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오빠는 오지 않았고, 둘째 오빠는 추석 당일에 왔고, 막내오빠네는 방금 갔단다. '넌 언제 오니?' 묻지는 않았지만 전화를 끊지 않고 긴 침묵시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의 답을 기다리시는 듯했다. 난 '잘 지내시라'는 인사로 답을 전했다.
추석 전날 명절 잘 보내시라 연락을 드리고 추석이 지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엄마에게 다녀오진 않았다. 큰오빠의 나를 향한 무기인 '너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잖아' 이 말이 내 귀에 캔디처럼 뱅뱅 돌지만 나는 무시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걸 이렇게 악용하면 안 되지. 이건 하나님께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엄마가 병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시고 드디어 엄마의 최고 추종자인 막내오빠가 퇴원수속을 밟았다. 이젠 누가 엄마를 상주로 모셔다 드릴건지의 논의가 시작된듯하다.
본인의 집 이외의 장소에서는 일박이 불가한 큰 올케언니덕에 큰 오빠는 단 한 번도 친정집에서 잠을 잔적이 없다. 물론 엄마와의 지긋지긋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지만 늘 큰 올케언니의 승리로 끝났다. 신데렐라처럼 12시 땡 종이 울리기 전에 도착한 남편의 얼굴을 보아야만 엄마와의 줄다리기는 끝이 났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를 이겨먹은 유일한 여성일 것이다. 덕분에 큰오빠는 '세상에 둘도 없는 싫은 소리 한번 안 한 아들'이란 칭송을 엄마로부터 늘 나에게 듣게 했다.
이런 큰 올케언니와 외손녀를 케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 탓에 큰오빠 열외. 그리고 나면 남는 이는 당연하다. 막내오빠와 나. 허리통증상 장거리 운전은 불가하다고 이번엔 나도 단호히 거절했다. 열받은 막내오빠가 큰오빠에게 바통을 강제적으로 넘겼다. 일요일 아침에 큰 오빠가 모셔다 드리기로 했지만 결국엔 막내오빠가 다음 주 중에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고 한다.
둘째 오빠의 분노 섞인 등장으로 중단되었던 단톡방이 잠시 다시 열리고 또다시 주저리주저리 지루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었다. 큰오빠는 공감이란 수단으로 장남의 짐을 은근히 넘기고, '오직 엄마만을 위하여'를 외치는 막내오빠는 모든 탓을 둘째 오빠에게로 돌리고, 그리고 나는'출. 가. 외. 인.'이라 불평등한 대우를 서슴지 않은 엄마에게 로 이 모든 원인제공자라 결론 냈다. 또다시 발끈한 막내오빠 탓에 '나는 이만' 톡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는 모르겠다.
나답지 않은 단호함 때문이었는지 추석 전 조심스러운 큰 오빠의 톡이 왔다.
'잘 지내니? 몸은 어때? 그리고 이어지는 추석명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듯한 톡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