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도피처 하나쯤은 있어도 좋잖아
우연한 도피, 지속되는 만남
"어떤 이는 쉬이 직장을 갖고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아닐 때
사회가 그리고 세상이 끔찍해 보이기 시작한다."
from. 세레노
나는 어떤 의무감처럼 대학교 시절의 8할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때는 왜 인지를 몰랐다. 20대 초중반의 선상에서 주어진 인생의 매뉴얼을 따랐을 뿐이라고 하면 조금 나는 뒤처진 사람이겠다. 물론 이전에 열심히이던 선배들의 모습을 답습하고 부모님의 바람을 아무 의심 없이 따른 덕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만큼 나는 충분히 경험이 없었고 멘토가 없었고 돈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보다 나의 이상적 기질은 20대의 매서운 파도를 거침없이 지나고 나면, 거대한 해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짐작하면서 많은 꿈을 꾸게 했다.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을 따르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도 잡았다. 20대 후반에 직장을 잡으면 보편적인 매뉴얼상으로는 준수했다. 우리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할 때 인생의 기준이나 만족감에 대한 척도를 타인과의 비교에 부여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직장을 잡았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갈피도 없는 형상에서 유형의 것이 되더니 꼬이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흥미롭지 못한 동료 관계와, 조직의 위선들. 취업을 돌파하고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 했다
단호히. 생애 첫 사표를 27살에 던졌다.
비양도는 내게 많은 영감을 줬다.
왜 직장인들은 항상 나도 꿈이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걸까?
from. 세레노
직장이 없으면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면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여기서부터 청춘은 난관에 봉착한다. 아니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겠지만,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정말 어려움이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결단이 내게는 일찍 찾아오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세 번 하게 되었다. 남에게 말하면 체면은 세울 수 있는 직장들이었으나, 그것은 나에게 중요치 않았다. 직장 경험에서 동료들과는 고충을 나눌 수 있다. 어쨌든 조직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고, 직장인은 누구나 고민이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내가 나의 꿈에 대한 생각을 말하면 그들은 "항상 나도 꿈이 있었는데..."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의 간접 화법이다.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은 적이 한두 번 아니다. 꿈이 있었는지 아니면 퇴사가 꿈인지.
가파도 올레길
우리는 우리가 열고 들어가는 문을 의심한 적이 없다.
바로 나 자신이 열기 때문이다.
from. 세레노
생애 첫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부모님의 실망은 둘째였고, 우선 세상에 대한 부풀었던 나의 실망을 수습하고 싶었다. 적잖이 상처 받고 당황한 나의 노력과 꿈들을 비웃는 저 세상(이때는 사람과 조직에 대한 회의)을 어찌할 수 없다는 현실이 내게는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당시 고시원에서 출퇴근을 했었다.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틈틈이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마다 설거지하고,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와 가끔 수업이 없는 날은 물류 창고에서 짐을 나르면서 모은 돈으로 정착 기초 자금을 댔다. 회사 생활하면서 생애 첫 월급을 탔고 돈이 조금 모아졌기에, 나는 이 위치를 벗어나고 싶었다. 백수와 학생의 경계에서 일주일 간 방황했었다. 늦잠이 사라졌다. 고시원에 머문 마지막 날, 창밖이 너무 화창했다. 초라한 나의 모습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내게 떨어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2시간 후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그 고시원을 떠났다.
제주 바이크 일주 여행
삭막한 일상, 낭만적인 도피처 하나쯤은 있어야 해
from. 세레노
무작정 제주로 떠나고 게스트하우스란 것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게하'는 여행자의 쉼터 역할로서 낭만적인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곳에서 모여드는 공간이었다. 여행자는 서로의 가슴에 위로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게스트하우스는 차차 변질된 공간으로 변모돼버렸다. 좋지 않은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순수하게 찾는 여행자들이 아닌 소위 파티족이나 이성을 만나고픈 헌팅족들이 찾는 공간이 돼버렸다. 이미 예전부터 다녀본 여행자라면 이제 게하를 찾기가 망설여지고 꺼림칙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순수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해주는 곳이, 게하만 한 곳이 없음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낯선 여행자와는 가면 쓴 일상의 나에서 벗어나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제주 여행자 : "제주만은 그대로이면 좋겠어요.
내 마지막 남은 도피처인데..." 나는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람들이 들어오고 도시 사람들이 업을 위해 들어오고 점점 상업 건물이 즐비해지고 자연경관이 풍경이 변모하고 있는 제주가 안타까웠다.
제주도민은 아니지만 제주를 사랑하게 된 사람이 많다.
처음 퇴사를 하고 중문 시장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1박을 했는데, 다이닝룸에 여행자들이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자 A : 야 다음에는 언제 올까? 한 세 달 뒤?
여행자 B: 그래 뭐, 서울에서도 1시간 정도면 오니깐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는 이들은 제주를 여러 번 그리고 자주 왔다는 것. 그리고 나와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릴 거라는 추측. 이 보통의 대화에서 나는 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들의 집이 부자였는지 모른다. 서울 사람이라면 으레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어쨌든 이 영맨들이 육지에서 떨어진 섬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취급한다는 것에 당시의 나는 뜨끔하고 뒤통수를 한 대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곳까지 오기 쉽지가 않았음을. (물론 당시는 제주가 처음이어서 그랬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 젊은 친구들의 그 여유와 오고 가는 말이 별 일 아니란 듯한 대화 속에 나는 얼마나 세상을 좁게 살았던가를 깨달았다. '1시간이면 오는 곳이었는데, 27년 만에 왔구나.' 그것도 퇴사로 인해. 나는 그날 다짐했다. 제주를 1년에 한 번은 꼭 오자고. 벌써 8년 전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