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의 시선] 아름다움을 새기다
그녀의 몸은 생존을 향한 열망이었고, 신성한 주술이자, 살아 있는 신념이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부족의 운명이자 미래였고, 그들의 간절한 열망을 한 몸에 품은 그녀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나 여지껏 살아냈고, 지금도 여기 살아가고 있노라고. 더는 젊지 않아도, 내 삶은 더없이 진실하고 아름답다고. 그녀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불안한 여정 위에서도 더는 젊음을 애도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그 자체로 삶의 기록이자 증언이다. 로댕은 그녀가 '살아낸 시간', 그 무게와 흔적을 아름다움으로 새긴 것이다.
중력에 순응하듯 고개 숙인 모습, 앙상한 몸에 드러난 주름진 갈피에서, 지난한 노동의 흔적과 사랑의 상처를 본다.
그녀에게도 싱그러운 소녀의 때가, 그녀에게도 한때 짙푸른 젊은 날이 있었을 텐데...
햇살을 튕기며 까르르 웃고 떠들던 친구들, 사랑의 슬픔에 젖어 눈물 훔치던 밤, 파아란 하늘 보며 미래를 그리던 어느 날. 그런 날들, 분명 그녀에게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촌부의 아내로 땅을 일구고 밥을 지어 자식을 먹이느라, 손은 작고 단단한 주먹이 되었다. 밤낮으로 논과 들로 나가야 했던 그녀에겐 오래 가고 가성비 좋은 빌렌도르프의 헤어 스타일이 제격이었다.
그런 날들이 고스란히 그녀의 굽은 어깨와 주름, 고목손으로 새겨져 있다.
선사의 인간이 돌에 생의 열망을 새겼듯, 로댕은 청동에 시간과 삶의 결을 조각했다. 한 여인은 생명을, 다른 한 여인은 생의 깊이를 품고 있다. 한 여인은 살아야 할 이유를, 다른 한 여인은 살아낸 시간을 새기고 있다. 그리고 두 여인은 각기 생의 '시작'과 '마침'을 향해 걷고 있다. 그럼에도 두 비너스는, 몸 그 자체로 신념이자 선언이다. 그 둘은 모두, 살아낸 삶을 품은 '살의 조각'이다.
"생명을 가진 것에 추한 것은 없다. 인간의 감정을 암시하는 것, 시름이건 고통이건, 온화이건, 분노이건, 증오이건, 연애이건, 그것은 모두 저마다 미(美)의 각인(刻印)을 가지고 있다."
-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
로댕의 <한때 아름다웠던 투구 제작자의 아내>를 메를로-퐁티와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시선으로, 철학과 원시의 눈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들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순 없지만, 두 편의 에세이는 그녀의 몸을 빌려 저의 지난 시간을 어루만지고,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묻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삶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효민의 어머니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의 내 나이, 내 경험치,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가지고 과거로 간다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의 나로선 그게 최선이었고 바꿀 수 없는 결정이야. 왜냐하면 모든 결정의 중심엔 내 딸 효민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으니까. 그 사랑이 변하지 않는 한 과거로 돌아간들 늘 같은 결정을 내릴 거야.”
지난 날의 나와 어머니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합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