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엄마와 나란히 누운 날.
내가 졌다. 완벽하게
엄마가 탄 택시가 병원입구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택시기사분은 친절하셨다.
"차비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네요"
엄마는 지갑에서 8만 원을 내고 2천 원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까지 정중하게 했다.
링거를 단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드디어 엄마가 택시에서 내렸다. 아주 우아하게.
루이비*인지 무언지 잘 모르겠는 시장표 가방까지 들고 옅은 회색 정장바지에 회색빛 도는 얇은 아웃터를 입고 계셨다.
입원을 하러 '상주에서 구미까지 콜택시를 불러 타고 올 정도이면?' 내가 상상하고 있던 엄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접수를 하고 입원절차를 밟았다.
나도 입원환자인데 졸지에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걱정하고 있을 오빠들에게 단톡을 보냈다.
'엄마 너무 멀쩡하신데'
전날 저녁 엄마와 통화를 했었다.
내가 다리가 심하게 저려와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말했다. 간병인 겸용 병원이라 병실은 조용하고 필요한 것들은 벨만 누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도 했다.
두어 달 전 허리가 불편하다고 치료차 몇 주간 막내오빠집에서 통원치료를 받았던 터라 나의 입원이야기는 엄마도 병원에 입원을 하고 싶게 했다.
입원을 하시라고 했다. 오랜 시간 본인이 다니시는 고정병원이 상주에 있는지라 며칠 집에 와 있는 둘째 오빠에게 부탁을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웬걸.
혹 병원에 입원을 하셨는지 확인 차 했던 전화는 엄마를 택시까지 타고 구미로 오시게 한 거였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오늘 입원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거 같은 목소리였다.
오빠에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단다.
택시를 타고 오실 거냐고 했더니 그러신단다.
평상시 차로 15분 거리 병원에 택시를 타고 가라는 나의 부탁에도 '내가 돈이 어딨냐고''택시타고 다니면 남들이 욕한다'라고 짜증을 내던 엄마인데 얼마나 아프면 그럴까 싶어 콜택시를 집 앞으로 보내드렸었다.
병원에도 미리 이야기를 해 놓았다.
엄마가 입원차 오고 계시니 준비해 달라고.
마침인지. 하필 인지 병실 내 옆자리가 비어서 입원병실까지 정해 놓았다.
그런데 입원환자인 나보다 더 우아하게 걸어오는 엄마대신 엄마의 루이비* 닮은 가방을 내가 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링거거치대를 질질 끌고 엄마의 입원 전 검사들을 따라다녔다.
"팬티까지 벗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한 듯 촬영기사분이 내게 말했다. 돈다발에 은행통장까지 팬티에 달린 지퍼 속 주머니에 들어있었던 터라 X레이 촬영 중에 다시 팬티를 벗어야 되는 사태가 발생한 거였다.
나도 처음 보는 지퍼 달린 팬티가 신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와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누웠다. 아직도 찍을 촬영들이 많은지라 지퍼 달린 팬티와 정장바지 속에 입은 또 하나의 바지를 벗고, 환자복을 입기를 부탁. 부탁. 화까지 냈지만 이 악물고 엄마가 이겼다.
얼마 후 CT촬영 타임에 엄마는 침대에 누인 채로 팬티와 바지가 벗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촬영을 위해 이동용침대에 누인 엄마가 지퍼 달린 팬티와 훅이 있는 바지를 환자복안에 입고 있을 줄은 나 외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팬티는 나에게 전달되었고 그 와중에도 엄마는 팬티 속 돈다발과 통장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다.
사물함 자물쇠가 있냐고 물었고 내가 잘 가지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지만 속으로 '거봐. 할마씨. 내 말 좀 듣지. 고집고집.'
간호사들에게 엄마의 인사치레는 아주 공손했다. 혈관을 찾지 못해 몇 번을 바늘로 찔러도 '고마워요'
혈압이라도 재로 오면 '고마워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60이 되도록 몇 번 들어보지 못한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자식에겐 왜 그리 인색한 걸까?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
Ct촬영상 오래전 다친 듯한 허리에 금이 있었다. 간호사들이 혹시나 혼자 움직이다 다칠까 비상벨을 눌러달라고 부탁부탁을 했지만 엄마는 꿋꿋하게 혼자서 화장실을 다녔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몸을 돌려서 모른 척했다. 어차피 내 말을 들을 엄마가 아니니까.
새벽에 눈을 떴다.
혈압체크ㆍ 혈당체크ㆍ뭐 등등 체크를 위해서 불을 켯기 때문이다.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의 눈과 딱 마주쳤다. 간호사들의 누워계시라는 지시 아닌 부탁을 몇 번이나 했지만 역시 꼿꼿하게 앉아 계셨다.
어휴.
남자간호사가 링거를 체크하러 들어왔다.
"보호자님! 어머니 누위 계셔야 해요"
아. 나도 환자로 입원 중인데 보호자로 불러진다.
그 이후로도 엄마는 내가 잠깐씩 병실을 나갈 때마다 따라 나오신다, 모든 시선과 보청기를 장착한 귀는 나를 향해있기 때문이다.
5인실 병실에는 각기 다른 연령대가 입원해 있는지라 조용했다.
병실 커튼으로 가려진 서로의 영역을 전혀 침해하지 않는 룰이라도 정해진 듯했다.
나야 폰으로 시간을 메울 수 있었지만 엄마는 나와의 수다로 이 시간들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엄마는 보청기를 껴야만 소통이 가능한지라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된다.
무엇이든 궁금하고 본인이 알아야 하는 엄마인데, 담당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조근조근하시다.
한 이틀이 지나니 엄마의 답답함과 궁금증이 폭발했다. 말수를 줄인 나를 향한 눈빛은 스토커의 수준이다. 간호사들의 성화는 여전했다.
"환자분 누워계셔야 해요"
"제발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제 말은 안 듣습니다"
내가 폭발했다.
주위 분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좀 시끄럽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어가 그리 궁금한데"
엄마는 병원에 입원만 하면 천국으로 변하는 줄 알고 있었다.
모든 통증이 한꺼번에 다 사라지고 펄펄 날아다닐 줄 알았나 보다.
며칠 그리 맛있던 병원밥도 자꾸 먹으니 식상하고. 종일 본인 이야기 들어줄 딸이 옆에 있는데 말 한마디 못 한다.
그리고 그 잘난 아들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화가 난다.
전화라도 와야 뭐라고 하소연이라도 해 볼 건데 연락도 없다.
드디어 간호사들에게 까지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엄마는 링거액 때문에 자주 봐야 하는 소변보기까지 귀찮다고 약을 달라고 하신다. 부득부득 우겨 되니 산부인과 가서 진료 후 약을 처방한다고 했더니 한숨을 쉬는 걸로 수용하셨다.
내가 졌다.
환자복을 나 먼저 벗기로 했다. 엄마랑 더 같이 있다가는 간병인들에게 민폐를 넘어 진상환자로 낙인(?)되실 거 같은 불길함이 스멀스멀 밀려왔고, 나 역시 '천하에 못된 하나밖에 없는 딸'로 다시 등극할 위험수위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엄마 나 내일 퇴원해" "나도 집에 가고 싶은데""오빠들과 의논해 봐. 나는 선택권이 없어"
그렇게 엄마는 일주일을 더 '병원감옥살이'를 한 후 퇴원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