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Ⅰ

눈먼 시선 Ⅰ – 익숙한 이미지의 함정

by 시선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 유하, <오징어>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1964)의 일부


탐스러운 사과. 그런데 위에 떡하니 적어 놓은 제목의 역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1964)의 일부


둥글고 윤기 나는, 먹음직스러운 사과. 하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 이 그림 속 사과는 먹을 수 없다.


마그리트는 묻는다. 당신이 보는 건 진짜인가, 가짜인가?'사과'인가, 사과의 '이미지'인가?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본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보는 건 아닐까? 카이사르의 말처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건 아닐까?


사람도, 물건도, 관계도 너무 익숙해지면, 그 내면도, 본질과 가치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익숙함은 그렇게 우리의 눈을 감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기존에 믿고 있던 모든 진실을 '의심'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그러나 '의심'은 불편하다.

익숙한 일상을 뒤흔들고, 견고했던 믿음의 반석을 깨트린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배우고 익힌 대로 돌아가곤 한다. 다시 ‘교정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쪽을 택한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1929)


그러나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 이전에 나를 곧 잃어가는 일이다.

타인의 언어로, 주입된 관념 속에서 나의 진짜 기억과 감각은 점점 퇴색되어 간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사과나무>


어릴 적, 사과나무에 달린 작은 열매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 차마 나무에서 따진 못하고 땅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서 맛보던 그 순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던 시큼한 그 맛. 떫은 과일 살을 내뱉으며 마주 웃던 친구들.


'익숙함'은 이 모든 생생한 순간을 파묻는다.

한편, '의심'은 야생의 감각을, 잊혀진 의미를 깨운다. 때로 지난 추억을 살리고, 타자와의 관계를 살린다.


'의심'은 '의미'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