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그저 타이밍이야
한 때 유행했던 그 유명한
몰카 심리테스트를 다시 떠올려볼까.
"우울해서 빵을 샀어."
이에 무심코 내뱉은 상대방의 딱 한마디 반응으로 전 국민을 유형화해 버린 대단한 밈이다.
MBTI 열풍에 부정적인 심리학자들은
이런 이분법적인 유형화를 혐오한다.
나 역시 사람들을 지나치게 가르고
평면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불편하다.
아무튼 이 유명한 '우울한 빵' 이야기는
하나의 문장을 개인이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는지
본능적 감각을 잘 캐치한
정말 재미있는 언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답변에는
맥락과 상황, 혹은 '처지'라는
크고 중요한 배경적 요인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나는 보통 감정에 더 반응하는,
기질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1인이지만
나이 50이 넘게 살아오다 보니
인생의 태도에 약간 변화가 생겼다.
기본적인 기질은 바뀌지 않지만
현상을 대하는 태도나
반응하는 행동의 패턴에는 시기별로 조금 변화가 있더라.
아무튼 살아보니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빵이 먼저일 때가 있더라는 것.
가령 내 아이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감정과 마음을 배려하지만,
그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빵이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삶은 감정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더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편이 시도했던 일들이
잘 될 듯했다가도 계속 뭔가 어긋나는
좌절의 고통이 계속되다 보니
어느 겨울날 문득,
내가 현재의 감정만 중요하게 여길 상황이
아니라는 현타에 이르게 되었다.
마냥 '내 맘도 몰라주고..'
서운할 여유가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
아직 어린아이들과 살아갈 날들에 대해
수동적인 푸념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나도 가장이라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그러자 그 겨울 갑자기 나에게
스스로 먹고 살 아이디어가
물밀듯 떠올랐다.
잘 되려고 노력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저 먹고 살아갈 빵이 필요하다는
스스로를 향한 현실 자각 타임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긴 어둠을 뚫고
아침 햇살같이 쏟아진 은혜라고 칭하며
비로소 현실에 눈 뜬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수동적인 감정의 매너리즘이
능동적인 자율성을 입고 태어난 시간.
만약 그 무렵 누군가
"내가 우울해서 빵을 샀어."
라고 했다면,
"그래서 어떤 빵을 산 거야?"
라고 물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관계의 사사로운 감정에
반응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먹고살 방법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지금은 내면의 감정에 더 깊이
반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인생을 살아가며
상황에 반응하는 행동의 변화는
스스로 '필요'를 느낄 때 나타난다.
그동안의 나의 행동 패턴에
변화를 꾀하는 것은 내재된
변치 않는 성격이라기보다 상황이다.
아무튼 모든 검사에는
상황과 배경에 따른 신뢰도의 오차가 존재한다.
나는 또다시 언젠가
빵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때에는 또다시
도대체 어떤 빵을 먹었는지
궁금해질 때가 오겠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