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압적인 어머니의 상에 강하게 부정하는 중이다. 나는 절대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을 거라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다짐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엄마와의 대화 중 많은 부분을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라고 단호한 목소리를 낸다. 엄마에 대한 투덜거림이 있을 적마다 막내오빠는 비웃듯이 그런다.
"너도 엄마랑 똑같아"
"앞으로의 너의 모습이야"
내가 얼마나 이 말에 진절머리 치는지 안다면 조금은 자제해 주려나? 맞다. 나는 엄마의 유전자를 닮을 수밖에 없는 붕어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가끔씩 절망하게 한다.
이 절망감 때문에 성격유형에 대한 동영상과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관심으로 검색이 시작되었고, 동영상 아래 달린 웬만한 댓글들은 다 읽어보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딸들이 엄마와 가족에게 당하는 부당한 대우와 가스라이팅에 버겁다 못해 죽을 만큼 힘들어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난 그동안 엄마에게 속았다.
10대 중반부터 들어온 '남의 집딸들은 안 그러던데'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모든 자식들의 주도권을 본인의 손아귀에 갖고 있어야 했는데 주도적인 삶을 추구하는 내가 엄마는 버거웠을 것이다.
'엄마를 닮아서 못땟다'는 막내오빠의 이 말에 세뇌당한 나는 나도 나르시시스트일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히도 많은 댓글들이 나르시시스트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본인이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어서(언니와 여동생이 없어 서러운 딸) 맘 나눌곳이 없던 나는 정말 못땐 딸인 줄 알았다. '스튜디오 오아시스' [김현옥교수의 심리이야기]는 나의 맘을 토닥이는 좋은 언니의 역할을 해 주었다.
[김현옥교수의 알고 나면 이해되는 성격이야기]는 다양한 성격유형들을 좀 더 이해하게 했다.
지독한 성 차별에 대한 엄마의 가스라이팅은 어려서부터였다. 가시나가... (가시나는 계집애의 경상도사투리)
아버지나 오빠들에겐 들어보지 않은 엄마에게만 들어 본 호칭. 가시나가. 가시나가. 가시나가. 지금도 어색하다.
'아버지가 너와 내 병원비 때문에 무너졌다고 엄마가 그러시더라.'
병원에서 퇴원한 엄마와 대화를 나눈 큰오빠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쯤인지 둘째 오빠는 웅변을 했었다.
나는 오빠의 웅변연습 하는 모습을 흉내 내다가 진짜 웅변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이 웅변대회가 큰 사고로 이어졌다.
그 당시 '아빠하고 나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재수'(성은 기억이 안 남)를 기리는 효행에 대한 웅변대회였다.
난 예선에서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고 학교에서 본선을 위해 연습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자전거 사고가 났다. 다리에서 추락했고 뇌진탕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토하기를 멈추지 않는 나는 엠블런스에 실려서 대구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행스럽게 엄마친정 쪽 친척분이 운영하는 병원이셨고 몇 주간의 입원 후 퇴원을 했다.
퇴원하기 전날 아버지가 내가 좋아한다고 배 몇 개를 사서 들고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오셨다. 엄마의 폭풍잔소리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깨어난 것만으로도 행복하셨던 걸까? 아니면 병원비 지불을 위해 땅 한 마지기를 팔아야 해서 진짜 속상하셨을까?
엄마는 천만 원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도 나의 병원비로 땅을 팔았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오빠들에게 아버지의 삶의 무너짐이 내탓이라 또 다시 책임전가되었다.
그리고 단호해진 큰오빠에게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라고 서러워 서러워 우셨다고 한다. 늘 그러셨던 것처럼.
여전히 '딸로서의 의무는 강조되나 권리는 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라는 엄마의 지독한 성 차별 가치관은 변함이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이젠 그리 속상하지않으려 한다. 내가 엄마를 바꿀 수 없으니 내가 생각을 바꾸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