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점 엄마는 아니어도

30점짜리 아내와 엄마에서 벗어나 보기

by 바다의별

나는 부모교육을 할 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괜찮습니다. 나보다 더 나은 부모님이세요. 전 30점짜리 엄마고 아내입니다. 그래도 당당하잖아요?”

꿈을 허겁지겁 이루어가는 중 남편과 두 아들의 희생은 만만찮았다. 그만큼의 대가를 부담해야 했기에 나의 명함은 추가될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우선순위가 어린이집이었기 때문에 새벽이면 출근을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이집을 이전하느라 작은 아파트에서 1년을 지낸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과 남편에겐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고, 나 역시도 그 시간들은 기억조차 안 한다. 한창 사춘기를 겪는 시기에 어린이집에 전념하다 보니, 아이들에겐 많은 엄마의 자리가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어린이집 2층에 강당과 살림집이 같이 있었다. 어린이집 행사가 있을 시에는 가족들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근처에서 배회를 해야 했다. 대안학교 기숙 생활을 하던 둘째가 방학이 되어도 집에 오질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는 아픈 시간이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딱 한번 차를 태워 준 적이 있다. 간식을 준비해서 챙겨주는 건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김치부터 담아보지 뭐.


아침 식사 한번 제대로 하는 것이 희망 사항이었던 남편은 전라도 밥맛이 늘 그리운 사람이었다. 어머님이랑 형님의 음식 솜씨는 나에게도 최고의 밥상을 제공하셨기에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나의 음식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나를 향한 가장 큰 흉은 일관되게 ’ 음식을 못 해 ‘이었다.

김치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남편이 좋아하는 겉절이, 무생채부터 한 가지씩 요리했다. 어느 날엔가 마당에 넘치는 고구마순 김치를 했다. 나름 홍고추 갈고 시댁에서 먹어 본 느낌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S.N.S에 자랑삼아 올려놓은 글에 시누이가 댓글을 달았다.


’ 아이고 언니 ~~‘


아마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김장도하고 싶어 했다. 자그마치 50포기씩.

결혼 첫해 시아버지 같았던 큰 아주버님이 김치 한 자루를 둘러메고 오셨다. 이후부터 김장김치는 지금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사과박스에 차곡차곡 담겨 배달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남편의 김장 욕심에 맞춘다.


본인이 절이고 씻어주는 건 담당한다. 김장하는 당일엔 가족, 그리고 아이들 친구까지 다 불러들여서 수육 파티를 벌인다. 요즘은 아이들 친구들이 미안한지 고무장갑에 김치통을 들고 온다. 아마 남편이 원한 건 김치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것이지 않았을까?


그동안 아이들이 집에 오면 늘 외식을 했었다. 피곤함에 찌든 바쁜 일상에 집밥을 해서 먹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난 너희들이 결혼해서 집에 와도 집밥은 못 해준다. 대신 맛있는 거 사서 줄게”

이런 내가 아이들이 오면 남편과 식사 준비를 한다. 마당에서 삼겹살을 굽고 내가 만들어 놓은 각종 장아찌(큰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는 보기 좋게 접시에 담아냈다.

남편은 가끔 곰국을 끓인다. 굳이 가마솥에 이틀씩 불을 지펴서 끓여 낸 곰국은 겨울 내 육수로 사용되기도 하고, 죽통에 담아 얼려놓았다가 아이스박스 가득 담아서 차에 실려 보낸다. 그리고 집에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몇 팩씩 선물로 드리면 꼭 친정에 온 거 같다고 좋아들 한다.



20근 고추장 담그기


남편과 함께 고추장 담그기에 도전했다.

양을 가늠하지 못한 우리는 우선 고춧가루 20근을 준비했다. 그리고 부수적인 건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시골 방앗간에 들러 메줏가루를 주문하다 이게 범상치 않은 양이라는 걸 주인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하세요? 이렇게 많은 양을 하시다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고추장은 5년이 지난 지금도 항아리 가득이다. 물론 여기저기 퍼 나르기도 했지만.


백수 아닌 백수


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백수 아닌 백수 생활은 5년이나 이어졌다.

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커리어 우먼과는 전혀 다른 삶이 주는 것들에 대한 열정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를 남편과 가족들이 걱정을 했다.

늘 바쁘게 움직였던 삶을 보아온 터라 혹 심한 우울증이라도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남편은 수시로 이렇게 말했다.

“백수가 무어 그리 바빠?”


그래서 내가 백수 아닌 백수의 삶을 선택한 걸 알았다. 결론적으로 남편이 날 백수로 만들어 준 것이다. 남편은 백수인 나를 위해 기꺼이 같이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받기에 더 익숙한 30점짜리 아내임이 분명하다.




이전 06화베짱이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