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에게.

난 무조건 네 편이야. 그래도 나는...

by 바다의별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

웃음이 사랑스러운 여성 도전자의 사연이 왔다 갔다 바쁜 아침 내 귀에 들려왔다.

그분의 아버지 이야기.

오늘은 나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 무조건적인 나의 편 아버지


어렸을 적.

내게 아버지란 존재는 그랬다.

화 한번 내지 않으시는.
모든 어떤 상황도 이해해 주시고 용서되는.
어떠한 벌 가운데도 면죄가 되는.
너 때문에 산다고 늘 말씀해 주시는.
내가 말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구의 말에도 꿈쩍하지 않던 마음을 움직여 주셨던 아버지셨다.


미군부대 출신 아버지는 훤칠한 키와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분이셨다.

멋지게 군복을 입고 특유의 잘생긴 미소로 찍으신 아버지의 흑백사진은, 드르륵하고 마루의 커다란 미닫이를 열면 이모가 선물했다는 커다란 호랑이 그림 옆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진은 어린 나에게 늘 자랑스러웠다.

마루 정면에 걸려있었기에 그 사진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눈 속에 들어왔다.

지금도 너무나 선명한 사진 속 아버지.
엄마와 달리 나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시다.

바쁜 농사철 부모님의 귀가가 늦은 날 내가 밥을 지은적이 있다. 국민학교 꼬마가 밥을 뭐 얼마나 잘했을까마는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먹었다고, 엄마보다 더 밥을 잘했다'라고 좋아하셨다. 그 이후론 칭찬이 그리우면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엄마의 폭풍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난 밥을 종종 지었다.


과수원 일로 밤낮이 없던 아버지는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오시곤 했다. 엄마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마루 한 귀퉁이에서 쭈그리고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살그머니 나를 안아 미리 깔아놓은 안방이불 위로 뉘었다. 사실 나는 잠이 깼지만 그냥 잠든 척했다. 밥 짓기도 싫고 무언가 엄마의 잔소리가 예상되는 날엔 일부러 자는 척하는 날이 자주 있었다.


그런 아버지 덕에 이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특혜를 누리게 했던 말.
'우리 집 하나뿐인 딸내미'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를 향한 아버지의 편애는 오빠들을 너무나 힘들게 하는 상처로 남지 않았을까 쉽다ㆍ
아주 오래도록,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집의 중심은 나였다ㆍ


. 아버지가 싫어


약주를 너무나 좋아하신 아버지가 술을 드시면 동네분들과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시고 집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버지를 모시고 오라 나를 보냈다.
'아버지 이제 집에 가요' 아버지는 두말하지 않으시고 '어이구 우리 공주' 막걸리 냄새에 찌든 그 입맞춤. 그리고 나를 업어시곤 비틀비틀 휘청대시면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10대 초 어느 쯤인 거 같다. 명절날이었는지. 그날은 많이 취하셨나 보다.

동네 친척분들과 말다툼이 일어났고 엄마의 요청에 따라 아버지의 손을 끌었던 거 같다. 화가 나신 아버지는 나를 때리신 건지 아님 밀치신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때부터 난 다시는 아버지를 모시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필요할 때마다 말씀하신다.

"너 얼마나 못 땠는지 아나. 너 아버지가 그래 이뻐했는데도 한번 때렸다고 두 번 다시 너거 아버지 옆에 안 가더라".

그 이후로 나에겐 아버지의 술에 취한 모습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 견고한 진을 만들었다ㆍ


그래도 아버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내 친구들을 '울 공주 친구'라 불러주셨다.

어쩌다 우리 집 과수원으로 친구들이 놀러라도 오면 자전거 뒤 짐자리에 '수박 한 덩이'' 복숭아 한 대야' 어떨 때는 '사과 한봉다리' 아낌없이 실어 주신 아버지다,
'온실 속 화초'(이건 우리 동네 아줌마들의 평가)처럼 아버지의 스타일로 나를 양육하시고 사랑하셨지만 나는 그 아버지가 부끄럽기만 했다ㆍ


. 창피한 아버지


대학교 다닐 때였다.

미어터질 듯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취객이 비틀거리며 차에 올랐다.

비좁은 차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술냄새와 함께 투덜투덜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 틈으로 혀가 꼬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심장이 멎는 듯했다.


차비가 없으셨다. 처음엔 차비를 요구하던 운전기사분이 아버지와의 안면으로 "다음에 꼭 차비내고 타세요"로 마무리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집에 도착하기까지 10분가량의 그 시간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내가 차비를 내야 하나. 어휴 너무 창피해' 갈등 속에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는 동네 입구에서 내리셨다. 난 두 정거장이나 지난 마을에서 내려 만신창이가 된 나의 감정을 무겁게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왔다.

아버진 그 사실도 모른 채 혀 꼬인 "아이고 우리 공주"를 쉬지 않고 쏟아내셨다.

난 차마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 진짜 아버지 창피해"


짜증을 부렸겠지만 그냥 내 방문을 열고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무조건적인 내편은 아버지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