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복숭아 털은

진짜 공감한다는 건.

by 바다의별
아침 8쯤 방송되는 '인간극장'은 남편과 같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복숭아집 딸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태풍이다는 소식에 분주한 가족들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집 과수원에는 다양한 과일이 있었다. 사과가 초록색 골덴부터 시작해서 새콤달콤한 홍옥, 늦가을 수확하는 부사까지 종류별로 심겨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커다란 자두나무옆에 나의 키엔 사다리를 몇 계단 올라가야 하는 높다란 원두막이 있었다.

아버지와 가족들이 이 원두막에서 돌아가면서 과수원을 지켰다. 거의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방학이 되면 아버지의 점심식사를 위해 내가 과수원지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꽤 먼 거리를 땡볕 속에 걸어가는 건 때론 귀찮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점심을 거르게 하실 수는 없어서 거의 나의 몫이 되었다.

과수원에 가기 위해선 작은 도랑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장마가 오거나 폭우가 오면 도랑은 내게 강물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 아버지가 나를 업고 도랑을 건너주셨다.


원두막에 누워 딩굴거리다보면 배가 고파진다. 손을 쭉 뻗기만 해도 노란빛 잘 익은 자두가 손에 닿았다.

두 손으로 가볍게 쭉 가르면 반토막이 나고 씨가 빠져나온다. 그 맛은 그 이후로 한 번도 맛볼 수 없다. 자두를 엄청 좋아하지만 사서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너무 맛있는 자두맛의 기억 때문에 사서 먹는 자두는 늘 돈이 아깝다.



자두철이 지나면 복숭아의 계절이 온다.

우리 집 과수원엔 백도가 주종이었다.

이른 봄 적당량 열매를 솎아내고 그다음엔 봉지를 씌워준다. 처음엔 책으로 봉지를 만드는 작업까지 했지만 이후에 봉지가 판매되어 그나마 일손을 들었다.


방송에도 나왔듯이, 하필이면 백도가 탐스럽게 익어갈 때쯤 꼭 한두 개의 태풍이 지나간다.

태풍소식이 전해짐과 동시에 엄마. 아버지의 다급한 손길은 바빠지고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엔 무게에 못 이겨 바닥으로 내동댕이친 복숭아들이 엄마, 아버지의 마음처럼 처참했다.


그럴 때면 온 가족이 복숭아 수확에 나서야 했다. 바닥에 떨어진 복숭아들을 주워 선별을 하고 상자에 담아 공판장에 싣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왜 그리 무거워 보였는지..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은 일손을 도와주신 동네 분들께 한 양동이씩 나누어드렸었다.


복숭아만 보면 그때 생각이 늘 난다.

잘 익은 복숭아의 껍질을 손으로 벗기면 연 핑크빛이랄까? 아님 아기 손등 같은 색깔이랄까? 한 잎 베어 물면 흐르는 복숭아 즙은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복숭아다. 늦여름이면 복숭아로 점심을 해결할 정도이다.

그러나 비 오는 날 만지는 복숭아털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깔끄러움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샤워시설이 잘 되어있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비 오는 날 복숭아 따기는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내게 막내오빠와의 대화는 복숭아털 같다.

어려서부터 유일한 놀이대상이었고, 오랜 시간 많은 분들이 남자친구라 오해를 할 만큼 허물없고 다정한 남매지간이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힘든 시기마다 서로를 의지했다. 그리고 지지했다.

구미로 이사를 오게 한 것도 막내오빠였다.

오빠가 사놓은 대지에 건물을 짓고 1층은 오빠가, 2층엔 어린이집을, 3층에는 같이 살자고 꿈같은 이야기를 수도 없이 나누었다.

물론 현실은 전혀 달랐지만.


막내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면 보통 2.3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요즘은 대부분이 엄마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오빠와의 대화가 끝나면 늘 복숭아털을 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오빠는 나의 말에 굉장한 공감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늘 공감받지 못한 껄끄러움이 있다.


[공감이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라 한다.


내가 엄마에게 이런 이런 게 힘들었다거나, 섭섭했다거나, 이야기할 때마다 본인의 힘겨웠던 삶이 더 서러워 나의 감정은 엄마의 감정으로 다 덮어버렸던 것처럼 오빠도 그런다.


내가 이러이러했어.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근데' '그런데' 그 뒤 이어지는 반론과 설득은 (때론 엄마에 대한 격한 변명까지) 나의 모든 감정이 송두리째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그냥 너의 기분이 그랬구나. 엄마에게 섭섭했겠네. 그래 그렇게 느낄 수 있지'


여기서 끝내주면 나의 감정이 공감받은 건데.

더 많은 뒷이야기를 쏟아내는 오빠와의 이야기가 마무리하는 시점이면 솔직하게 나는 복숭아털 한 바가지를 덮어쓰고 있는 거 같다.


나 역시도 누군가와, 복숭아털 한 움큼을 던진 거 같은 공감인척 하는 비공감적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사실이다.

진정한 공감을 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오빠. 우리 토론이 아닌 서로의 일상적 대화를 주고받을 때 가능한 '그런데'라는 단어는 꼭 필요할 때만 사용했으면 좋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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