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Ⅱ

눈먼 시선 Ⅱ – 언어의 배반

by 시선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건 아니다.

-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예담)


페터 빅셀의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한 늙은 남자는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사물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며 변화를 꾀한다.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고 의자를 '시계'라고 부르기로 하며... 그렇게 시작한 이름 바꾸기는 마침내 모든 이름을 바꾸기에 이른다. 그의 이름 바꾸기는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켜 놓는다.


사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이름이 바뀌자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르네 마그리트, <꿈의 열쇠>(1927)


마그리트도 언어와 이미지의 경계를 시험한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에서 '이름 부정하기'를 시도한 그는 <꿈의 열쇠>에서 '거짓 이름 붙이기'로 더 과감해진다.

가방을 '하늘', 칼을 '새', 나뭇잎을 '탁자', 꽃을 '스펀지'라고 이름 붙인다. 그림 속 사물과 글자는 서로 어긋나고, 더 이상 서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9)


마그리트와 빅셀은 언어의 불완전함, 곧 '배반'을 통해 우리에게 언어의 본질을 되묻는다.

언어는 언제나 충실한 번역자가 아니다. ‘사과’라는 낱말은 내 기억 속 사과의 맛과 향기, 떫은 과일 살을 내뱉던 어린 날의 웃음까지 담아내지 못한다.

언어는 천 개의 눈을 거세하고,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봉인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지만, 결국 언어의 틀 안에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만든다. 그러나 언어는 때때로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림 역시 원본의 복제일 뿐,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말 너머의 의미, 언어와 그림 이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는 순간, 비로소 낯설고 선명한 ‘진짜’가 떠오른다. 그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삶이 깊어지는 방식이다.


르네 마그리트, <대화의 기술>(1950)


언어는 '믿음'이 아니라 '질문'이어야 한다.

이름은 '정답'이 아니라 '탐색'이어야 한다.

'고정된 세계'가 아니라, '무한한 탐구'여야 한다.

그래야 사물은 다시 살아나고, 삶은 비로소 낯설고 새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