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생들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을 걷고 저 달 볼 테야.”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에서
길 위에서 살아온 장돌뱅이 허생원의 말이다. 도대체 그에게 길이 뭐길래... 그는 그 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허생원, 어쩌면 그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멈추면 쓰러지고 마는 굴렁쇠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는 적막한 밤,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를 들으며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길 위에서 젊은 날 부푼 꿈을 꾸었고, 생계를 위해 고단한 현실을 견뎠으며, 그럼에도 앞날의 기대를 버리진 않았을 것. 그에게 길은 지난 날의 역사이고 현실의 생업이며, 미래를 향한 기대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어디 그가 걷는 길뿐이랴. 당시 나라 잃은 민중도 길 잃고 무명의 땅을 떠돌아야했으며, 지금 우리 또한 저마다의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길이건 평탄치 않기에 종종 균형 잃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걸음 걸음 힘겹게 삶의 무게를 견디며 나아간다.
실상 인생을 버티는 힘은, 바로 가장 낮은 발에 나온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魯迅, Lu Xun, 1881-1936)
인류는 그 옛날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도,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새 길을 내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길을 내며 인생을 구가하고 있다.
로댕의 <걷는 사람>은 바로 그런, 머리가 아닌 발로 길을 만들어 낸 이들, 생각이 아닌 몸으로 역사를 새긴 이들에 대한 헌사다.
한 켤레의 낡은 신발에도 걸어온 시간의 노정이, 그의 땀과 고독이 켜켜이 배어 있다. 그렇게 치열하게, 그럼에도 묵묵히 제 길 걷는 이들의 발 아래, 역사는 조용히 쓰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