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가 울린다.
'안녕하세요? 여긴 00시 치매안심센터인데요. 000 할머니 따님이시죠?'
이 무슨. 치매센터라니?. 그동안 오빠들이 위로라고 해준 '엄마가 이제 어린애가 되었잖아'라는 말들이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아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신가요?"
'아 00시에 치매안심센터가 생겨서 할머니가 다녀가셨어요. 보호자연락을 따님에게 해 달라고 하셨어요. 0월 0일 00 병원에서 치매검사를 받으시라고 안내드립니다'
한옥타브 올린 상냥한 목소리로 검사 시 보호자가 꼭 필요하다고 공지를 이어갔다.
잘 알겠다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치매검사를 받아보겠다고 하셨다. 검사 당일 엄마를 모시고 치매검사가 시작되었다. 본인용과 보호자용 검사지로 따로 검사를 마친 후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엄마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본인과 연관된 사항은 물론이고 나도 기억 못 하는 오빠들의 연락처를 외우고 계셨다. 뇌 촬영은 지정병원에 가서 다시 촬영을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노년이라 약간의 뇌 손상은 있지만 대면조사 결과 치매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의사 선생님은 결론지어 주셨다.
그런데 1년 후 문제가 발생했다. 재검진 시기가 되었다는 연락이 다시 내게로 왔다. 가족톡에 이 사실을 알렸고 '엄마의 의견에 따르라'라고 지시가 내려졌다. 대면검사 후 전혀 문제없음으로 결론지어졌다. 하필 뇌촬영은 일정이 맞지 않아 다른 날로 예약되었다.
엄마혼자서 다녀오셨고 엄마의 급박한 연락이 왔다. 뇌 영양제를 먹어야 하니 보호자를 데리고 꼭 다시 오라고 했단다. 당일 급한 일정이 있어 '걱정 마시라' 아무리 설득을 해도 엄마는 딸보다 더 신뢰하는 마을화관에 수업하러 오시는 선생님에게 의논을 했다. 그분은 '치매이시니 뭐 어쩌고 저쩌고' 마을회관에서 떠들어 되었단다.
그리고 다음날 급기야 직접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회의 중이었고 문자를 보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통화를 하는 중. 나에게 꼭 약을 드셔야하니 병원엘 모시고 가야한다고 꾸짖듯이 말하는 그분에게 '엄마가 치매이든 아니시든 그건 우리 가족이 결정할 부분이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치매라고 확정하고, 노인네를 불안하게 만드는 근거가 무어냐?'라고 단호하게 물었다. 당황한 그분은 애둘러 변명을 늘어놓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엄마는 무어라고 이야기를 하셨길래.
지나간 겨울 김장을 마친 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아직 김장 안 하셨지? 우리 집 양념이 많이 남았으니 내가 김장하러 갈게. 배추만 다듬어서 절여주면 될 거 같은데"
'배추가 어딨냐? 그 선생님이 뽑아 가기로 했는데. 나머지는 너거 큰오빠 주어야 하고' (그 선생님이 바로 엄마를 치매환자라 겁준 분)
"아니 엄마 배추를 달라는 게 아니고 엄마 김장을 할 거라고"
'내가 무슨 힘으로 배추를 절이냐'
다시 급발진하려는 내가 숨을 돌리는 사이 엄마는 전화가 끊긴 줄 알았는지
'지랄을 하네. 미리 이야기를 하든지. 다 준다고 했는데'
오랜만에 듣는 우아한 엄마의 욕 '지랄을 하네'가 아닌 불만이 폭발하는 '지랄을 하네'였다.
다시 숨 돌리기를 한 후 큰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이러이러한데 배추가 필요하냐고. 엄마 김장은 큰오빠가 할 거냐고. 큰오빠는 필요 없단다. 아파트 앞 텃밭이 있어 배추를 심었단다.
나도 이젠 필요 없어.
가족여행이 있어 지나는 길에 김치 한통을 담아 잠깐 상주에 들러서 전했다. 그날은 날씨가 엄청 추웠고 비행기시간이 있어 급히 돌아섰다. 그날도 무어가 그리 불만인지.
"지랄하네. 여기까지 온 김에 마을회관 어른들께 인사라도 하고 가지"
그놈의 '지랄하네'는 엄마에겐 그냥 추임새인가 보다 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무슨 김치가 맵기만 하고 시어터졌네.
엥?매운건 이해되는데 시어 터졌다는 건 도대체 이해불가다.
결국에는 우리 둘째가 시간을 내서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나의 짐작대로 그냥 건강염려증이 극에 달한 엄마에게 뇌영양제가 처방되었다. 또다시 한알의 약이 추가되었다. 제발 지난번처럼 약물과다 복용으로 인한 연락이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시 가족톡에 글을 올렸다.
어차피 내 말은 듣지도 믿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나에게 왜 보호자로서 연락을 받아야 하는지 답을 부탁한다고.
엄마에겐 바른 소리 따박따박하는 딸년보다는, 우유하나 더 가져다주고 듣고 싶은 소리 찰떡같이 해 주는 누군가가 더 본인을 위한다고 생각하시겠지. 그냥 나쁜 딸이라 하고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