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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짙은 슬픔. 내가 아리마의 첫 번째 사도에게서 느낀 감정은 그것이었다. 태어나지 못한 생명에게 어울리는 마음. 생각보다 더 순수하고 아픔을 견디지 못했던 그 모습이 짙은 음각으로 내 의식에 새겨졌다.

난 생각을 거두고 가게 일에 집중했다. 리아에게 커피를 맡기고 내가 데코를 하고 있었다. 리아는 그날 그날 자유롭게 하도록 했지만 나는 정형화된 양식으로 반복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손님들이 말을 얹기도 하고 재미있게 받아주는 경우가 있어 다행스럽다.



리아로선 오랫동안 해온 데코를 손에서 놓아 허전할지도 모르지만, 커피 내리는 감각과 라테아트를 점검 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아침 아메리카노를 전부 리아가 내렸고 가게에 앉는 손님들이 주문하는 라테는 하나 같이 멋진 형상으로 피어났다.



“어때, 잘 되어 가는 것 같아?”



내 물음에 리아는 조금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높은 이상을 가진 이들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 있는 법. 스스로에게 엄격한 면이 있어서인지 리아로선 실력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듯하다. 난 부드러운 손길로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것에 반감 없이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너무 마음을 급하게 갖지 마.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 같아서..약간 조급해 지는 느낌이 들어요. 견회 오빠가 평소에 하는 걸 더 잘 봐뒀어야 했던 것을..”



“일하는 와중 중간 중간 커피도 해봤잖아. 은아 씨가 인정했다는 걸 잊지 말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은아 씨는 자격이 없는 사람한테 기회를 주는 성격이 아니잖아.”



리아의 눈에 반짝하고 빛이 어렸다. 두 손을 모아 쥐며 마음을 정리하고, “라테 아트 한번 더 해보고 싶어요.”의욕적으로 우유를 피쳐에 따른다. “내가 마실 테니까 걱정 말고 마음 가는 데로 해 보렴.”혹여 재료 걱정을 할까 봐 말을 더하는 나로선 무척이나 믿음직했다.



하트 세 개를 겹친 멋진 라테 아트가 만들어 졌을 때였다. 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할머니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리아가 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흘려 넣을 때부터 그 모습을 바라본 듯했다. 혹여 집중하는 데 자신이 방해가 될까봐 신경을 써 준 걸까. 곧잘 찾아오는 정선 할머니는 리아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 걸 확인하듯 아주 천천히 가게 문을 열었다.



“안녕. 우리 딸. 너무 열심히 하네. 카피에 우유 타는 거지?”



“오셨어요? 커피 위에다 그림 그리는 거예요. 오늘은 믹스 커피 말고 이거 드셔 보세요.”



“세상에. 예뻐라. 어쩌면 이렇게 잘 해. 카피 위에 사랑이 피어났네.”



정선 할머니는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라테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오빠. 우유 값은 제 월급에서 빼셔도 되요.” 내가 마시겠다고 한 걸 할머니에게 드렸다고 굳이 말하는 리아에게 난 “그런 말 안 해도 돼. 내가 한잔 사드린 걸로 치면 되니까.” 가볍게 웃어 보였다.



“할머니. 앉아서 드세요. 조금 있다 데려다 드릴 게요.”



마침 가게에 자리가 났다. 의자에 앉은 정선 할머니가 천천히 커피를 후우 후우 불어가며 마실 동안 리아는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 들어온 카페 라테를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오늘 따라 잘 팔려나간 쇼트 케이크를 다시 데코 했다. 라테 잔과 깊이가 다른 일회용 종이컵으로도 결이 살아있는 로제타와 하트를 만드는 모습은 경탄할 만한 솜씨였다. 테이크 아웃 손님들이 나간 후 리아는 정선 할머니의 손목을 부드럽게 쥐었다.



“할머니. 이제 가요. 아주머니가 기다리실 거예요.”



“응. 우리 엄마 화내면 안 돼지.”



앞서 걷는 리아를 곧잘 따라 나선다. 두 사람의 모습을 여기까지 보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리아와 정선 할머니가 함께 걷는 형상을 그려보며 행복해하는 건 내 기쁨 중 하나. 사람들이 그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만족감에 젖어 조용히 눈을 감곤 했다.



케이크 시트를 만들까 해서 주방 안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리아가 오기 전에 오븐에 넣을 수 있을까 시간을 계산하는 와중, 오른쪽 눈에 바늘이 박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가게에 손님이 없는 게 다행이란 생각보다 직감적으로 위기감이 의식에 꽂힌다. 당연하게도 내 예감은 옳았다.



시선은 먼 거리에서부터 시장을 향해 다가오는 이를 삼인칭으로 바라보는 시점이었다. 마라토너를 연상시키는 일정한 뜀걸음인데 차림새는 소복을 연상시키는 하얀 색의 트레이닝 복이었다. 화장한 얼굴은 노파와 소녀의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인형과 같다.



“두 번째 사도인가..”



이런 대낮에 나를 노리고 시장으로 오다니. 무모하다 못해 가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보는 눈이 있으면 내가 제대로 못 움직일 거라 판단했다면 오산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만 있다면 싸움 따위 가장 소중한 이들이 보고 있다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리아가 없는 게 다행이군.’



이대로 내 가게로 오려는 건가. 리아가 시장까지 다녀오는 데는 삼십분은 걸렸다. 싸움을 위한 시간치곤 지나치게 긴 간격. 가게에 외출 중 간판을 걸어 놓고 다른 곳으로 유인할까도 싶었다. 리아에겐 메시지를 넣어두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한 편으론 긴장의 활시위를 걸던 참이었다. 오른 눈의 시야에 사도가 가게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확인할 때, 난 반사적으로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사도가 노리고 있는 건 리아였다. 천사의 능력을 가진 아리마라면 내 주변인들에 대해 파악하는 건 손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 무모한 게 아니라 지극히 철저하게 날 공략한 셈이었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인간의 육체라는 한계가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아직 리아와 정선 할머니는 시장 안쪽까지 가지 못했으리라.



“제발..제발..”



난 숨이 가빠 침을 흘리는 가운데서도 미친 듯 팔다리를 흔들었다. 점점 사도는 빨리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침내 시장 안으로 들어와 리아가 향하는 노점이 시야에 들어오는 곳까지 달려 들었다.



아직 시간이 있어. 따라잡고 만다.



최대한 지름길로 방향을 잡았다. 담 하나만 넘으면 노점에 바로 갈 수 있다. 예상대로 라면 탁 트여있는 길목에 도달했을 때, 난 아주 오랜만에 무릎 아래가 텅 비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4미터 이상의 화물차가 담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난 무릎을 꿇는 대신 바로 목표를 바꿔 큰 길로 내달린다. 담을 넘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노점으로 갈 수 있는 경로. 시장 사람들이 리아의 위기를 외면하진 않을 거란 내 믿음은 사실이었다.



사도는 리아와 정선 할머니의 앞을 가로 막았다. 화장으로 가려진 얼굴에 뚫린 입은 살짝 열려 있어 저능아를 연상케 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영상은 계속해서 오른 쪽 눈에 비친다. 사도는 십대 소녀의 체격이라 리아보다도 작았다. 리아는 의문과 걱정이 어린 표정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싸움을 거는 고양이처럼 몸을 숙이던 사도는 손을 내저어 부드러이 다가오는 리아의 손을 탁 친다.



강한 힘이었다. 충격이 어깨까지 전해졌는지 리아는 팔을 잡으며 몸을 숙였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정선 할머니는 노기를 띠며 사도를 밀려 했고, 사도는 어깨를 부딪혀 할머니를 쓰러뜨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시장 사람들이 나서려던 참이었다. 사도는 왼 쪽 손을 하늘을 향해 뻗는다. 길고 가느다란 날붙이. 창이라 해야 할 듯한 무기가 거의 3미터에 가까 길이로 솟구쳐 올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널 고통스럽게 죽게 하겠어.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오른 눈의 시선은 점점 내 시야로 돌아왔고, 쓰러진 정선 할머니 앞을 막아선 리아와 창을 휘두르려는 사도의 모습이 온건하게 비추었다. 이대로 달리면 리아 대신 창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창이 내 몸을 찌르는 순간 방향을 비틀면 리아와 정선 할머니를 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치명상을 입겠지만, 내 죽음 따윈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 난 분노와 간절함에 묶인 채 미친 듯 땀을 쏟으며 달리고 있었다.



채앵.



금속성 절규가 울려 퍼진 건 내가 리아를 감싸 안은 것과 동시였다. 창에 찔릴 걸 각오하고 있어 통증이 없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우리 딸! 우리 딸!”



정선 할머니는 절규하듯 몸부림치며 일어섰다. 내 품에 안긴 리아는 그때까지 두 손을 벌려 할머니를 보호하는 형상이었다. 나는 두 사람의 무사함을 확인하고서야 사도의 창을 막아선 이가 누구인지 알았다.



도검 소지 허가증이 필요 없는 길이의 단검. 해병대 무적도의 정석을 보여주는 움직임으로 창을 처낸 이는 신현이었다.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이웃의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였을까. 단검을 쥔 신현의 눈은 지극히 차갑고 날카로웠다.



“비켜..나 놀 거야..저 사람하고 놀 거야!”



사도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창을 내질렀다. 내가 대응하기 전 신현은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창 공격을 다시 한번 저지 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약 4미터. 상성 상 단검으로 창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신현은 해내고 있었다.



“욱! 견회 형님! 욱! 마리아와 정선 할머니를! 욱! 보호해 주십시오!”



숨 참는 소리가 이렇게나 아름답고 듬직할 수 있을까.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안고 있던 리아를 앉혔다. 정선 할머니는 엉엉 울면서 리아를 껴안고, 주변 사람들이 둘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사이 내 눈에는 나 자신이 두려워할 정도의 살기가 어렸다.



몸을 돌렸을 때, 사도의 창이 신현의 어깨를 찌르는 것이 보였다. “우욱! 으아아!” 신현의 짧은 머리카락 밑으로 핏줄이 불거져 나온다. 단말마의 외침은 고통이 아닌 기합. 어깨를 찔린 상태에서 신현은 전진했다. 손안의 단검을 회전시켜 날붙이를 잡은 후, 그대로 사도를 향해 던진다. 하얀 잔영을 남기며 날아간 단검은 사도의 어깨에 명중했다.



“아..파..아파...아파! 놀아야 되는 데! 저 사람하고 놀아야 한단 말야! 방해하지..마!”



아리마의 사도들은 고통에 취약했다. 어깨가 관통되어도 공격을 멈추지 않는 신현과 달리, 두 번째 사도는 단검을 뽑을 생각도 못하고 다리를 구르며 미친 듯 소리친다. 이미 시장은 소란으로 가득했다. 경찰에 연락하라는 외침. 손에 잡히는 걸 들고 우릴 돕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 점점 사람들이 몰려들자 사도는 나를 노려본다. 눈 밑으로 눈물을, 입으로는 침을 질질 흘리더니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빠른 동작으로 시장 바깥을 향해 달아났다.



리아와 정선 할머니는 무사하다. 신현의 부상도 크지 않음을, 창에 독이 발라져 있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사도를 쫓아 달렸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난 오른 쪽 눈을 두 번 깜박인다. 시야가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사도가 달아난 자리에 흔적이 선명히 새겨졌다. 최단 거리로 인도하는 표식까지 보여 이미 지친 몸으로도 효율적으로 추격할 수 있게끔.



사도는 계속해서 울면서 달렸다. 아리마가 도구로 쓰기 위해 이용한다는 것도 모르는 가엾은 영혼. 나를 죽인다는 목적 외에는 그저 아기일 뿐이다. 태어남이라는 마땅한 권리와 축복조차 받지 못한.



“아파..나..놀고 싶은데..당신이랑 놀아야 하는데..그래야 하는데..너무..너무 아파..”



아리마가 의식을 조종하고 있구나. 사도의 뜀걸음이 멈춘 곳은 인적이 없는 으슥한 뒷골목이었다. 난 손가락 끝에 의식을 집중해 천천히 주먹을 쥔다. 아까 했던 생각은 유효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웃들은 이곳에 없었다. 난 한 걸음 나아갔다.



“놀아 주마. 얼마든지.”



사도는 달아나기 전 창을 버렸다. 아까 창을 내뻗을 때 취한 동작을 생각하면 주술을 사용한 것 같다. 사도는 이번엔 옆으로 손을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와중 가느다란 창이 식물이 자라나듯 다시 한번 나타났다.



“아파..아파.. 하지만..놀아야 해..당신하고..그래야 하니까..”



창은 내 얼굴을 정확히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 벨제붑의 눈동자가 있는 한 물리적인 공격은 내겐 의미가 없다. 난 활처럼 옆으로 몸을 휜다. 창이 허공을 가르는 것까지 바라본 후 전진해 사도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힘 조절 따위 전혀 하지 않은 상태. 사도는 말 그대로 몸이 한 바퀴 돌아가면서 허공에 떠올랐다가 나가떨어졌다.



“일어나. 놀아 달라며.”



사도는 제대로 몸조차 추스르지 못했다. 새우처럼 몸을 말며 힘겹게 꿈틀거릴 뿐. 충격이 뇌까지 전해졌는지 머리까지 벌벌 떨며 구토를 반복한다.



“웨엑..웩..아..아..웩..아파..우웨엑..”



내 시선은 차가웠고, 짙은 경멸로 가득했다. 불쌍해 보인다고 봐주는 성격은 아니니까. 난 굳이 걸음을 옮겨 꿈틀거리는 사도의 앞까지 다가갔다. 멀리 떨구어진 창이 얼음 녹듯이 사라져 버리는 때와 맞추듯 손을 뻗어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그대로 손을 밑으로 내린다. 작은 머리가 지면에 부딪히며 나는 잔혹한 소리가 침묵을 두드린다. 나는 잇달아 사도의 머리를 내려찍었고 이마가 찢어지며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반복했다.



“아리마라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겠지. 명심해라. 한번만 더 내 주변 사람을 이용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시나리오고 뭐고 당장에 찢어 놓겠어. 이건 내 경고다.”



난 손에 가하던 힘을 반대로 해서 사도를 확 밀쳤다. 사도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입에선 거품을 뱉어내고 있었다. 눈은 완전히 돌아가 흰자위가 보이는 데다 고통으로 몸이 덜덜 떨리는 상태. 난 그 위에 올라탔다. 마운트 포지션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잔인한 동작을 반복한다. 주먹을 잇달아 내지른다. 얼굴 뼈가 함몰되고 코는 부러져 옆으로 눕고, 안구가 뼛조각에 찔려 피가 배어나올 때까지 계속했다. 얼마나 계속했을까. 나 자신의 의식이 흐려질 때까지 주먹질을 하다가 결국엔 지쳐 손을 늘어뜨린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가련한 영혼이 담겨있던 초라한 몸뚱이. 그 위에 달린 머리가 깨지고 부서져 제대로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난 하아..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잔인한 일을 했다. 죄책감이라도 가져야 할까. 입꼬리가 간질거린다. 어린 얼굴을 짓이겨 버린 후의 피로감은 내 입가에 미소로 피어났다. 난 웃고 있었다.



“기억해라. 난 이 이상의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내 목소리에는 웃음이 뒤엉켜 호흡과 더불어 기괴한 떨림이 묻어나온다. 살인을 대하는 내 사고방식은 천사라기 보단 악마에 가까웠다. 본래 악마는 타락한 천사가 되는 것이니 나도 마찬가지일지도. 몸까지 뒤로 젖혀 웃음을 토해낼 때였다. 약한 느낌의 리듬이 내 의식 사이로 잦아든다. 웃는 걸 멈추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분명하게 다가온 존재감. 아리마가 주변에 와 있었다. 시공간을 넘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주께서 풀어놓은 개치고는 무척이나 은혜를 베풀었군. 내가 한 경고는 확실하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두려워하고 있음이 느껴졌으니까. 죽음의 악마가 찾아와 흔적을 지울 때까지, 난 눈을 가늘게 뜬 채 분명하게 다가오는 떨림을 외면하고 있었다.



시장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린아이 같은 것이 찾아와 난데없이 폭행을 했다고 소문이 퍼진다. 그날 정선 할머니는 리아를 안은 채 의식을 잃을 만큼 충격을 받았고,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재차 물었다. 내가 사도를 쫓아간 것에서 뭔가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듯이.



“나도 모르는 일이에요.”



난 한마디로 모든 의문에서 고개를 돌렸다.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걱정하는 건 리아의 안전이었다. 다음날 평소처럼 출근한 리아를 되도록 편하게 대했지만, 사실 벨제붑의 시선으로 철저하게 파악을 했다. 눈빛과 몸 상태를 보면 큰 충격을 받진 않은 듯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을 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리아야. 괜찮아?”



“네. 여자아이 치고는 힘이 무척 셌지만..다치거나 하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되요.”



“그래도..조금이라도 쉬었으면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정말로 괜찮은 걸요. 저보다는 신현 오빠가 걱정이에요. 어깨에 상처가 크게 났을 것 같아서..”



리아의 선한 마음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싶다는 마음으로 피어났다. 신현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게 당연한 일이었다 싶을 만큼, 내가 알고 있는 리아는 천사조차 부끄러워 할 정도로 착한 여인이었다.



“그날 병원에 가서 같이 확인했어. 창의 폭이 좁아서 큰 상처는 아니었으니 걱정하지 마.”



“그래요? 아아..다행이다..”



리아의 얼굴에 어리는 짙은 안도감.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기는 모습에 내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 난 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리아는 어린 새처럼 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한다.



“그 아인..어떤 아이였을까요..? 정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무척..쓸쓸해 보였는데.”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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