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Jan 07. 2024

1. 딩크족 남편에게 아이가 어른거리다.

30대 여자라면 누구나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낳을까 말까의 기로에 놓인다. 때로는 아기 생산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가임기 시계의 압박에 밀려서 결혼에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대학 관문을 뚫고 취업난을 뚫고 간신히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30대 초반이다. 이 때부터 안정적인 임신 시기는 35세. 불과 3-4년 내로 끝장을 봐야 한다. 직장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할 만큼 월급이 나오고, 또 하나씩 성취를 해나가는 기쁨도 있다보니 굳이, 굳이 내 삶에 아이가 필요한가  고민이 깊어진다.



예전에 그렸던 가임기 시계 그림



예전에는 이런 고민을 하는 여자들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요상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아이를 낳으면 이타적인 것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하나? 아니면 사회를 위해? 인류의 영속을 위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윤리적 협박을 해보아도 눈 앞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30대 여성에겐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사회의 압박을 애써 온 몸으로 무시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도 아이 하나는 있어야지.

자궁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단다. 50대가 넘어가면 외로워.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타적일 수 있어.

정말 눈물나게 기쁜 행복이야. 차원이 다른 행복.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차원이 다른 행복'을 위해 마음이 맞지 않는 남자와 억지로 결혼을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비 남편과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 그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내 나이가 만 34세, 대학원이 3-4년 남은 시점이었다.


남편: 혹시..아이 낳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나: 음... 공부할 게 너무 많이 남아서 솔직히 자신이 없네.

남편: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나: 그래..?

남편: 응. 난 아이가 갖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거든. 둘이서 행복하게 이것저것 할 거 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 같아.


이야!

정말 완벽한 남자다!!

산소처럼 신선한 공기가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남편이 2살 연하라 내 나이 때문에 아이를 못 갖게 되는 것을 안타까워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부담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래도 내 인생에 아이 한 명 정도는 가져봐야 하지 않나, 이런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나는 유치원 선생님을 장래희망으로 생각할 만큼 아이를 예뻐한다. 사촌동생이나 조카들과 몇 박 몇 일을 함께 있어도 지치지 않고 놀아주는 편이다. 아이들의 순수함, 어른에 대한 사랑과 갈구, 끝없는 체력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 일반에 대한 애정이 나의 아이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이는 다 예쁘니 입양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구는 점점 살기 안 좋은 곳이 되어가는데 굳이 내가 생명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태어난 아이 중 사랑이 필요한 아이에게 내가 사랑을 주는 것이 더 좋은 결론이 아닐까.



그래서 운명의 35세를 지나는 동안 내 머릿 속엔 온통 공부와 커리어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아이에 대한 생각은 언덕 저 편으로 넘어갔다. 내가 공직을 그만두고 미국에서 직장을 찾길 바라던 남편 덕에(이 문제로 굉장히 긴 갈등이 있었다) '긴 휴가' 정도로 생각했던 박사과정을, 다른 대학원생들처럼 '진지한 공부의 시간'으로 여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영어와 씨름하고 논문과 씨름하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 자신과 씨름을 했다. 지원서를 쓰고 논문을 제출하고 낙방하고, 또 낙방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기쁨으로 매일매일의 좌절을 어거지로 억눌러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국의 직장생활 못지 않게 치열하고 지겹고 스트레스 받는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한지 10개월쯤 되었을 때, 남편이 한두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자기 뒷 모습을 보고 있으면, 꼭 닮은 딸이 보여.



뭐라고? 딸?



처음엔 장난인 줄 알고 웃어 넘겼다.


장난이 반복되니 은근 진심이 담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정말 아이가 갖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남편은 '아니야, 아니야. 그냥 자기를 닮은 딸이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긴 머리를 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여. 그런데 당장 갖고 싶다거나, 아이를 낳기 위해 우리 삶을 희생하고 싶다거나 그런 건 결코 아니야. 그냥 그런 신기한 기분이 든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라고 손사레를 쳤다.



그래? 그 정도 마음이라면 그냥 아이 이야기 안하면 안 될까? 나한테는 스트레스야.



나름 로맨틱한 표현을 한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내 말에 조금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한편 내 입장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결혼 전에 긴 대화를 했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한창 내가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임을 뻔히 알면서도, 내 반응을 시험하려는 것처럼 아이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남편이 얄미웠다. 그렇게 아이 이야기 없이 몇 달이 지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