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논다는 건

꽃 좀 다루는 여자

by 바다의별

아름다운 정원은 대가가 필요하다.


7월의 장마는 마당을 가꾸는 나에겐 꽤나 고맙다.

요즘도 어김없이 어렴풋한 햇살에 두 눈은 시계를 본다. 5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나오면 우리 집 테라스와 마당을 점령한 고양이 가족을 만난다. 얘네들은 우리 집 포함 이웃집 모두가 저거 놀이터다.

7월은 원츄리의 계절인 듯 반짝 햇살에 도도해진다. 아나벨 수국이 하얀 달덩이처럼 탐스럽기만 한데, 한쪽 마당엔 보라색 버들마 편초가 기세를 꺽지 않는다.

유난히 무더운 7월이지만 마당 가득한 꽃들 덕에 냉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린다.


누구인가는 이 여유와 누림이 마냥 부럽다고 하겠지만 엄청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거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위하여 넓게 만들어 놓은 잔디밭을 조금씩 파 내고 꽃을 심기 시작했다.(어린이집 친구들과 가족들이 이곳에서 여름물놀이 캠프를 하고. 삼겹살 파티도 했다).

마당 한 곳에는 강자갈 한 차도 부어 놓았다. 선물로 받은 수국이 몇 년째 깻잎 수국으로 있는 바람에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 가드너의 첫출발이 되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한 타의적. 자의적 자가격리는 우리 집 마당을 꽃밭으로 변신시켰다.


3월이면 수선화로부터 시작해서 11월 초 국화까지 끊임없이 피고 지고를 한다.

남편의 수도세 타령은 여전하지만, 남편은 텃밭에, 나는 꽃에만 물을 주는 역할이 분명해졌다.

장마 덕에 물 주는 수고를 덜지만, 대신 풀과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나름 정돈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젠 제법 다양한 종류의 꽃들을 삽목도 한다. 그리고 전원생활을 누리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나눔을 한다.


가드너로서의 삶은 손가락 마디를 뚱뚱 붓게도 하지만, 건강한 나로 회복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1년에 두어 달은 꽃과 논다.


교회 꽃꽂이를 한지는 꽤 오랜 시간인 거 같다.

인천에서 다니던 교회 강당 꽃꽂이는, 매주마다 나의 관심사였다. 학교 음악선생님이셨던 사모님은 바쁘셨지만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꽃꽂이를 하셨다. 토요일 청소년부를 맡았던 나는 사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들이 있었다. 사모님의 꽃을 꼽는 우아한 모습은, 또다시 나의 '꿈의 보물지도'에 꽃꽂이하기가 추가되었다.


몇 년 후 구미로 이사를 왔지만 나는 사모님의 꽃꽂이를 기억하며 섬기는 교회에서 강단 꽃꽂이를 시작했다. 다행히 가정학과 출신이다 보니 꽃꽂이 수업이 한 학기 있었다. 기본적 이론은 알고 있는 터였지만 뒤적뒤적 책들을 뒤져가며 시작된 초보의 꽃꽂이는 25년이 넘게 이어져왔다.


백수 아닌 백수인지라 시간은 충분했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켜면 원하는 형태의 꽃꽂이가 소개되고 있기에, 그동안의 쫓기는 꽃꽂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작품을 흉내 내보기로 했다.

오랜 시간 검색을 하고, 형태가 결정되면 '대구 칠성 꽃시장'에 꽃을 구입하러 갔다. 대구까지 오가는 건 공간지각 능력 최하 수준인 나에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때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쳐 몇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뒷좌석에서 풍겨오는 꽃내음은 그냥 좋았다.

그렇게 하루종일 꽃과 함께 놀았다. 가끔씩 전해주는 '이번 주 꽃꽂이는 작품 같아요' 이 말들을 은근슬쩍 기대도 해보면서.


지금은 단골가게 사장님께 사진을 보내주면. 나의 취향 딱 맞는 꽃을 금액에 딱 맞추어 택배로 보내주신다.



자연은 다투지 않고 순리대로 흐른다.


10년 동안 마당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달랐다. 요즘은 오버스런 8월의 뜨거움 때문인지, 주인의 딴짓 탓인지 마당 구석구석에 잡초가 원래 본인 자리처럼 버티고 있다.

꽃이랑 노는 것이 이제 조금 시들해진 건 아닌 거 같은데 너무 더웠다고 핑계 삼는다. 그래도 마당 한편엔 버들마 편초와 파라솔버베나가 여전히 보랏빛으로 본인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자연은 다투지 않고 순리대로 흐른다'는 걸 매년, 매월 달라지는 마당의 풍경을 보면서 느낀다.


붉은 벽돌로 경계석을 삼은, 마당 한편 널찍한 공간은 자유롭다. 제일 먼저 '분홍 달맞이꽃'과'붓꽃'이 주인이 되면 그다음엔 '꽃 양귀비'가 차지한다. 그러다 보면 언제인지 '끈끈이 꽃'과 하얀 '아스타 데이지'가 주인이다. 얼마 전엔 원츄리가 한참 동안 주인행세를 하더니 기세 높은 봉숭아에게 불평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자연과 함께 놀아본다는 건 '좌절과 분노'라는 나의 커다란 그릇에 담긴 많은 것들을 쏟아버리게 했다.



그리고 '소풍 온 것처럼' 살아 보리라 또 다른 결정을 했다.



원츄리/수국
클레마티스. 웨딩찔레장미.
능소화
강단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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