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영어 트라우마
영어 유치원부터 원어민 과외와 학원을 전전하다가
재미있게 책수업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엄마와 딸아이가 찾아왔다.
"영어 선생님 싫어요! 영어 싫어요!"
엄마 손에 이끌려 체념하여 찾아온 것 같은 표정으로 나와 마주 앉은 아이가 면전에서 외쳤다.
엄마는 그동안 아이가 전전한 영어 학습에 대해
무심한 듯 설명하였고,
아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어디 내가 영어 좋아하나 봐라는 듯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고작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동안 영어 학습에서 입은 트라우마는 꽤 커 보였다.
수년이 지나 아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 영어를 접했던 유치원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소리와 문자를
마치 먹기 싫은 아이에게 입을 벌려 억지로 약을 욱여넣듯 주입되었다고 한다.
초등 1학년이 되어서는 원어민 수업을 했는데 그다지 좋지 않았단다.
아니 초등 저학년과의 1:1 수업이면 재미있었을 텐데 왜 그토록 영어가 더 싫어졌을까.
함께 영어로 놀아주시며 책만 읽어주어도 좋았을 그 시간에 영어 문법과 쓰기를 시키셨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고객님인 엄마들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주는 선생님이었겠다.
그 어린아이에게
동사의 변화를 암기시키셨다고 했다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이후 4년이 넘도록 나와 함께 한 아이에게
기적이 일어났을까.
아니, 그런 기적은 없었다.
끝끝내 영어를 기막히게 잘하거나
영어를 아주 좋아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는 성공하였다.
영어가 싫으니 영어쌤도 그토록 싫다던 아이는
예민한 사춘기가 지나도록 오래오래 나와 함께 하였고
초콜릿 마니아 소녀였던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가장 소중한 초콜릿의 절반을 뚝 잘라 나에게 건네주는 츤데레가 되었다.
엄마는 얘가 영어를 배운답시고
선생님을 만나러 오가는 것이 어디냐는 듯
중학생이 되기까지 계속 아이를 보내셨다.
외면은 외과적 수술을 통해 고치고 수정할 수 있지만, 내면은 다르다.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행동으로 나타나고,
의사나 심리상담가는 행동의 원인을 탐색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여러 가지 복잡한 관계에 원인이 있더라.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은
그 관계로 인해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도 하고
인생의 풍성함을 누린다.
머리가 희끗희끗 깊이 파인 주름에 세월이 담겨있는 노인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물질보다 사랑이 최고이며
다양한 형태로 어긋난 관계에서 깊은 후회를 느낀다고 한다.
아무튼 사람은 다양한 관계를 통해 문제를 일으키거나 상처받고,
결국 또 그 관계로 인해 치유된다.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첫 영어의 상흔이 곪아있던
그 친구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날 스토리에서 배운 영어 표현으로 말풍선을 만들어
그림을 그려보게 하면 신이 나서 뚝딱 만들어 보였다.
그때 아이가 싫어하는 영어를 계속해서
밀어붙이듯 강요했다면
그 아이 인생에서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그나저나 내면에 생긴 상처는 참으로 오래가더라.
약을 발라주려고 내 딴에는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유아기에 접한 영어 학습의 첫인상을 바꾸기 쉽지 않았다.
"ㅇㅇ이 쌤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아직도 그렇게 영어가 싫어?"
"아니요. 이젠 그냥 괜찮아요"
영어가 그렇게도 싫다던 아이가
그래도 싫지는 않다고 말하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렸다.
그 말을 듣고는 얼마나 혼자 감격에 겨웠는지.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