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내가 놀기로 했다.

남들이 노는 우리 집. 이젠 내가 누리는 걸로.

by 바다의별


내가 말 한대로. 꿈꾸던 집이 만들어졌다.

쉰 살이 되던 해.

4월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잠시만 나오란다.

무작정 남편이 데리고 간 곳은 파란 잔디가 있는 널찍한 마당이 있었다. 담벼락에 기댄 앵두나무엔 분홍빛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두릅 싹이 곳곳에 움트고 있었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오래 묵은 감나무들도 서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넓은 텃밭엔 머위가 수북이 자라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뒤 구릉엔 두릅과 함께 대나무가 작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 어때? “

난 그냥 연초록빛 잔디밭이 좋았다. 평가인증 준비로 마음 바쁜 나는

”좋아요 “


잠시 후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계약서야. 그 땅 샀어. 그곳에 집 지을래 “

역시 남편답다. 의논이란 건 거의 없다.

집을 팔 때도 마음대로, 땅을 살 때도 본인 맘이다. 남편의 성격대로 속전속결 대지구입은 이루어졌고, 5월 초 몇 개의 설계도 중 한 개를 바로 선택해야 했다.

남편이 건축일을 하는지라 집 짓기는 바로 시작되었다.


나는 집이 완성될 때까지 두어 차례 간 거 같다. 부엌 배치 및 도배장판, 그리고 화장실 타일선택 등 나의 의견이 필요할 때 만. 오죽하면 동네 할아버지가 남편더러 집사람은 없냐고 물어보셨단다.


그리고 그해 여름이 지나갈 즈음 이사를 했다.

아침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하얀 햇살 때문에 잠이 깼다.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 작은 새소리들이 이른 아침 나를 잠 깨웠다. 침대 끝자락에서 바라본 학상리에서의 아침은 늘 새로웠다.

그렇게 다음 해 봄이 되었을 때,

남편은 돌담 아래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주었다. 너무 깊이 판 우물이 되어 버려 삽으로 다시 메꾸느라 고생을 하기도 했다. 연못에는 물레방아를 만들어 설치하고 부들과 붓꽃들을 옮겨 심었다.

남편은 텃밭에 고추를 심고 감자를 캐고 나면 배추를 심었다. 초보 농부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방울토마토를 처음 수확한 날. 모기떼에게 무한 헌혈을 해야 했다.


다음 해 마당에 흙벽돌이 쌓이기 시작했다.

찜질방을 짓겠다고 남편이 결정한 것이다. 벽돌 한 개 한 개를 나르고 쌓고, 몇 개월에 걸친 고된 노동 끝에 찜질방은 마무리되었지만 남편은 허리디스크 시술을 받아야 했다.

내가 말 한대로 꿈꾸던 집이 만들어졌다.

카카오스토리가 막 시작되던 시점에 이런 글을 남겨두었었다.

넓은 잔디밭과 들꽃이 있는 마당.
그리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원두막엔 과일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냥 누군가를 위하여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공간도 만들겠습니다.

차가 생각나는 날. 지나는 길 들러 문을 여심 됩니다.
주인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봄이면 개구리가 알을 낳을 수 있고,
여름엔 부들이 자랄 수 있는 낮고 낮은 연못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텃밭에 오이랑 고추가 자라나고 상추가 풍성해질 때면 작은 음악회를 열어 볼게요.
부모님들과 함께 모기 물려가며 밤늦도록 삼겹살 파티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꿈일까요? (2012. 5월 일기)


파란 잔디밭과 멋스러운 정원이 있는 우리 집은, 늘 분주한 나 대신 남편과 지인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수시로 삼겹살 파티가 열렸지만, 정작 나는 고기 몇 점 급히 얻어먹는 펜션 주인 같았다.

어마 무시한 억만장자 집 모든 것은 누가 누릴까?

귀하디 귀한 소파에 온몸을 기대고 앉아, 몇 개 없는 명품 커피잔에, 시스템 좋은 음향시설에서 나오는 멋들어진 음악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여유를 누리는 건, 바쁘디 바쁜 집주인이 아닌 가정부의 몫이라나.



우선 우리 집부터 놀이터 삼기로 했다.

누구나 차 한잔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은 카페가 테라스에 있다. 이곳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남편과의 모닝커피가 시작된다. 종이컵에 봉지 커피 한 개를 탈탈 털어 넣은.


그리고 입 냄새 폴폴 날지도 모를 나와 남편은 옛날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놓는다.


남편은 은근슬쩍 자기 자랑이다. 이 집주인은 본인이라나. 자식 둘 결혼은 본인이 다 시켰다나. 뭐 등 등.


” 자네 나 그랜져 언제 사 줄런가? “

나는 전문대학 졸업과 함께 결혼을 했다.

늘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터라 30대를 갓 넘어온 해. 누군가의 '툭'하고 던진 말에 난 유아교육학과에 편입을 했다.


"나 다시 학교에 갈래요"


얼떨결에 등록금을 준 남편은 농담인 줄 알았단다. 첫 등교 하는 날 두 아이와 함께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내가 자기 그랜져 사 줄게요"

그 당시 '각 그랜져'는 부의 상징이요. 남자들의 로망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자신만만 시작한 내 생애 첫 직장은 아파트 앞에 있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24시간 법인 어린이집이었고, 난 이곳에서 직장이란 무엇인지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시는 원장님은 교사교육을 제대로 하셨다.

지금도 그분이 짧은 메모 끝에 멋진 사인을 해서 주신 박사 논문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멋진 사인이 있는 나의 논문을 주리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논문과 함께 책장에 꽂혀있다.

몇 년 후 남편에게 '각 그랜져'를 사 줄 수 있을 거란 원대한 희망을 품고 구미로 내려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어린이집 운영을 했다.

나는 아직 그랜져를 사 주긴커녕 어린이집 차량도 나의 승용차도 남편의 통장에서 나온 돈으로 굴러간다.

"그랜져 대신에 괜찮은 아내가 되어주잖아요. 또 알아? 내가 무얼로 대박을 칠지“

이렇게 수다로 하루가 저물고 남편과의 백수 놀이는 5년이 넘게 이어졌다.



그리고 말 많은 잡초와의 한판승부도 시작되었다.


물놀이하는 마당

10년전 마당
요즘 마당

잔디밭을 차지한 테라스와 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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