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동일한 상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상처가 기억난다.
나는 서두에 나의 50대와 화해하기 위하여 나의 10대와의 화해가, 10대와의 화해를 위하여 엄마와의 화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실은 50대와 화해를 한다는 건 내가 도피성으로 선택한 공동체와의 화해를 위한 복선이었다.
내가 브런치에 나의 50대를 용기 있게 까발리면서 읽은 작가님의 글이 있다.
번아웃이 오는 원인은 '정체성의 혼란'이라고 깔끔하게 정의를 내려주셨다. 나는 10년 치 고민이 한방에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십 년 전 나의 번아웃은 내가 속해있던 많은 공동체(가족포함) 속에서 극심한 갈등 속에 있었다는 것이 글을 적어가는 동안 확실해졌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정직과 성실함]이 내 삶의 기준이었다. 불법과 비리로 얼룩진 나의 사업체와 연결된 공무원들의 실체를 너무나 여실하게 보게 되었다(죄송하다. 다수의 멋진 공무원분들께는). 그곳에 빌붙어 술대접과 아부로 이익을 창출해 가는 분들의 사업수단(나로선 상상불가한 일들이 수두룩했다)은, [순수해]라는 이미지가 어울렸던 나를 수시로 혼란에 빠뜨렸다.(이건 다수의 시 직원들과 연합회 임원진들, 그리고 원장님들이 내게 직접 알려준 객관적 평가였다)
화려한 애굽땅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겪은 왕자모세처럼 나도 그랬다.
'이것들은 도대체 무어야?' 재래식 화장실의 벌레처럼 보이는 이들을 향한 나의 물음표였다.
모세가 바로의 칼끝을 피해 미디안광야로 도망치듯 공동체 속으로 도망쳤다. 모세는 도피성으로 떠난 그곳에서 살인자, 처가살이하는 양치기신분이 된 것이다. 처음엔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의 속성이 나의 미디안 광야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동체를 향한 특별한 환상의 바벨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려앉았다.
오빠의 일로 서로에게 색안경이 씌워진 양아치 아줌마 무리와의 대립은 여전했다. 대립이라기보다 피해의식까지 절어버린 나의 일방적 저항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듯하다.
이 예들의 공개는 몇 번이나 망설였다. 이 글들은 일찌감치 결론을 적어두고 이어왔다. 오늘도 망설였지만 방금 받은 따뜻한 전도사님의 안부전화에 공개하기로 했다. 고름으로 저장해두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10년 가까이 여러 가지 이유로 매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가벼운 몸살부터 때로는 수술까지. 그러나 단 한 번도 엄마의 위로나 병문안은 없었다.
내가 아팠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는 본인의 아픔이나 가족 중 누구의 축농증 수술 이야기 같은 걸로 상황전개를 바꾸었다. 지금은 막내오빠의 병들었음이 더 엄마의 생각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로 결론 낸다.
몇 년 전 목디스크 시술로 10일 정도 입원을 했었다. 퇴원 후 공동체 화장실에서 누군가와 거울 앞에 같이 섰다.
"관심 좀 받으니까 좋아?"
무슨 소리? 설마 내가 생각하는 거 아니겠지?
그분은 공동체를 대표하는 수준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느낀 그분의 표정은 내가 생각하는 거 맞았다.
한동안 이 문장은 '너는 출가외인이니'와 버금가는 수준의 발작버튼으로 작동했다.
5년 가까이 정신질환을 앓던 두 분을 케어했던 대가는, 내가 둘째 오빠와 막내오빠를 꽤 긴 시간 케어했지만 한 번의 고마움도 아니 기억조차 없는(도리어 나를 원망하는) 엄마처럼, 나조차 우울증 환자라 기억해 내는 이들을 보면서 나의 오지랖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자책했다.
나는 몆 년 전부터 엄마에게 화해를 요구했다.
'엄마 때문에 고마운 것도 많았지만 나의 마음이 아팠다고. 한 번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해달라고'
엄마는 그때마다 화를 냈고 돌아서서 비난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쩌면 나에겐 엄마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이 시작되는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공동체에도 십 년 전에 나의 감정을 거칠도록 솔직하게 표현했다. 물론 거센 항의에 부딪혔지만 엄마와의 화해를 기다린 것처럼 이곳에서도 화해를 원하며 눈물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나를 비난했던 것보다 더 많은 비난의 시간이 있었고, 배척의 시간이 있었고,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일진도 아닌 [양아치 아줌마들]이란 안경이 내게 있었고. 그들에겐 [자기애 충만한 싹수없는 공주병환자]라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었을 뿐이다.
이제 안경은 벗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들의 안경을 벗는 건 그들의 선택이다. 내가 긴 시간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벗어달라 떼를 쓸 수도 부탁할 수도 없다.
엄마가 우아하게
"나는 아무 뜻도 없이 말했는데 네가 그러네"
그러시듯 그들도 그럴 수 있다.
얼마 전 기어이 다시 눌러져 버린 발작버튼 사건으로 나는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나? 그건 이 공동체를 벗어나는 건데. 진지하게 다시 고민했다. 그리고 적었다.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시절은 누군가의 비난과 험담에 장단을 맞추며 즐거울 때였다.
그러나 '이제 그만둘래. 그리고 듣고 싶지도 않아'라고 나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나의 공동체에서도 '이만 멈추자'라고 다시 말하면 된다. 나머지는 또다시 그들의 선택이다.
[출가외인으로 살련다]와 같이 그래 [내가 관심종자라고 생각했구나]로 그의 생각을 덤덤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내가 많이 배운 티를 내며 엄마를 무시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자격지심처럼, 혹여나 나를 향한 시기와 질투라면 즐기는 건 성향상 맞지 않고 내가 관종이라 자책하지는 말자.
가족카톡에다 해독 어려운 낱말 남용으로 가족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둘째 오빠처럼, 고급문장을 사용하는 배려심 없는(?) 화법이 밥맛없는 꼴값으로 보인 다하더라도 나는 그냥 격조 있는 우아함으로 살려한다.
내가 엄마와의 친밀감을 위하여 내가 학습한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듯이, 굳이 그들과의 동침을 위하여 나의 수준을 아래로 떨어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애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그 또한 나의 몫이다.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나답게 살기로 했으니까.
본질에 집중하자.
사람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누누이 들었고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