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건 하고 만다.

드디어 그림 전시회를 열었다.

by 바다의별

나는 매년 1월이면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 오래전부터 ’ 그림 그리기‘가 늘 있었다.

내가 그린 유화 한 점을 거실 한편에 걸어 놓고 싶다 다짐을 했었다.

그림을 그리는 지인이 있어 재료를 구입하고 화실에 등록했었지만, 바빠서 시작도 하지 못한 게 꽤 되었었다. 다시 그분의 성화에 ’ 갤러리 00‘의 회원이 되었고, 유화 기본도 모르는 나는 베테랑 화가들 틈 속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곁눈질하면서, 그들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주는 팁들을 흉내 내보면서, 나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구미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정기전시회에 그림 두 점을 함께 전시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의 그림이 하얀 벽 아래 조명을 받고 누군가가 감상해 준다는 건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진심 어린 격려와 축하의 넘치는 꽃다발들은, 오래된 그분들의 전시회에 왕초보여서 누리는 혜택이었다. 나의 작품은 큰아이 부부에게 판매되었고, 우리 집 거실이 아닌 그들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은 곧잘 그렸다.

여고 1학년 초. 반 친구 얼굴을 그린 댓생은 미술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었고 그 이후로 미술부를 꾸준히 했었다. 성탄절이 오면 친구들과 성탄 카드를 그려서 제법 판매를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유화를 시작하기 전 가볍게 팝아트와 천 아트를 먼저 1년 가까이 배웠다. 천 아트는 자유롭고 거침없는 나의 성격과 잘 맞았다. 구절초를 배운 첫날 나는 집에 오자마자 구절초가 멋스러운 에코백 가방을 완성했다.

코스모스, 제비꽃, 창포, 등등 야생화를 티셔츠, 커튼, 이불 등에 그려 넣는 것은 하나하나의 작품이 되어 주었다. '남천‘이 그려진 하얀 재킷을 입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쌀 한 가마니를 지는 거예요'’

몇 년을 병원에 다니다 보니 이젠 아들 친구 같은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그랬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나의 근성은, 전시회 다음 해 여름. 끝내 버티던 오른쪽 어깨를 수술해야 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은 수채화에 빠져있다.

선물처럼 주어진 공간들과 순간들이 또 다른 삶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오래도록 지니고 있던 명함이 아닌 잠깐잠깐씩 사용되어 온 나의 명함 속에 한 가지 더 추가했다.


삶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얽히고, 부딪히고, 망가지고, 고치면서 차츰차츰 완성해 가는 거 아닐까?


그 전시회를 준비하는 짧은 건지 긴지 모를 시간 동안. 새로운 이들과의 어쩌면 얄팍한 만남은 내가 또다시 선긋기를 했다. 물론 그림을 그리시는 분들답게 한결같이 너무나 멋스러운 분들이셨다. 세련미가 앉아 있기만 해도 뿜어져 나왔다.

그들은 골프이야기를 했고, 저녁에 모 협회회장님과의 만남 스케줄이야기. 그리고 거한 술 한잔씩 필요한 다양한 모임에 나를 발을 들여놓게 하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전시회. 또 이어지는 전시회 방문도 동행하길 권하셨다. 이 전이였다면 이들과의 만남은 강력한 비타민투여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멋진 삶이지 않나?


그런데 나는 나의 그림 앞에 같이 바라보아 주는, 오래된 항아리 같은 몇 분의 원장님들에게 이미 담겨 있었다.

지금. 내가 끄적이는 이 졸필에도, 무한 박수를 보내주시는 분들. 나의 모든 명예가 산산이 박살이 나도, 여전히 '당신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어깨를 토닥여 주며 잠잠이 기도 해 주는 이들이 있어,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열정을 회복했다.


나에게 그림 전시회는 함께 서 있어 주고, 함께 손 잡아 주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 꿈꾸는 곳을 바라보아 주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기쁨이고 감사함이었다.


그 해 창밖으로 보이는 감나무에 감들이 어느덧 익어가고 있었다. 내 삶의 가을에 난 무얼 그리고 있을는지 한참씩 고민이 되었다. 가끔씩은 아직 스무 살이라 착각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음 60이란 숫자가 그리 낯설지 않을 듯한데 난 어떻게 익어(?) 갈는지.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 묵은 큼직한 항아리같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언제든 돌아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요란스럽지 않게.



우리 집 장독대


전시회

구절초 에코백
천아트 남천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