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페스티벌이 있던 날 아버지와 춤을 추었다.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면 아버지는 풍물놀이패에서 괭과리를 치면서 리더를 하셨다. 그 뒤를 큰오빠가 이었고 지금은 풍물놀이용 악기들이 친정집 2층 다락방에 고이 모셔져있다. 아버지의 끼를 닮은 건지 나도 어려서 부터 무대에 서는 걸 어려워 하진 않았다. 졸업 페스티벌을 색다르게 하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졸업 페스티벌]을 기획했고, 대부분 엄마를 모시고 온 과친구들과는 달리 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싸이키 조명 요란한 디스코텍을 처음 방문하신 아버지는 잠시 어리둥절 해 하셨지만, 진행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흐뭇함을 감추지 않으셨고 눈을 떼지 않으셨다. 딸과 두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던 아버지의 행복한 추억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지 않을까 쉽다.
속상한 아버지
결혼을 하고 인천에 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한번 오너라. 너거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 너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야 집엘 갔다.
'너 때문에 눈을 못 감으셨어' 하며 아버지의 눈을 앞에서 감겨주시던 작은아버지의 목소리엔 서운함과 속상함이 묻어있었다.
아버진 교통사고가 있으셨고 며칠 후 세상을 떠나신 거였다. 난 많이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갑작스레 맘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나의 결혼에 더 많이 무너져 내린 아버지.
자그마한 교회에서 초라한 나의 결혼식이 있던 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아무런 표정 없이
"너의 드레스가 찢어졌더라"
그 한마디뿐이셨다.
아버지의 유일한 비타민이요, 희망이었던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찢어진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을 아버지가 기억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아무런 기대도 없는 듯 초라하게 술을 더 많이 의지하셨다.
"너 때문에 아버지가 많이 실망했다"
엄마는 1년에 한 번이나 올까 말까 한 나를 볼 때마다 싸늘하게 투덜거렸다.(엄마는 일찍 결혼한 내가 부끄럽다고 5년정도 친정집에 오는 걸 꺼려 하셨다) 나는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묵묵히 듣는거 외엔 할말이 없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왜 벌써 둘째를..." 흐릿해 보이는 눈빛 속으로 아버지의 나를 향한 안타까움이, 안쓰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당신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잘 살아내는 딸내미 집에 한 번도 오시지 못한 채 그렇게 나를 영원히 떠나신 거였다.
'너의 드레스가 찢어졌더라' 그 말씀만을 나에게 남긴 채.
. 그리운 아버지
난 그 이후로 오래도록 아버지를 기억해내려 하지 않았다.
동창들과의 만남 중에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친구들이 당황하리만치 난 완강하게 말을 중지시켰다.
'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모르겠다. 부끄러움이었는지. 아니면 미안함이었는지. 아니면 그리움이었는지.
뒤돌아보면 나는 오래도록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기준이 적용되곤 했다.
특히 남편이나 내 주위의 남자 리더들에게는 늘 나의 보호자처럼 '내편' 이어야 한다는 철없는 아이가 내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남편과의 갈등은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했고, 그 역할이 충족되지 않을 때 나는 화를 냈다. 그리고 절망했다.
작년 이맘때쯤 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그녀가 한 말은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였다.
난 그때.
너무나 깊숙이 꼭꼭 감추어두며, 끄집어내고 싶지도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고, 오랜 시간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통곡하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서투른 표현으로 늘 사랑한다고 혼자 고백하신 아버지!'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난 받기만 해도 괜찮은 거라고 애써 변명했던 것들을 난 바라보았다.
넓었던 아버지의 등이 너무 그립다.
둘째가 웨딩 화보를 촬영하는 날. 나도 예쁜 드레스를 입었다.
그리고 멋진 턱시도를 갖추어 입은 남편과 신혼부부 같이 촬영을 했다. 남편을 닮은 아들도 무심한 듯 엄마의 아쉬운 결혼식 얘기를 기억해 둔 모양이다.
아버지 오래 미룬 이야기. 오늘 할게요. 감사하고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저 예쁜 드레스 입었어요. 이젠 활짝 웃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