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사에 대한 글들을 오픈하기 전 막내오빠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막내오빠 이야기가 비중이 클듯했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의지했고 나에게 의지하게 한 오빠다. 그리고 가장 고맙고 가장 미안하다.
내가 가족에 대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나의 오빠로서 기록되는 것이지 김ㅇㅇ 으로 기억되지 않기에 전혀 개의치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사실은 조심스럽다. 현제 엄마의 가장 적극적인 해결자인데 엄마의 치부를 이렇게 까발리는 내가 혼란스럽게 하는 게 아닐까 쉽었다.
사춘기적 나의 일기장을 보고 나에게 실망을 표했던 그때처럼.
큰오빠는 위 다섯 가지 중 거의 '예'이다. 그러면 엄마는 만족하셨을까? 확실하게 아니다. 집을 너무 늦게 샀고(현제 아파트에 살고 있고 상주에 지금 엄마가 살고 계신 집도 큰오빠의 명의로 되어있다).
결혼을 했지만 엄마의 기준에서 큰 올케언니는 며느리로서 거의 빵점 수준이었다.(너무 극단적 표현인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니 도리어 사이가 돈독해진 느낌이다.
큰오빠는 특별한 첫사랑으로 결혼에 성공했다. 이건 큰 올케언니의 열정적인 사랑의 승리일 것이다.
엄마와의 그 모진 팽팽한 줄다리기에 조금씩 이겨나간 올케언니의 의지와, 변함없는 오빠를 향한 사랑에 나는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이건 내가 멀리서 어려서부터 오래도록 바라본 객관적인 입장이다. 언니와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오래전이어서. 더더욱이 깊은 대화는 나의 십 대에 나눈 이야기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형식적 인사치레하는 정도. 그래도 언니는 고맙게도 미술 선생님인 조카가 날 닮아서 그렇다고 해 준다.)
둘째 오빠는 4가지가 '아니다'이다. 마지막은 엄마의 희생으로 해결한 부분이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분이다.
앞글에도 말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둘째 오빠의 모든 행위는 안타깝게도 '나쁜짓'으로 연결되는 거 같다.
그러나 오빠는 그 어려운 도스컴퓨터를 독학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혼자서 대학교도 졸업했다. 40년 전에도 '리바이스'청바지를 입었고 나이키 신발을 신었었다. 본인만의 확고한 삶의 기준이 있다. 단지 엄마의 기준에 맞지 않을 뿐이다.
둘째 오빠는 오랜 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책 읽기와 글쓰기로 표출했다. 정말 묵묵하게. 지금도 오빠의 과묵함에 넌덜머리 내 하며 못 견디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혀를 내 두를지경이다.
지금도 오빠와의 일주일 동거를 못 견뎌서 온 가족이 총 출동해서 수습을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무한반복 진행 중이다. 엄마속은 아닌거같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질문에 말을 상냥하게 안 해서란다.
'제발 좀 그냥 내 버려주세요. 본인이 원하는 대로.'
막내오빠는 위 조건을 다 만족시켰었다가 다시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엄마의 기준에 그나마 만족한 결과를 내주었던 자랑스럽던 성공은 엄마의 개입(?) 속에서 무너졌다.
막내오빠의 성공과 실패는 나에게로 그 영향이 그대로 밀려왔다. 나비효과처럼.
막내올케언니는 내가 다니는 교회옆에 살고 있었다.
내가 집 가까운 교회로 옮겨 오기도 전에 시금치에 시자도 싫다고 떠들어댄 언니덕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시누이년'으로 색안경은 이미 끼워져 있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지나친 여동생에 대한 남편의 떠 받듦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본인의 친정식구들에 대한 열등감까지 양념처럼 추가되지 않았을까 쉽다. 언니에겐 엄마가 다른 자매가 많았었다. 이것은 엄마에게 치명적인 흠으로 비난거리를 제공했다. 차라리 낳아준 엄마를 소개하지 말았더라면 더 나은 결정이었을까?
내가 구미로 이사 오기 전까지 살가운 딸이 그리웠던 엄마에게, 챙겨주는 엄마가 그리웠던 언니와 성공가도를 밟아가는 막내오빠 가족은 충분히 엄마에게 만족감을 제공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아버지덕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오빠들의 귀여운 막냇동생일 뿐인 내가 떡 하니 나타났으니 밉지 않았다면 그건 분명히 거짓말일 거다. 하필 나보다 나이도 두 살 어렸다.(본인으로부터는 한 번도 나이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두 아들의 엄마인데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언니는 '굿'을 하면서까지 아들을 원했고,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점지해 주었다는 말과 함께 아들을 낳았다. 그 당시 나에겐 요즘시대에? 경기를 할 이야기였다.
내가 시집살이를 경험하지 않았고, 하나밖에 없던 시누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기에 자매도 없던 나는 시집살이라는 이야기는 남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