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걷는 사람> Ⅰ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by 시선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 발끝에서 피어나는 사유, 다리로 증명하는 삶




오귀스트 로댕, <걷는 사람>(1877-1878)


팔과 머리가 뜯긴 적나라한 나신은 좀체 눈에 들지 않는다.

로댕의 이름 값이 아니라면, 그저 일본 웹툰의 한 잔혹한 장면을 본 마냥 훑고 지나쳤을 것이다.


미완성작은 아닐 텐데... 머리는 어디로 사라졌고, 팔은 왜 뜯낀 것일까? 그럼에도 저 검푸른 살결과 단단한 근육은 그가 디뎌온 걸음의 무게와 깊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그의 다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곳이 어디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확실한 건, 그는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쉬지 않고 걸어온 삶이었던 탓일까? 좀처럼 그의 걸음은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의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고심에 찬 선택이며, 삶의 행보이다.


그는 말이 아닌 발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몇 마디 말보다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더 깊은 언어임을 알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지금껏 말 대신 발로, 머리 대신 다리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걷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짊어진 채,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이다.


디에고 리베라, <바나나잎을 나르는 사람>(1953)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머리로만 하는 사유는 가볍다. 진창을 딛지 않은 생각은 공허하다. 발로 바닥을 딛고, 무게를 견디며, 오늘도 육체를 끌고 한발 한발 걷는다.

그렇게 우리는 말이 아니라 발로 걸으며, 이 세상에 존재를 새긴다. 자신의 몸에 삶을 새긴다.


진짜 사유는, 그렇게 발끝에서 피어난다.




“걷는 사람이 두 다리면 됐지, 머리가 무슨 소용인가?”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