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화해는 가능하긴 한건가?

너 빌려간거 안 갚았다.

by 바다의별
나는 왜 이렇게 엄마이야기에 발끈거리는 걸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친정보다 시댁에 대한 끈끈한 정이 더 많다. 친정엄마의 느낌처럼, 엄마보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나 시댁 이야기를 할 때 나의 눈빛은 더 따뜻하다.



올봄 엄마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엄마 나 진짜 섭섭해서 물어보는 건데 나한테 20년 전 빌려준 천만 원 그거 지금 나한테 받아서 누구 주려고 그랬어?"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가 또 나왔다.


엄마는 늘 지나치리만치 돈 이야기에 당당하시다. '난 너희들에게 손 벌리지 않을 만큼 돈이 있다'라는 것 때문이다.

나만 모르는 엄마의 재산은 오빠들은 다 알고 있는 듯하다. 금융 실명제가 되기 전 엄마는 세금혜택을 위해 딸이 아닌 큰 올케언니의 이름을 빌려서 정기적금을 들었었다. 엄마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 그때도 참 섭섭하더구만.


엄마의 통장에 in 한 Money는 절대 out 하는 적이 없으니 차곡차곡 누적되어 있을 것이다. 혹 엄마의 새 집을 건축하느라 지출이 되었더라도 엄마의 저 당당한 말투를 보면 꽤 있다.


요즘 친정식구들의 화두는 엄마가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땅이다. 그것을 팔기로 논의되었다고 막내오빠가 전했다. 상속세의 문제도 있고, 이제 곧 아흔을 바라보는 엄마 살아생전 잘 쓰시다가 돌아가시게 하겠다는 취지에는 나도 적극 동의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엄마가 일방적으로 쏟아낸 상속지분에 대한 선포는 공증받은 유언장보다 더 효력이 있어 보인다. 엄마가 '너는 출가외인이라 안 준다고 했다'라고 다시 대못을 '꽝'하고 박아준다.


가라앉을만하면 휘젓고 도대체 무슨 심보일까? 어차피 나는 관심이 없다는데(사실 조금이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쓰다 남으면 현찰 천만 원 정도는 준다고 했다고 생색을 내는 통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선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가는 건 딸인 내가 편해 보이니 그렇게 해 달라고 하고선 오빠는 외출을 했다.


몇년전 일이다.

엄마에게 다니러 갔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두락'이라는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예약을 해 두었다. 엄마는 그래도 딸이 온다고 좋으셨던지 텃밭에 있는 참외를 따 오시다 조경용 돌에 걸려 넘어지셨다.

하얀모시적삼으로 이마에서 선홍색 피방울들이 쉴 새 없이 흘렀다. 너무 놀라 응급실로 달렸고 혹시나 하는 맘에 CT촬영까지 했지만 이마 몇 바늘을 꿰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이고 뭐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몇십만 원의 병원비를 밥값대신 지불했지만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며칠 후 소독 및 치료를 오라는 병원의 지시를 전달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었다. 갑자기 엄마가 서운했는지, 아님 병원비를 지출한 나에게 당연한 처사임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뜬금없이


"너 지난번 천만원 빌려간 거 안 갚았다"


머리가 하얬다.


'무슨 소리? 내가 언제 엄마돈을 빌렸지?'


버퍼링이 잠시 있은 후 20년 전쯤 어린이집 건물을 구입하느라 빌린 천만 원이 생각이 났다.


"엄마 내가 갚지 않았어?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아니 너 안 갚았어"


돌변한 차분한 목소리에 난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갔다. 엄마의 표정은 한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순간 온몸으로 소름이 솟아 나왔다.


"엄마 그걸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어? 차라리 진즉 이야기하지. 언제 적 이야기인데"


나를 볼 때마다 천만 원을 기억해 냈을 엄마를 생각하니 그동안 왜 그토록 벌레 보듯 보았는지 알 거 같았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나의 목소리는 달리는 기차처럼 빨라졌다.



엄마에게 천만 원을 빌린 그날은 몇 안 되는 치욕과 수모의 날이었다.

1층만 임대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우리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건물전체를 매매하다 보니 천만 원 정도의 돈이 부족했다. 물론 20년 전 큰돈이다.


큰올케 언니의 이름으로 적금을 들었다는 엄마의 자랑이 있었기에 엄마에게 울면서 부탁했다. 돈 앞에서는 한치의 타협이 없는 엄마에게 돈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를 너무나 많이 아는 나였지만 시댁의 도움까지 다 동원한 상태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예상대로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동원해서 수치스럽게 했다. 그래도 엄마의 딸인지라 물러서지 않는 나의 집요함에 엄마는 매월 100만 원씩 갚겠다는 약속을 담보로 농협엘 같이 갔다. 그곳에서도 쉼 없는 투덜거림에 보다 못한 담당직원이 그랬다.


"할머니 통장에 돈 많으시네. 에구 할머니들 다 그러셔요"


돌아오는 한 시간 반을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눈물, 콧물 얼굴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이때만큼 남편이 왠수 같은 적이 또 있었을까?



20년 가까이 흘렀으니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엄마 성격에 빌려준 돈을 안 받을 분은 아니고 몇 차례 갚다가 엄마가 받기 그랬는지 안 갚아도 된다고 그랬던 걸로 기억이 난다.


엄마는 이 말씀지금 타이밍에 하지 말았어야 하셨다.


"아~~ 그때 엄마가 나한테... "

"아니 갚으라는게 아니고 너 빌려줬었다고. 분명히 갚지는 않았어."

"아니 엄마 이 돈 다시 꼭 갚을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혹시나 나만 기억이 없나 싶어 큰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목소리를 닮은 큰오빠 특유의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이제 어린애가 되었어. 네가 이해해. 너 하나님 믿는 사람이잖아'


개뿔. 이럴 때만



그리고 나는 다시 맹세, 맹세를했다. 두 번 다시 엄마를 만나러 오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를 기억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