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속성은 완벽하게 채울 수 없는 요구가 있다. 엄마를 바꾸려 하는 건 나의 편리를 위해서다. 불가능한 일이다. /정신분석 상담전문가 박우란
엄마를 이해하려 해요.
난 안다.
엄마 역시 외할머니로부터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위로받지 못한 내면의 아이가 지금도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딸 넷의 가난한 장녀로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짊어졌을 짐의 무게를 아직까지 해결 받지 못한 채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닐까?
엄마의 외할머니로부터 가난해서 받았던 서러웠던 어린 시절을 아주 가끔 슬쩍 드러낸다.
엄마는 아프신 아버지와 자기밖에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위하여 지방 유지인 외할머니댁으로 갔단다. 그 당시 학교선생님을 사위로 두었고, 집에는 일꾼들이 많았다고 한다.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엄마의 감각들은 부자였던 외갓집에서 배워 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배가 고파 구워 먹은 감자를 외할머니는 입안을 후벼 파서 끄집어내었다고 한다. 무능력한 딸과 사위를 대신해서 큰 손녀딸(엄마)이 화풀이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결핍 때문에 품었을지 모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악물고 다짐했던 맹세들 때문에,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만족이란 그릇]을 저토록 붙들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톡' 엄마의 아픔을 건드리기만 해도, 봇물 터지듯 치솟아 오르는 서러움에, "미안하다"" 고맙다" 생각해 볼 틈도 없었든 건 아닌지...
딸이어서 존중받지 못한 경험들이 지금 하나뿐인 딸에게 그대로 행하는 건 아닐까? 이 글은 꽤 오래도록 적었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너는 많이 배웠으니까 나하고 달라야지"
이 말씀은 엄마의 진심인 거 같다.
세상에 한분밖에 없는 엄마에게
엄마.
하나밖에 없는 딸이 이렇게 엄마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털어놓았어요. 엄마에게 직접 이렇게 흉을 보았다면 엄마가 어땠을지 상상이 가네.
엄마.
엄마가 아흔이 넘은 외할머니의 병시중을 재산만 채간 이모들을 대신해서 오랜 시간 하시는 걸 내가 보며 어른이 되었답니다. 그러고도 이모 탓은 오래 하지 않았어요. 맏언니답게 잘 먹고 잘살아라 그랬죠.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된 60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뿌듯해하시던 엄마의 모습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나의 60대를 그렇게 응원한 거 맞죠?
엄마.
엄마로부터 받은 유전적, 환경적 요소들이 나에게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한 부분들이 더 많았음을 알아요. 그럼에도 내가 이토록 화를 내는 건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마주하기 때문이었지요. 전문용어로 [투사]이죠. (어렵네. 오빠의 말처럼 전문용어 사용해서 죄송해요)
'엄마 때문에 내가 이래'라고 엄마탓하는 거지요.
엄마.
이제 엄마의 어깨에 매달린 딸로서의 고되었던 삶. 엄마로서의 무거운 짐들 성품상 다 내려놓는 건 어려우실 테고. 이제 조금만 더 내려놓고 자유해졌으면 좋겠어요.
엄마.
내 몸이 회복되면 엄마가 걸을 수 있을 때 지난번처럼 카페투어 다시 해 봅시다.
그때 엄마가 약속했잖아. 커피값은 엄마가 낸다고.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요.
세상에 히나밖에 없는 모든 딸들에게
당신은 보배롭고 존귀한 딸입니다.
옛날 기억 떠올리며 웅변버전으로 한번 말하고 쉽다.
이제 타인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마시라고! 본인의 거울에 비추인 나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삶으로 선택해 보자고! 엄마. 나.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모든 딸들에게, 소리 높여! 소리 높여! 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