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의 삶
“112 상황실, 강남구 대치동 OO편의점, 만취 손님이 직원에게 위협적 언행 중. 순찰차 207호 출동 요망.”
무전 소리와 함께 민수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경찰서 안 사무실에 있었고, 자신의 옆엔 체격 좋고 다부진 인상의 경찰이 서 있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바라보았고 단정하게 입은 경찰 제복에는 ‘김민수'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경찰이 된 내 모습이야?’
혼란도 잠시.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무전기를 차고, 방탄조끼를 입고, 순찰차에 올랐다.
경광등이 번쩍이며 도심을 가르자, 민수의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편의점 앞에 도착했을 때,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술에 취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뭐? 나더러 마스크를 쓰라고? 네가 뭔데 지적질이야! 경찰 불러! 내가 누군지 알아?!”
편의점 직원은 두 손을 모으고 겁에 질려 있었다.
민수가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건넸다.
“손님, 조금 진정하시겠어요? 지금 상황은 녹음되고 있고—”
“시끄러워! 경찰이면 다야?! 너희 같은 게 뭐 어쩌겠다는 거야!”
남성은 손에 들고 있던 소주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유리 조각이 튀며 민수의 팔에 살짝 상처가 났다.
그 순간, 박 형사가 민첩하게 뒤에서 남성의 손목을 제압했고, 민수는 직원의 안전을 확인하며 신고자 진술을 받았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뒤, 민수는 편의점 앞 벽에 기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네요. 형사님은 힘들지 않으세요?”
박 형사는 그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힘들지. 하지만 그 손님도 어쩌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에서 소외받고… 그날, 마지막 기댈 곳이 술이었을 수도 있어. 그렇다고 폭력과 욕설이 정당화되진 않지만, 우린 그런 사람들 속에서 질서를 지켜야 해.”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박 형사가 말을 이었다.
“김 순경, 경찰은 법을 지키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때론 무너지는 사람들의 ‘방파제’야.
우리가 무너지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더 다치게 될 거야.”
며칠 후, 민수는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새벽 2시, 지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찰나, 긴급 무전이 울렸다.
“여기 112 지구대입니다. XX아파트 302호, 가정폭력 신고. 여성이 도움을 요청 중.”
다급한 무전에 민수는 선배와 함께 즉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문틈 사이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귀를 때렸다.
“경찰입니다. 문 열어주세요!”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안에서 얼굴에 멍이 든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 뒤로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난 남성이 말했다.
“무슨 일이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우리 집 문제에 경찰이 왜 껴?”
민수가 조심스레 말했다.
“폭력은 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조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다툰 거예요. 신고 취소할게요.”
민수는 당황했다. 분명 두려움이 가득한 눈이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피해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긴 어렵다.
돌아오는 차 안, 민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요? 저렇게 두면 또… 반복될 텐데요.”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법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어.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때론 손을 쓸 수 없을 때가 있어.”
민수는 그 말에 목이 메었다.
현장을 지켜도, 바꿀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느꼈다.
며칠 뒤, 민수는 그 아파트 앞을 순찰하던 중, 다시 그 여성을 보게 되었다.
눈 밑엔 또 다른 멍이 있었고, 아이는 그녀의 다리를 꼭 붙잡고 울고 있었다.
민수는 다가가 말을 건네려 했지만, 여성은 서둘러 몸을 돌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밤, 민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불의를 막기 위해 경찰이 되었건만, 정말 약한 사람을 지켜줄 수 없는 현실이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민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고민에 빠졌다.
‘내가 평생 이런 길을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며칠 후 야간 순찰 중,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은 희미했고, 도심의 불빛은 눈만 시렸다.
그 순간, 그의 손 안에서 무언가 미세하게 빛났다.
바로 ‘직업 자판기 카드’였다.
작은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찰관의 삶 체험 완료
다른 삶을 선택하려면 자판기 카드에 손을 얹으세요'
민수는 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순간, 사무실의 풍경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빛이 퍼지고, 그의 몸은 다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판기 앞에 다시 선 그의 눈앞에는 다음 버튼이 반짝이고 있었다.
[축구선수]
이번엔, 어릴 적 운동장에서 뛰며 꿈꿨던 바로 그 직업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그래, 다음 인생에선… 정말 날아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또 한 번, 빛이 퍼졌다.
민수는 또 다른 시간의 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