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수같은 남편

하늘. 그리고 사랑이라 말한다.

by 바다의별


남편이 아팠다.


이른 아침 남편 혼자 가 버린 응급센터!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남편이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나 뇌경색이 왔대”


놀라 달려간 응급병동엔 치렁치렁한 선들을 온몸에 매달고 있는 남편이 누워있었다. 잠시 정신줄 놓을 뻔했지만 그 와중에도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본인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남편을 보며 “큭 큭” 웃고 말았다.


대소변을 이동용 변기에 누라는 소리는 남편을 질겁하게 만들었다. 1주일 경과를 보며 응급 병동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의 투쟁 끝에 3일 만에 일반 병동으로 옮겼고, 1주 후 남편은 제발 퇴원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집으로 '금의환향'했다. 같이 입원한 분들이 요양병원으로 재활을 위해 가셨지만 유일하게 남편만 큰 후유증이 없이 퇴원했고, 지금도 잘 관리하고 있다.


남편이 아프다는 것을 감추고 싶었다. 몇몇 분에게만 기도 요청을 했다. 그분들은 요란스럽지 않게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음을 간간이 전해주었다. 소중한 분들. 그분들 때문에 일주일의 시간이 참 평안함이었다.


“나 작은 3단짜리 서랍이 필요해요”

“우리 각시가 말하는 건 다 만들어줄 수 있지”


큰소리 뻥 뻥 치던 이 남자는 마무리도 못 한 채 병원행이었지만 약속대로 퇴원과 동시에 예쁜 3단 서랍을 만들어주었다.


수시로 '은단' 문 입을 가리키며 생색을 무지하게 내길래 진짜로 술, 담배를 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남편은 잠시 끊는 듯하더니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나의 웬수에서 하늘. 그리고 사랑이라 말한다.


둘째 부부가 저녁 초대를 했다. 남편을 뒷 좌석에 모셨다.


"오늘은 안전하게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침 오랜 친분의 선생님이 전화가 걸려왔다. 차량 블루투스로 통화가 연결된 터라 짧게 다음 약속을 하고 통화를 마치려 했는데

"전 이사장님을 존경해요."


남편은 '이사장'이란 단어를 극단적으로 싫어했지만 특별한 호칭이 없어 그렇게 부른다.

"원장님이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는 건 이사장님의 도움이에요. 남편에게 이사장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요."

"그렇지.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허허. “

뒷좌석의 남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편은 뜬금없이 '존경'이란 단어를 선물 받았다.

남편은 나보다 나이가 5살 많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던 남편은 내게 '아저씨'라는 호칭을 오래도록 들었다. 작은 체구와 찰랑대는 단발머리에 막내 기질 넘치는 나는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킨 거 같다.


내가 어쩌다 혼자 시댁에 갈 때면, 차표를 끊어서 손에 쥐어주셨다, 간식 봉다리에 용돈까지 챙겨서 버스 떠날 때까지 바라보아주시던 시댁 어른들이시다.

공부만 하던 어린 나이에 남편 티셔츠에 커다란 슬리퍼 끌며 두 아이 키우느라 쩔쩔매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셨을 것이다.


남편은 가끔 백운역 포장마차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을 했다. 술이 기분 좋게 취하면 남편은 널찍한 등을 내밀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업고 비틀비틀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남편 역시 아버지처럼 다양한 사업들을 시도했지만 결국 친정 오빠가 있는 구미까지 내려왔다. 이 와중에 IMF가 터졌고 나 몰래 집 한 채를 팔아 빚잔치를 해 버렸다. 그러고도 너무나 당당하게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남자가 남편이다.


두 아이를 양육하며 억척스레 공부. 그리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우리 집의 경제는 자연스레 내가 짊어져야만 했다.

그야말로 '왠수' 같은 남편이 된 거다.

남편 전화번호도 '원수'라고 설정했다. 오래도록 남편은 '왠수'라는 닉네임으로 내 핸드폰에 존재했다. 우연히 닉네임을 보게 된 큰아이가


"엄마 이건 좀 그렇지 않아? “


미안한 맘에 '하늘'로 변경했다.

핸드폰 설정뿐 아니라 호칭도 '하늘님'으로 바꾸었다. 글을 쓸 때도, 지인들에게 소개를 할 경우가 생겨도 하늘님을 사용했다.

그런데 남편이 '왠수'에서 '하늘'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늘 하늘처럼 나의 삶 곳곳에서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는 걸 감사하기 시작했다.


유아교육과를 시작으로 아동복지 석사까지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지켜봐 주며 응원했던 남편.

'그랜드 스타렉스'가 처음 나왔을 때였다. 구미에 한 두어 대나 있었을까? 어린이집 차를 바꾸어 달라는 나의 요청에 남편은 중고차를 사 준다고 했다.

남편은 차가 왔으니 사무실 앞으로 오란다. 그날따라 비가 왔다 '그랜드 스타렉스'를 처음 보는지라 난 진짜 어리둥절했다.

"축하해요. 사실은 새 차입니다. 남편분이 아내 몰래 해달라고 하셔서 저희가 고생을 좀 했습니다"

차량 판매원과 나의 절친이었던 보험설계사분까지 공모해서 차량 보험. 차량 표지판(몰래 어린이집 차에서 사진을 찍어 똑같이 해 오셨다)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차를 준비해 놓은 거였다.

세상 무뚝뚝해 보이는 남자.

그런데 나의 맘을 읽고 있는 것처럼 해 놓는다. 무심한 듯 못 들은 척 하지만 내가 원 하는 것 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꼭 기억하고 있나 보다. 나를 향한 맘의 표현은 이런 것일까?



"진짜 같이 사세요? “

"저. 이 사람과 한 이불 덮는 남자 맞습니다. “

누군가와 첫 대면이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가야 할 만큼 나랑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자. 내가 새댁이었을 때 "난 처음에 후처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했던 분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남편을 존경한다고 말한 선생님은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남편이 저절로 웃음을 터뜨릴 때까지 얼마나 멋진 분인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 녹음이라도 해 둘 걸 그랬다.

차마 그동안 내 입술로 말하지 못한 걸 그 선생님이 대신해 주었다.

남편이 '왠수'일 때 이 말을 들었다면 이랬을 거다.

"나 같은 여자랑 살려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


얼마 전 남편의 닉네임은 '사랑'으로 변경되었다.

환갑이 넘어 염색하지 않은 남편의 머리는 거의 은발이고 나와 가족은 '배우 신성일' 같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왠수'에서 '하늘'로 그리고 이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으리만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남의 편이 아닌 나의 남편과의 백수놀이는 계속 이어진다.


혹)'백수놀이'라는 용어가 불편하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