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생각보다 훌륭합니다.
오래전 단아한 복장에 예의 있게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어린 아들 둘 엄마가 아이의 영어 코칭을 받으러 온 적 있다.
한동안 아이 교육 문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그녀가 국내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수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도 남들이 선망하는 벌이가 아주 좋은 전문가였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높여 다닐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예의 있게 경청하며 수줍은 듯 답변하던 그녀의 태도는 정말 보기 좋기도 했지만.. 뭐랄까.
아이 교육 문제에 있어서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모습이 그리 높은 사회 경제적 지위와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 많이 배운 사람이지만 아이 교육에 있어서는 줄곧 자신이 없어 보였고,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강의도 이곳저곳 너무 많이 들으러 다니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내 눈에는 불안정해 보였다.
아무튼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당시 전업 주부였던 자신의 상황에서 그 높은 사회적 레벨이 커다란 압박이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혹여 아이를 잘 키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언젠가 이 말을 조용히 건넸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ㅇㅇ님은 충분히 훌륭해요."
그러자 금세 눈물이 고이는 그녀의 선한 얼굴에 마음이 아렸다.
사실 나는 학벌주의의 정반대 세계관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 그녀의 사회 경제적 지위 때문에 그 말을 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녀는 주변의 기대나 압박에 상관없이 실제로 선한 인상과 태도를 지녔고 조금만 더 자신을 사랑하면 너무나 큰 잠재력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한해 전 고등학교에서 인생 여행하듯 심리학 수업을 했다.
사실 일반고에서 심리학이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심리학은 타인을 위해 살기 이전에 자신의 내면으로 한 발 들어가 보는 학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평가 비교의식이 주입되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
타인과 비교를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보자는 외침은 공허할 수밖에.
물론 입시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교양 과목이어서였기도 하지만 일반고 고3 교실은 오직 입시 말고는 관심 밖이다. 관심이 살짝 생기려다가도 다음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심리학에 한 발짝 더 들어가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 아이들은 내면에 관심이 없다.
오직 외부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오직 입학사정관과 선생님,
혹은 부모님에게 잘 보여야 하는 당면 과제 외에 뭐가 있으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들이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그저 몹시 안타까울 뿐.
오직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입시가 끝이 아니다.
이후에는 취업 전쟁,
이후에는 결혼 전쟁,
이후에는 자녀 전쟁이다.
나보다 잘 사는 누군가가 있는 한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타인의 기대를 따라 나를 맞추는 삶에서 벗어나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이 싸움은 비로소 끝난다.
그 엄마는 지금쯤
어디선가
조금은 평안할까.
부디 그렇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