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들의 걱정에는 웃음으로만 답했다. 설명할 수도 없는 문제고, 굳이 말을 더해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렇게 날 걱정해주는 것에 감동한 것도 사실이다. 수업을 마치고 뒷정리까지 한 후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런 전화로 내게 부탁했던 시현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눈빛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내게 말해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너라면 이미 조사는 다 했겠지. 여왕의 십자가라는 이단과 적대할 일이 생겨서.”
“네가 보통 인간이 아니란 건 알고 있어. 내 능력으론 신성함과 타락의 기운이 짙게 풍긴다고 느낄 뿐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시현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난 가벼이 손을 내저으며 모른 척 했다.
“그래 봤자 인간이야.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에 결국엔 죽어야 해. 평범하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 네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야.”
아무튼 귀신이라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쓴 웃음을 짓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허세였다. 줄곧 날 바라보던 시현은 주먹을 쥐어 가볍게 내 어깨를 친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움을 주고 싶으니까. 필요하다면 힘들다고 말해 줘.”
“명심하겠어.”
난 같은 동작으로 시현의 어깨를 때리며 답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시현에게 나에 대해 완전히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복지관에서 나왔을 때 저녁 여섯시 쯤 되었다. 번화가라도 돌아다닐까, 하다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은 마음에 카페에 들어갔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라 내가 추구하는 커피와는 방향이 다르지만 차가운 걸로 목을 축이고 싶은 기분. 직원에게 말할 필요도 없는 키오스크가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일부러 목소리를 내는 게 좀 촌스러운가. 어쨌든 번호표를 받고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은 것 같아 좀 의외였다. 시현의 빛나는 나무도, 내 빨간 실타래도 다 쉬니까 이렇게 사람이 있는 건가 생각하는 건 억측이면 좋겠다.
“12번 손님. 아이스 아메리카노 준비 되었습니다.”
말하면 냉큼 가서 받아 와야지. 난 “고마워요.”굳이 말한 후 쟁반에 담긴 잔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온다. 차갑고 씁쓸한 맛에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원두는 분명한 고급이고 인테리어와 인건비를 생각하면 비싼 가격도 납득이 된다. 새미 클래식 음악에 의식을 맡기고 잠에 빠져들 듯 의식을 가라앉혔다. 이단과의 싸움이라는 긴장감을 잠시 내려놓는 여유. 이런 시간도 있어야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차, 스마트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현희의 첫 번째 싱글 앨범 수록곡인데 내 통화음으로 쓰고 있다.
“여보세요.”
누군지 알기에 간단한 한 마디에도 무게가 실리는 기분이다. 언제나처럼 나에게 기쁨을 주는 목소리가 되돌아 왔다.
“안녕. 오빠. 잘 지냈어?”
“현희가 염려해 준 덕분에. 오늘은 시간이 났나 보네. 전화도 걸어 주고.”
“응. 요즘 제자들하고 연습하느라 조금..바빴거든. 오빠는 괜찮아? 오빠 주변의 시장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서 걱정이 되어서..혹시 위험한 일이 있던 건 아니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현희가 걱정할 만큼 내가 약하지 않다는 건 알잖아.”
“오빠가 강한 사람이란 건 알아. 그래도 사는 데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요즘도 시장 주변에서 좋은 일 하고 있어? 거친 일을 자주 하는 게 걱정이 돼.”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아. 이전에도 학생들한테 술파는 가게를 엎어 놓기도 했어.”
“그렇구나..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무튼..너무 힘들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제자들을 데리고 늘 강행군을 하고 있을 테니까. 가끔 티브이에 연습하는 모습이 나오잖아.”
말은 잠시 멈추었다. 현희의 제자들은 현희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선행을 베풀던 중 거둔 아이들이었다. 각자의 소질을 발견해 데려온 거라는 말 그대로 다들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현희의 혹독한 연습량을 따라가느라 노래와 춤에 있어선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약간의 간격을 두고 현희가 꺼낸 이야기엔 안타까움이 묻어 나온다.
“사실..조금 죄책감을 느끼기도 해.”
“제자들을 너무 혹독하게 대하는 가 해서?”
“역시 오빠야. 나에 대해 다 알고 있구나. 응. 다들 힘들게 살아온 아이들이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상황에 있던 아이들도 많고..”
“그때에 비하면 더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을까? 현희가 죄책감 가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
“그래도..아직 어린 아이들이니까. 더 자유롭게 놀기도 하고..친구들도 사귀면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데 내가 나의 이상을 위해 이용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현희는 진심이었다. 진정으로 제자들을 사랑하기에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 그 순간 내 오른쪽 눈에 바늘 같은 빛이 어린다. 트레이닝 룸 한쪽의 휴게실에서 나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현희. 벽 옆에서 숨은 한 여자아이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무척 마른 편이었는데 검은 머리카락은 귀밑 길이의 숏 컷이었고 눈에는 총기가 감돌았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 현희는 흐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눈물을 보인다. 여자아이는 가만히 숨어 있더니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벨제붑의 시선은 현희가 아닌 그 여자아이를 따라간다. 평수는 작지만 침대와 pc를 비롯한 편의시설이 충실한 방. 그림 그리는 취미가 있는지 타블렛을 꺼내들었다. 아주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만화를 구현하는 솜씨가 제법 재능이 있는 듯하다.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눈빛은 나이보다 몇 배는 더 진지하고 근사해 보였다. 현희의 무대에서 코러스로 노래하는 걸 본 기억이 난다. 시선은 곧 본래 시야로 돌아왔고 난 현희에게 따뜻한 말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며칠 후였다. 현희에 대해 검색하다가,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 게시판 중 화제가 되고 있는 만화 한편을 보게 되었다. 머릿결이나 옷주름 묘사가 어지간한 웹툰 이상이었는데, 사라라는 본명으로 공개되어 있다.
“내가 나의 이상을 위해 이용하는 게 아닐까..”
만화의 첫장면은 나와 전화 통화를 하는 현희의 모습이었다.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 삽화체로 그린 게 시선으로 흘깃 봤을 때는 알지 못했던 대단한 작화. 노력도 했겠지만 천부적인 소질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모든 예술의 기본 원리는 같다. 현희에게 인정받은 예술적 소양이 밑바탕 되었겠지.
“그런 게 아니에요.”
아만다는 컷을 나누어 자신을 포함해 모두 5명인 동료들의 모습을 그렸다. 흑인 소년 만델라. 아메리카 원주민 소녀 키쉬아. 쿠르드 족 소년 와엘. 중국 소년 곽서문. 팔레스타인 출신인 본인 사라의 과거가 나열된다. 배고픔에 못 이겨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만델라. 강뉴 부대 출신으로 병을 얻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우는 모습이 슬플 만큼 섬세히 그려져 있었다. 미국 빈민가의 위험한 생활에 노출된 채 의붓 아버지의 폭력에 절어 있던 키쉬아가 하늘을 보며 방울 방울 눈물을 흘리는 건 괴로울 정도였다.
소년병으로 끔찍한 전쟁에 던져진 와엘의 삶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건 파우더를 삼키며 고통을 달래고 글조차 배우지 못하고 세상을 노래하는 와중 커다란 눈동자엔 슬픔이 가득하다. 모조품 핸드백 공장에서 학대당하던 곽서문에게 배불리 먹고 편히 잠든다는 개념은 존재치 않았다. 학교에 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넝마가 다 된 무술 서적을 펼치는 사이 소년의 눈은 축축히 젖어 있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삶을 줬어요.”
폭탄이 떨어진 집터에서 혼자 살아남은 사라에겐 눈물조차 사치였다. 앞서 말한 친구들의 삶과 비교해 나을 것도 없는 그런 인생에 던져진 상황에서, 따뜻한 웃음을 짓고 있는 현희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상황에 있던 아이들은 반은 겁을 먹고, 반은 빛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는 모습이 펼쳐진다.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가는 법과 지혜를 가르쳐 웠어요.”
현희는 아이들을 깨끗이 씻어 주고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수많은 소년소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어서 아이들을 선별해 기회를 주자는 수행원들의 간언에 심사숙고하고,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다섯 명을 고르는 과정은 만화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 극적이고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당신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음이 행복해요.”
훈련이 시작되는 건 아침 8시. 5명의 아이들은 모두 새벽 5~6시 사이에 눈을 떠 각자의 자유 연습을 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과정. 글로 쓰기엔 간단하지만 몸으로 새기기 위해선 잔인한 집념과 고귀한 목적의식이 있어야 가능했다. 매일 땀을 양동이로 받아낼 만큼 운동을 하고, 성대의 피로도를 의식해 가며 노래 연습을 계속하는 와중 다양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늘 말하죠. 우리가 당신에게 선물이라고. 우리에게도 당신은 선물이에요.”
고된 훈련을 마치고 한 자리에 모인 밤. 가벼운 과일과 채소를 야식으로 먹으며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는 현희의 제자들 모습으로 만화는 마무리 되었다. 난 잠시 입을 벌린 채 여운에 젖는다. 내 동생이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소중한 존재라니. 2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를 괴롭혔던, 미카엘이 날개를 뜯는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구세주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님. 괴로운 십자가의 길에서 서로 만나시어 사무치는 아픔을 겪으셨으니 저희 마음에 사랑을 북돋아 주시어 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는 데에 장애 되는 모든 것을 물리치게 하소서.”
나는 곧이어 몰려온 괴로움을 생각했다. 약 1분 가까이 침묵만이 있을 뿐 내 몸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뭐야, 이게..”
기도문을 욀 때마다 적응 되지 않는 아픔에 쓸려가던 세월이 있어서 일까. 의문이 짜증으로 바뀔 만큼 지금의 평온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는 사이 어깨에 힘이 빠지며 예수님이 옆에 와 있을 알았다.
“내게 주어진 형벌 중 하나가 끝났구나.”
난 깊게 숨을 들이 쉬었다. 내가 천사 직을 박탈 당한건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 늑대가 되어 2천년 세월을 방황하고 인간으로 현신한 지금에 와서야 주는 내 괴로움을 하나 덜어주었다. 예수님의 배려일까. 가브리엘의 적선인지, 어쨌든 고통은 없다. 그것을 주의 은혜로 여기지 않고 현희가 준 선물이라 생각하는 것. 그게 내 나름대로 주를 찬양하는 방법이었다.
그 후, 주5일 동안만 가게 문을 여니 시간이 확실히 남았다. 여왕의 십자가에 대해 알아볼수록 점차 세를 확장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나에게 사도가 오는 일은 없었다. 주의 명령은 그들을 절멸시키라는 것이지만 가브리엘은 내가 먼저 공격하는 걸 허락지 않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다리는 것 뿐.
“이젠 기절 안하고 제법 일어나는 구나.”
한 대 맞고 기절하고 일어나 다시 덤비기를 반복하던 선호. 약 한달 쯤 된 지금 시점에선 어설프게나마 내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숨소리는 거칠지만 짧은 시간 안에 기초체력도 붙고 무엇보다 싸움의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는 성과가 드러난다. 난 게임과도 같은 즐거움에 취해 가벼운 주먹을 몇 발 날렸고, 선호는 두 번 정도 피했지만 코에 정통으로 주먹을 맞았다. 피가 주륵 쏟아져 나오는 사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 눈이나 인중. 정수리 같은 취약 부위에 비해 중요성이 간과되지만 코는 맞으면 지독하게도 아픈 급소 중 하나였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게 마음에 든다. 슬슬 한번 기절 시켜서 쉬게 해야겠다.
“퉷!”
큰 주먹을 날리려던 사이 내 시야가 붉게 가려졌다. 코에서 터져 입가로 스민 피를 머금었다가 갑작스레 내뱉은 것. 핏물이 제대로 눈에 들어가 난 순간 시력을 잃었고, 처음으로 선호가 내지른 주먹에 맞았다.
“아주 좋아!”
시야가 잘 보이지 않지만 반사적으로 동작이 큰 발차기를 날린다. 선호의 몸통 전체를 노려 피해가 크게끔. 뼈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뒤쪽으로 밀려 나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대담하게 암수를 쓴 선호는 내장에 전해진 위력에 토사물을 쏟았다. 피와 뒤섞여 엉망이지만 비칠비칠 일어나는 모습. 난 쓰라린 눈가를 훔쳐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설마 피를 뱉어 눈을 노릴 줄이야. 이제야 싸움에 요령을 파악하고 있구나.”
“아..아직..멀었습니다..”
숨을 씩씩 몰아쉬면서 자세를 갖춘다. 내 발차기를 정면으로 맞았다면 실신할 법도 한데.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사환이 선호에게 다가갔다. 선호는 주먹을 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고, 난 그러면 그렇지 하며 가벼이 손을 털었다.
“그간 목숨을 걸고 싸워온 보람이 있군요. 어지간한 수련 1,2년 보다 더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사랑의 힘이란 대단한 거야. 사람의 운명을 바꿀 정도니까. 아무튼 여자는 못 당해.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남자는 무적이야.”
“그렇죠..”
사환은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짓는다. 본래 착하고 강직한 신부이지만 내면엔 부드러움이 있겠지. 모든 인간은 연약하고 상처입기 쉬우니까. 직접 선호의 피와 토사물을 닦아주는 동안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 노숙자들이나 가출 청소년들을 선입견 없이 대할 만큼 무던하고 선량한 사람.
“옛날 생각이 나는 모양이야.”
사환이 내가 그랏죠 였다는걸 아는 만큼, 나 역시 사환의 출생에 관해 알고 있다. 사환은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부족한 살림에 나름 열심히 공부하며 어머니를 위했고, 한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 없는 건 이해하고 염려하는 마음에서였다. 신학교에 들어가 훌륭한 신학생으로 청춘을 바쳐 신부님이 된 것. 흔하다면 흔하지만 그렇기에 빛나는 삶의 여로라 할 만 했다.
“저도 나름 여러 일을 겪어왔으니 까요.”
사환의 어머니는 성실한 성격이었다. 하나 뿐인 아들이 배곯으며 살지 않도록 지인이 운영하는 중국 식당에 보내 일하게 하고, 본인도 열심히 품을 팔아 한푼 두푼 돈을 모았다. 하루 종일 양파를 까고 짬뽕 국물 튀는 철가방 들고 다니는 세월에도 부드러움은 잦아들었다. 동갑내기 중국집 딸과 소박한 미래를 꿈꿨던 것. 어른들의 반대에 밀려도 끝까지 건전한 황혼을 지킨 과거는 평범하기에 소중했다.
“지수 씨는 잘 지내고 있다고 하잖아.”
사환이 신학생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모라토리움을 하고 있을 때, 중국집 딸인 지수는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순박하고 선한 사람으로 사랑의 아픔을 감싸 주었다. 사환이 서품을 받을 때 온 가족이 찾아와 축하해 줄 만큼 좋은 인성. 사환도 안심하고 사제의 길을 시작한 것엔 그런 사연이 있었다.
“그렇죠. 아이들에게 영세도 주고 남편도 성실하고..축복할 만한 삶입니다. 저도 수단 입은 몸으로 질투나 시기를 할 만큼 사치스럽진 못하죠. 행복하게 살기만 바랄 뿐입니다.”
무술과 오락거리에 몰입하는 것도 일종의 굴절된 정열이라 할 수 있을까. “선호가 점점 강해져서 다행입니다.”사환은 큰 동작으로 양 어깨를 돌리며 기합을 넣었다. 마음 같아선 한차례 대련을 할까 하지만 사환을 상대하려면 나도 꽤 긴장을 해야 돼서, 선호의 피로 젖은 눈으로 임하기엔 부담이 된다. 벨제붑의 시선을 쓰는 건 과하기도 하고.
“또 싸우고 있어요? 아무튼 깡패들이라니까.”
성당 뒷마당에 갑자기 난입한 건 경인이었다. 수녀님들에게 갓난 딸을 맡기고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열심인 미혼모. 처음 봤을 때처럼 몸에 기름기라곤 없는 마른 체격이지만 눈빛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선호를 보곤 혀를 찬다.
“아이고, 이 오빠 완전히 시체가 됐네. 견회 오빠. 좀 살살..히익!”
경인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을 만큼 놀랐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얼굴이 피투성이였지. 전부 내 피인 줄 안 걸까. 아직 어려서인지 경인은 정말 당황한 눈치였다. 난 실실 웃으며 옷 소매로 대충 얼굴을 훔친다.
“선호가 뱉은 피야. 아주 멋진 수였지. 처음으로 나한테 한 방 먹였어.”
“으으..무서워서 오줌 쌀 뻔 했잖아요. 꼭 그러고 있어야 되요? 아무튼 짐승 같아..”
“칭찬으로 들을게. 고마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좀 할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