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안방에 떡 하니 자리 잡은 돌침대엔 내가 방문할 때마다 똑같은 극세사 이불이 깔려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주름하나 없다. 침대 노래를 해서 샀지만 사용한 흔적은 거의 없다.
이모가 돌침대가 좋다고 이야길 했단다. 그래서 엄마의 돈으로 일반 매트리스 대신 돌침대로 구입을 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가 사 주었다고 자랑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딱딱한 돌침대가 허리가 좋지 않은 엄마에게 불편할까 검색에 검색을 거쳐 두툼한 토퍼와 침대패드. 그리고 여름인지라 모달 이불담요까지 택배로 보냈다. 엄마가 막내오빠네 침대에 깔린 이불이 포근한 담요 같으니 딱 맘에 든다고 몇 번이나 이야길 했기 대문이다. 택배를 받자마자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하신거다.
엄마가 말한 건 극세사 이불이었는데 나는 한 여름이다 보니 이해를 못 했다. 엄마 성격을 아는지라 무슨 색을 원하냐고 물었지만 명확한 답이 없어 나는 엄마의 눈에 요상한 인디언 핑크로 선택을 한 것이다. 나중에 보니 흰색이불이 오빠네 침대에 깔려있었다.
울화통이 치민다.
단 한 번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 이전에 옷을 보내드렸더니 그때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런데 한참 후 약간 업된 목소리로 다시 연락이 왔다. 동네 아줌마 한분이 오셔서 아주 맘에 든다고 한단다. 제품이 좋은 거라고.
그런데 얼마 후 극세사 이불이 깔려있었고(막내오빠가 같이 가서 구입했다고 한다.) 올봄 엄마를 모셔다 드리느라 부득이하게 하룻밤 잠을 자야 했다. 이불에 커피를 흘리셨다는 말에 세탁을 하려고 이불을 걷었다. 내가 사드린 토퍼가 깔려있었다.
"색깔이 괜찮네."
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너거 막내오빠가 사주고 같다."
"?"
"이거 내가 사 준거잖아"
"허 이 사람아"
확신에 찰 때 하는 특유의 높낮이 없는 저음으로 엄마는 이야기했다.
또 급발진 일보직전이다.
아무 말 없이 쿠팡앱을 켰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구매목록이 몇 년 치가 주욱 나온다.
"엄마 내가 산거 맞지?"
나도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리는 걸로 엄마는 백기를 들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냉장고에 쟁여 놓고 간 음식들을 막내오빠가 사놓고 갔다고 자랑을 한다.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옴과 동시에 '너거 오빠가 얼마 전 회를 사주고 갔는데 맛이 좋았다'라고 하신다.
30년 가까이 내가 엄마를 만날 때마다 싸늘하게 퍼붓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네가 나한테 양말 한 짝 사다 준 적이 있냐? 네가 집에 올 때 고기 한 근 사 온 적이 있냐?"
그리고 옆집 6촌 딸내미들이 시골집에 해 주고 간 놀라운 선행들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집을 고쳐주었네. 아지매 이를 해 주었네. 집 청소를 해주었네. 그러다 보면 뭐 등등 온 동네 딸내미들이 벌여놓은 말도 안 되는 자랑거리들을 동네 할머니들을 대신해 나에게 전해 준다.
그럼 그동안 나와 남편이 해준 건 다 어디로 간 걸까? 그것조차 오빠들이 한 것이라 생각을 바꾸는 것일까?
나의 결혼대상으로 탐탁지 않아 했다는 걸 알기에 남편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오래전 우리 집 TV보다 큰 컬러티브이를 선물했고, 지금 있는 김치냉장고도 남편이 선물했다. 집을 지을 때도 남편이 가장 많은 수고를 했다는 건 동네분들도 다 안다.
매년 명절날이면 시댁식구들의 섭섭함을 뒤로하고 시댁에서 상주까지 5시간을 넘게 달려 엄마를 뵈러 갔다. 갈 때마다 대가족이 구워 먹는 모든 고기는 남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구입했다.
도대체 엄마는 '사다준것'의 기준이 어디에서 나오길래 한결같이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남편이 한 것이니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정하신건가?
엄마의 만족되지 않는 요구는 나를 완전히 멈추게 만들었다. 그냥 '넌 나쁜 딸이야'로 엄마는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거고, 나는 '아니야 착한 딸이야'라고 악을 악을 써가면서 매달리고 있는 어른아이였다는 걸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지난달 처음으로 10대 이야기를 적다 보니 많이 아파서 잠시 시선을 돌렸다. 특히나 신앙적 양심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이렇게 토해내지 않으면 내속에서 곪아 더 큰 상처로 덧날 거 같아 글로 쏟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