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Ⅲ

이것이 사과다 - 아버지의 향기

by 시선



열두 살 때였던가...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빈센트 반 고흐, <사과>(1887)


싸래기눈이 제법 사납게 내리던 밤,

들뜬 누렁이 소리에

얼른 방문을 열고 아버지를 마중했다.

아버지를 타고 찬바람이 방 공기를 식히고

뒤 이어 알싸하고 꼬릿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왠일인지 알큰하게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불룩한 검은 비닐봉지를 툭 건네셨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든 저 수상한 물건의 정체는 뭘까...

우리 네 남매의 시선이 쏠린 그 비닐봉지 안에는

다름 아닌, 빨간 부사 몇 알이 들어 있었다.

그 시절 제삿상에나 겨우 오르던 귀한 사과가ㅡ


어머니는 이내 시린 사과를 깎아

아버지에게 한 조각 먼저 드렸고,

우리는 병아리처럼 상에 둘러앉아 사과를 맛봤다.


빈센트 반 고흐, <사과>(1887)의 일부


그런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대뜸, “우리 큰아들많이 먹어라” 하시는 거였다.


그 말에 난 입안에 사과를 머금은 채로

눈알을 굴리며 그 연유를 추적했고,

어머니는 차분히 웃으시며,

“우리 아들이 상 받아서 좋으신 모냥이네ㅡ"

그러셨다.


좀처럼 내색 않던 아버지의 한 마디에

그날따라 사과는 유난히 달콤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참ㅡ 오래도 갔다.




지금도 때때로ㅡ

붉고 탐스러운 사과를 볼 때면

그날의 사과, 그 향과 맛이 입안에 돌고,

겨울 찬바람내가 물큰 콧속에 때면

문득, 그날 아버지의 향기가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