마지막일 텐데..”



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는 게 눈에 띄었다. 종이학을 실로 연결한 목걸이는 몇 시간만에 만들었을 테지만 호화롭게 보일 만큼 크고 풍성했다. 현희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 중 부부 만화가 한쌍은 액자에 넣어진 현희의 세밀화를 들고 까치발을 하며 시계를 보곤 한다. 잡지와 티브이에 출연한 인기 파티셰가 마카롱과 엔젤 케이크를 소중히 품에 안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건 성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있던 나는 현희의 수행원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았다. 그들이라면 이미 유튜브와 소속사에서 언질을 받았겠지. 둘 다 수트가 아닌 케주얼 복장이었는데 빠른 시선으로 팬들의 규모를 확인한다. 고용인의 안전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지친 현희를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한 듯하다. 잠시 후 현희가 캐리어를 끌고 걸어 나왔을 때, 팬들은 도저히 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서 와요! 어서 와요!”



“잘 돌아왔어요! 수고 많았어요!”



“보고 싶었어요! 정말 예뻐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요!”



“김현희! 김현희! 김현희!”



난 눈 밑이 아릴만큼 감동에 젖었다. 팬들은 아주 큰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까. 조용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격해짐을 꾹 누르며 현희가 놀라거나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 정도의 성량으로 환호를 이어갔다. 놀란 기색이 있었지만 곧 차분한 마음으로 가볍게 손을 흔드는 내 동생. 수행원들은 현희의 양 옆을 지키는 사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고용인만큼이나 감동했으리라. 팬들이 건내는 선물을 대신 받아 가져오는 동작에서 이런 상황에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은 백금과도 바꿀 수 없는 전설적 충견을 연상시켰다. 팬들은 현희에게 다가가지 않고 언저리를 따라 걷는다. 현희는 차량에 탈 때까지 줄곧 팬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답례했다. 난 모든 과정을 바라보는 사이 준비해온 쿠키를 가방에 잘 넣었다. 오늘 주는 건 무리일까 싶다가도 현희에게 따로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동생에게 잘 다녀왔다고 인사하고 싶었으니까.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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