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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경인은 혀를 내밀며 웃었다. 그간 인생 쓴맛은 질리도록 봐 왔으니 행복할 때도 있어야지. 덕재 패거리도 요즘엔 잠잠해서 다행이었다. 내가 그렇게 위협을 했는데 시끄럽게 군다면 진짜 죽을 각오를 해야겠지만. 간식으로 사놓은 도넛 봉투를 꺼내자 경인의 가방에서 1.5리터 들이 우유가 두 개나 나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급료가 좀 짜지만 부수적으로 나오는 게 많아요. 유통기한 지난 건 맘대로 가져가도 되니까.”



“그래도 가끔은 좋은 것도 먹고 그래. 넌 아직 자라나는 나이야.”



“걱정 마세요. 돈 모아서 주말엔 맛있는 거 사먹기도 하니까요. 자립 청소년 센터에서 친구들도 사귈 수 있어 좋아요. 다들 비슷한 상황이라 이야기하면서 공감되기도 하고..한참 신나게 어울려 놀기도 하고요.”



이제야 자기 나이 같은 표정을 짓는 구나. 난 팥 도넛을 한입 베어 물고 경인이 가져온 우유를 들이킨다. 소박하지만 아주 맛있다. 달콤하고 고소한 감촉이 혀에 맴도는 가운데 다가오는 행복하단 느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보스코 신부님을 지켰던 늑대였던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기도문을 외어도 고통 받지 않는 것처럼, 내게도 망각이라는 안식이 주어지는 걸까.



“아참, 그거 알아요? 요즘 이상한 할머니가 시장에 찾아 온대요.”



시장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이가 보이는 것도 흔한 일이고. 그래도 이전 술집 건도 있으니 더 들어보는 게 좋겠다.



“자기가 신이라면서 아픈 거 다 고쳐줄 수 있다고..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말하고 다닌 데요. 직접 찾아가면 진짜로 다 낫는 다나? 처음엔 먹을 거나 주다가 요즘엔 돈을 바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고 해요.”



“뭐, 그런 걸로 사기 치는 사람들이야 늘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상해요. 그렇게 번 돈이나 물건을 다 사람들한테 나눠 준데요. 자기는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어 필요 없다고..몰래 먹기야 하겠지만 몇 시간 동안 사람들하고 있으면서 물 한모금 안마신데요.”



이야기의 시작 때부터 긴장하는 기색이었던 사환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 걸까. 나는 내색하지 않고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 데. 먹지 않고 사는 건 별로 부럽지 않은 걸.”장난스럽게 말했다. 내 반응이 가벼워서 였는지 경인은 일상의 이야기로 방향을 돌렸고, 우리는 잡담을 하며 소문에 대한 걸 흘려 보낸다.



“아주 하늘이 낸 사람이야. 진짜 신인 것 같아.”



빨간 실타래에서도 그 소문은 들려왔다. 보통 체격의 60대 후반 여성. 시장에서 천을 취급하는 구역의 작은 방에서 사는데, 사람이 찾아오면 알지 못할 언어를 하다가 손으로 만져 준다 했다. 그러면 아픈 곳이 씻은 듯이 낫는다고. 게다가 죽은 후의 사람을 불러온다며 이름만 대면 정말 생전 말투와 기억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했다.



“그분이 아주 영험하신가 보네요.”



“견회 씨야 성당 다니니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순덕이 형님이 찾아가니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 생전이랑 똑같이 말을 하더래. 어려서부터 고생 시키고 학교도 못 보내줘서 너무 미안하다고..순덕이 형님은 그 말만 듣고도 오십만원을 두고 왔대. 죽은 우리 아버지 다시 만나게 해줬는데 사기든 뭐든 너무 고맙다며..”



“정선 할머니도 며느리랑 같이 가봤대. 죽은 아들 다시 만났다고 엉엉 울다 왔다나. 게다가 며느리랑 시어머니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되려 몇 푼 쥐어줬다고 하니..사기를 친다 해도 믿을 판인데 사람들이 홀딱 반하지 않고 배기겠어?”



아주머니들은 신이 나서 아직 이름도 밝히지 않은 그 여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내들이 깡패들의 무용담을 즐기는 것처럼 영험한 점쟁이 이야기도 화제가 되기 마련. 아주머니들이 일어나고 내가 빈 컵을 설거지할 때, 에스프레소 머신을 깨끗이 점검하며 리아가 말을 걸었다.



“그런 사람들 소문이 하루 이틀 들려오는 건 아니지만..조금 화나네요. 순박한 사람들 속이는 것 같아요.”



“의외의 말이네. 리아는 천주교 집안이지만 다른 종교인들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곤 했잖아. 게다가 언급된 그 여사님은 돈까지 나눠 준다고 하는데..”



“물론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가치관이 있어요.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저는 몰라요.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데 쓰이는 건 부정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면 정식 병원이나 상담원으로 일하는 게 맞다고..음성적으로 신을 자칭한다는 건 옳지 않다고..그저 제 선입견일 뿐이에요.”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는 악마를 꾸짖었고, 믿음을 장사하는 데에 이용하는 인간들은 채찍으로 내려치셨다. 리아는 실로 정확한 판단을 한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확신을 갖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다.



“어? 견회 씨 아냐?”



장사를 마친 저녁. 천 가게 골목으로 찾아온 나를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알아보았다. 시장에서 평판이 좋지만 필요하면 주먹을 쓰는데다 거친 일도 곧잘 한다는 소문도 사실. 개중에는 경계하듯 눈을 가늘게 뜨시는 분들도 있었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현신 할머니한테 왜 와? 나쁜 짓 하려는 거 아냐?”



“현신 할머니 좋은 사람이야. 허튼 생각 가지고 온 거라면 그냥 가.”



현신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건가. 이제 미심쩍은 생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좋은 분이라고 해서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여기 케이크도 하나씩 가져왔어요.” 의심하지 않도록 과장되게 밝은 표정을 했다. 내가 평소에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주었기에 그것만으로도 아주머니들은 경계를 거두었다. “계단 올라올 때 조심해서 와. 현신 할머니는 예민해서 잘 놀라시니까.”오히려 내게 주의를 줄 만큼. “예. 알았습니다.”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소리도 안 날만큼 가볍게 걸음을 내딛었다.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방 치곤 좁았지만 궁색하진 않았다. 옷과 이불을 넣어둘 법한 장롱이 하나있고, 청소를 잘해 먼지 한 톨 없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성경. 불경. 코란이 상 위에 놓여 있다는 점.



“처음 뵙겠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견회라고 합니다. 소문이 좋으셔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난 고개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바로 들려오지 않는 대답. 난 인사를 받아주기를 기다리듯 그대로 있었고, 먼저 방에 들어온 아주머니들이 말을 얹었다.



“현신 할머니. 견회 씨라고. 젊지만 아주 착하고 야무진 사람이에요. 시장에서 평판도 좋고..케이크도 맛있게 잘 만들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럼요. 혹시 못된 짓을 하면 우리가 혼내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 정도면 든든하게 받아들여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이라면.



“어서 와요.”



난 고개를 들어 현신 할머니란 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노인이었는데, 치장을 아주 능숙하게 한 모습. 주름도 잘 가리고 색조 화장을 절묘히 사용해 얼핏 소녀로 보일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입고 있는 일본 기모노도 특이하면서 극히 예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사도가 모두 어린애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할머니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죽은 육체를 짜 맞춰 낙태 당한 아이들의 영혼을 심어놓은 것이니 겉모습이야 멋대로 생겨먹을 수 있겠지. 벨제붑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할머니가 아리마의 사도라고 가르쳐 준다. 내 감으로도 알 수 있었고. 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기묘하게 피해간 느낌이다. 사도에게 현혹된 아주머니들이 나를 경계할 것이니 친한 사람은 아니지 않냐고 핑계 대는 것 같군.



“현신 할머니. 나 우리 어머니 만나고 싶어요.”



“내 두통 좀 먼저 봐줘요. 지난번에 공짜로 은혜 받고 많이 나아졌는데, 오늘은 성의껏 돈을 좀 준비했어요. 그러니 좀 더 잘..”



“다들 왜 이래요. 찾아가자고 처음 제안한 건 나니까 당연히 내가 일번이야. 난 오늘 바깥양반 쌈짓돈 통장까지 가져왔다고!”



“어디서 소릴 질러요. 현신 할머니 놀라게..”



아주머니들은 옥신각신하며 소란을 피운다. 인간은 결국 아이러니 투성이지만, 선하거나 성스럽다고 생각되는 존재가 있으면 오히려 더 집착하고 다투게 되는 면이 얄궂게 느껴졌다. 그 와중 사도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건 무리일 텐데. 나 역시 아주머니들이 있는 지금 손을 쓰기도 곤란하지.



“나 이 사람하고 놀 거야.”



다툼 가운데 점차 높은 소리가 오를 때, 사도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같이 논다. 인간이 역사 이전 시대부터 해왔던 본능적인 즐거움. 세 번째 사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를 보고 같은 말을 하는 군. 아리마는 사도들에게 내가 유일한 놀이 상대라고 가르친 것 같다. 낙태 당한 아이들에게 아리마가 어머니 역할을 해 주며 같이 놀아주는 대상을 나로 지정한 건가. 어쨌든 상관없다. 난 가브리엘이 명령한 대로 여왕의 십자가를 없애면 되는 거니까.



“아니..현신 할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먼저..”



“시끄러워, 이 여편네야! 돈도 안 가져온 거지 주제에 어디서!”



“뭐? 말 다했어? 내가 왜 거지야, 이 똥싸개가!”



옷자락을 잡거나 성을 내며 다투는 아주머니들.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순박한 이들이 아니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도를 바라본다.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이지만 그 깊은 곳엔 허무가 있을 뿐.



“할머니. 전 괜찮으니 어머님들 사연부터 들어 주세요. 할머니께서 결정을 내리셔야 다들 진정하실 것 같아요.”



내가 한 말이 예상과 달라서 였을까, 사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면 약간 감정이 느껴졌다. 아리마의 명령대로 싸움을 벌여야 마땅한데도 내 부드러운 태도가 낯 설은 듯하다.



“다들 조용히 해. 순서대로 앉아서 한명씩 말해.”



차분한 목소리였다. 위엄도 있고, 아주머니들이 신격화 하는 게 이해가 되는 모습이다. 곧 소란은 멈추고 눈치껏 순서를 정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인사나 드리려고 온 거니까요. 어머님들하고 말씀 나누시는 거 구경하게 해주세요.”난 눈이 감길 만큼 웃음을 지었다. 내가 평소 실실대는 성향이 아닌지라, 아주머니들이 보기에 현신 할머니를 존중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신호로선 충분하겠지.



“우리 아들 대학에 합격할지 좀 가르쳐 주세요. 그 여린 것이 맨날 코피가 터지게 공부하는데 영 불안해서..지난번에 제 종조카 사업이 잘 풀릴 거라 말해 주신 게 꼭 맞았거든요.”



“우리 남편 바람피고 있는 거 맞죠? 낚시니 산악회니 핑계대고 주말이면 집에 붙어있을 생각을 안 해. 맨날 술에 절어 살면서 자꾸 돈이 비고..내 속이 다 타들어 간다고요.”



“두통이 완전히 가시질 않아요..병원 다닐 때보다 훨씬 낫긴 한데 그래도 좀 더 잘 봐주셨으면..”



“우리 불쌍한 어머니 저세상에선 좀 편히 사시는지. 한 마디만 해주세요.”



인간의 나약함을 어리석음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단정 짓기에 삶이 너무나 고단하고 부조리하니까. 이웃사촌 간에도 다툼이 있을 만큼 필사적이고 간절했다. 사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일단은 한명 한명의 말을 잘 듣는다.



“잠깐만 기다려.”



두 손을 들더니 기도하는 것과는 반대로 손등을 대고 중얼대기 시작했다. 고대 히브리어를 역순으로 낭송하는 걸 알아들은 나는 흥미를 느낀다. 아리마가 유대교 랍비를 모티브로 해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 말하는 신기와 영험함을 아주 잘 재현한다. 어느새 아주머니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이 나라에 들어온 종교는 종파에 상관없이 기복 신앙의 성격을 띠니 무리도 아니지.



“대학은 재수를 해야 될 거야. 그래도 합격은 할테니 잘 해 줘. 바람 피는 거 아냐. 나이 사십에 공부 시작한 딸 등록금 대주려고 주말에 몰래 일하고 있어. 이리 와봐. 만져 줄게. 어머니 첫사랑하고 다시 만나서 늘 웃어. 걱정하지 마.”



현신 할머니의 태도는 담담했다. 반말이지만 기품이 느껴진 달까. 무속인들의 특유의 강압적이고 거만한 분위기도 안 보인다. 아주머니들이 한숨을 쉬거나 눈물을 보이는 와중 사도는 가만히 있어 주었다. 화장으로 꾸며진 얼굴에서 붉은 입술이 조금 움직거리는데, 나는 정말로 놀랐다. 그건 감정이었으니까.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로..”



“이제 가. 나 졸려.”



“아이고. 그렇죠. 주무셔야 하는데 저희가 시끄럽게 했네요. 저 이거..”



“필요 없어. 가서 손자 맛있는 거 사주고 남편 좋은 술 한 잔 해줘. 머리 아픈데 너무 일에만 매달리지 마. 어머니는 잘 지내니 딸한테 잘 해주면 돼.”



“이러지 말아요. 돈도 안 주고 은혜받으면 우리 벌 받아요.”



“벌 안 받아. 나 안 먹어도 사니까. 가지고 가.”



아주머니들이 내미는 돈을 사도는 끝끝내 거부했다. 엉엉 울면서 애원까지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제법 두툼한 봉투들을 전부 밀어내고는 그때껏 구석에 앉아 있던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나 저 사람하고 얘기할 거야. 다들 가. 방해하면 나 다른 데로 가 버릴 테니 그만 해.”



이제야 내 차례인가. 아주머니들은 나를 힐끔거리거나 눈을 흘기더니 곧잘 방 밖으로 나갔다. 문 뒤에 숨어 엿듣는 기색도 없다. 나는 들고 온 케이클르 풀어 놓으며 입을 열었다.



“먹을 수 있다면 먹어 봐. 어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거니까 너에게도 마음에 들거야.”



달콤하게 달라붙는 초코 케이크와 우유의 풍미가 살아있는 쇼트 케이크. 사도는 예쁘게 꾸며진 케이크를 처음 보는 듯 잠깐 눈을 깜박였다. 호기심보다는 놀랐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일단 살아있는 생명이니 지내는 곳과 먹을 게 필요할 터. 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벨제붑의 시선이 반응했다.



사도들이 모여 있는 곳은 게임 센터였다. 이미 잊혀질 대로 잊혀져 아무런 관심도 발걸음도 없는 낡고 지저분한 오락실. 어설프게 전기를 연결해 조잡하고 조악한 옛날 게임기들이 깜박거리는 가운데 사도들은 딱딱한 체감형 게임기에 앉아 있거나 맨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가끔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즐거움이라곤 한 줌도 없다. 예전 전자오락의 인식이 안 좋았던 시절 학부모들의 선입견을 그대로 형상화한 듯이.



오른 눈을 한번 깜박이자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보리 빛 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 아리마가 게임센터에 와도 사도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을 비롯해 아무런 생기 없이 눈을 깜박일 뿐. 아리마의 옆에 있는 부하들이 박스를 몇 개 내려놓고 떠나자 다들 모여들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있는 싸구려 레토르트 음식를 데우지도 않고 맨손으로 집어 먹거나 봉투 끝을 이빨로 뜯어 빨아먹는 모습은 단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선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까지 사도는 케이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플라스틱 포크도 꺼내 옆에 놓았을 때 어설프게 손으로 쥔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쇼트 케이크의 크림을 조금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침울해져 있던 눈이 조금 크게 떠지나 싶더니 감출 수 없는 생기가 감돈다. 현신 할머니는 조금 빠른 동작으로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단맛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이.



“입에서 녹았어.”



케이크 한 조각을 다 먹은 사도는 한숨을 쉬더니 그렇게 말했다. 이전의 두 사도들과 마주 했을 때 느끼지 않았던 동정심이 조금 나를 흔든다. 싸우는 행위가 아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사도들이 어떻게 사육되는지 봐서일까. 난 초코 케이크도 살짝 현신 할머니 앞으로 밀어 놓았다.



“나중에 먹고 싶어.”



사도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화장을 정말 잘하긴 해서 순진한 눈망울과 어우러져 소녀를 연상시킨다. 그런 모습이라고 해서 때려죽이지 못하는 나도 아니지만, 아까 아주머니들에게 하는 양을 보면 폭력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결국엔 널 죽여야 해. 너도 알고 있겠지만.”



“당신하고는 놀아도 된다고 했어. 나도 놀아달라고 하고 싶어.”



“거짓말 하지 않아도 돼. 지금 아리마는 이곳에 없어.”




“케이크란 거 맛있어.”



난 그 순간 느꼈다. 나와 적대하는 것으로 ‘논다’는 욕구를 드러낸 두 사도와 달리 현신 할머니는 이미 아주머니들과의 접촉으로 자신의 바람을 충족시켰다는 것을. 내 손이라면 저렇게 가느다란 목 따위 단숨에 부러뜨릴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방을 빠져나갈 때 나는 가브리엘의 심기가 불편함을 느꼈다. 무시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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