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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Oct 04. 2023

결혼, 꼭 해야 하나요?


나는 비혼주의는 아니었지만, 결혼 현실주의자(?)였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설득이 되지 않았던 나였기에,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는 더더욱 설득이 되지 않았다. 무턱대고 "결혼은 언제 하니?"라고 질문을 하는 친척들, 상사들. "남자가 없는데 무슨 결혼을 해~"라고 이야기하며 웃다가 어느 샌가 조바심과 불안 상태에 놓여버린 30대의 여자 친구들. 아이를 갖고 싶은지,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이를 가질 시간이 별로 없다면서 앞으로 후회할 거라면서 압박을 주는 사회. 아이를 낳는 것처럼 숭고하고도 중요한 의사결정을 대형마트 타임세일처럼 해야 한단 말인가. 


왜 결혼을 해야 해요?라는 나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요상했다. 


평생에 걸친 단짝친구가 생기잖아! -> 단짝친구가 될지 웬수가 될지 어떻게 안담?

아이는 낳아야지! -> 왜??? 아이를 낳아야 하지? 인류 종족 보존을 위해? 아이가 내 눈에 이쁠테니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고난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혼자 늙을 거야? -> 녜....... 혼자 늙어도 괜찮아요! 양로원에 혼자인 어르신도 많고, 아플 때 부를 수 있는 119도 있고. 

여자는 30대 중반이 넘어가면 가치가 떨어져! 더 이상 아길 못 낳는다고! -> 괜찮아요!!! 내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주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그렇게 누군가 "아기"로 나를 설득시키려 하면, 


관념적이고 먼 존재에 도달하기까지, 눈앞에 허들이 켜켜이 펼쳐졌다. 





일단 소개팅부터.... 생각하면 힘들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소개팅은 1년에 한 번만 하는 주의니까 내년 초에 다시 한 번 물어봐줘~"라는 말장난을 종종했었다. 그만큼 소개팅이 버거웠다. 


상호 간에 목적이 있는 만남. 무릇 모든 관계는 수많은 미묘함을 함께 맞추어야 하는 것인데, 나이 찬 남녀가 상호 조바심과 현실적 감각을 토대로 만들어가는 소개팅의 공기란... 흡사 정상회담 같다. 마음에 들면 밥 먹고, 안 들면 커피만 마시고 헤어집시다. 전 여기까지 양보할 수 있어요. 그 쪽은 얼만큼이시죠?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만큼이에요. 저는 교회다니는 게 너무 중요한데, 혹시 조금이라도 타협하실 의사가 없으실까요? 저는 와이프가 저희 엄마 팔짱끼고 교회 앞마당 거니는 모습을 보는 게 꿈이에요~ 저희 부모님은 10억 정도의 집은 해주실 수 있다는데요. 서울 어느 지역이 좋으세요? 


이래서 인도는 중매결혼을 하는지도. 중매술사에게는 원하는 바를 한껏 이야기해도 괜찮으니까. 


내가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가임기시계가 가기 전에 저 허들을 모두 넘을 수 있을까? 

근데, 내가 과연 아기가 갖고 싶긴 한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빙글빙글 돌다가 만 32세가 되었다. 



그리고 32세에 유학을 간다고 하니 내 주변 어르신의 8~90%는 가임기시계를 가리키며 유학에 반대를 하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유학 = 결혼 포기'의 선택인 것 같아서 무서웠다. 계획대로 3년 만에 박사를 마치고 온다면 나는 35~6세가 될텐데, 그 나이에 결혼하는 언니들도 분명히 많았는데, 10년이 넘도록 "나이 든 여자는 가치가 없어!"라는 말을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말에 동조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먼 곳에 있는 아기는 내가 당장 하고 싶은 공부 앞에서 승산이 없었다. 

결국 난 우리 엄마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우려를 뒤로 하고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두 명의 친구가 해 준 조언이 기억난다.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자인 A. 현재 어느 정부부처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 친구와는 1년에 한 두 번 정도 장문의 카톡을 주고 받는다. 그 친구는 20대 초반부터 (1)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싶다, (2)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비록 (2)는 달성하지 못한 것 같지만, (1)은 달성했다. 착하고 능력 좋고 잘생긴 남편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다. 그 친구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니, "언니가 결혼 못할까봐 고민할 줄은 정말 몰랐네. 언니는 30대 후반, 40대가 되어서도 충분히 연애하고 결혼하고 잘 살 거니까. 유학 때문에 결혼 늦어져서 유학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마. 난 지금 결혼해서 무척 행복하지만, 꼭 결혼과 아기가 모두에게 답은 아니야. 나도 내 선택을 후회할 때가 있는 걸. 언니가 가장 하고 싶은 걸 해야 후회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했다. 


또 한 명은 나보다 먼저 풀브라이트 장학금에 합격해 뉴욕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친구 B였다. "언니. 언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요. 그런데 있죠? 언니가 미국 땅에 도착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 언니가 몇 살인지, 결혼하기에 늦은 나이인지 이른 나이인지 이런 사회적 압력 같은 것은 모두 다 사르르 잊게 될 거에요. 정말이에요.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깜짝 놀랄 걸요." 


'모두 다 사르르 잊게 된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안과 압력이 모두 다 사라지는 것이 가능할까? 내 가임기시계는 미국에서도 흐르고 있을텐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도착하자'마자'는 아니었지만 

한 6개월쯤 지나니 

눈녹듯 사라졌다. 


미국이라고 해서 나의 생물학적 '나이'가 완전히 잊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결혼적령기'라는 관념은 매우 흐리다. 일단 성별이 불분명한 사람이 많다. 트렌스젠더, 게이, non-binary (아직 성별을 결정 못한 사람), 무성애자 등. 여성이 남성이 되기 위해 임신 기능을 통째로 포기하기도 하고, 부인과 자녀 3명을 낳고서도 성별을 바꾸기 위해 이혼을 하기도 한다. 성별이 분명한 사람끼리도 이혼은 워낙 흔하다. 


요즘 방영 중인 넷플릭스 <돌싱글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국은 양육권 문제가 아주 복잡한데도 기꺼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 후 삶을 이어간다. 이혼을 두 번, 세 번 한 친구들도 보았지만, '슬픈 과거'로 이야기할 뿐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과거처럼 잘 알려진 것처럼 입양도 흔하다. 내 치과의사 선생님은 입양을 하고 싶었는데 재산이 넉넉한데도 부부의 나이가 많아서 입양 거절이 되었다고 한다. 원정 입양을 준비 중이라고. 또한 미국에선 대리모가 합법이므로 돈이 많다면 산모의 나이가 많아도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상대가 결혼을 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은 실례가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이 먼저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말하기 전까지 잘 묻지 않는다. 


한국에서 "Do you have a boyfriend?"를 낯선 사람에게 물으면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줄 아니까 물어서는 안된다고 배웠었다. 사실은 워낙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결혼 안하고 동거 중, 여러 명과 데이트하는 중, 결혼했는데 별거 중, 결혼을 전제로 데이트하는 중) 함부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는 매너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여자아이에게 Do you have a boyfriend?라고 물으면 그 아이가 이성애자라고 미리 전제하는 것이 된다. 그 여자아이가 누군가와 exclusive한 사이인지 궁금하다면 Are you seeing someone? 같은 식으로 성별을 특정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과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Tina: Do you want to join dinner tonight at my place with other folks in the lab?

Me: Sure, sounds good. 

Tina: We're doing a bbq, and my fiance is going to help me out to prepare for food. 

Me: (Oh, she has a fiance..!) Sounds lovely. Let me know if there is anything I can do to help. Congratulations, btw! I didn't know you're engaged! 

Tina: Oh, it was a while ago, John and I have been together blahblahblah... 

Me: (Oh, her fiance is a male) 


이렇게 '발견'해간다. 이 사람은 1명의 사람과 결혼을 계획하고 있구나. 존이라는 걸 보니 남자인가보다. 그래도 여자같은 이름을 쓰는 남자도 있으니 함부로 he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연애, 결혼, 자녀계획 등을 지극히 사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기에 "Oh my god, you are already 35? Why haven't you got married yet? Weren't you worried about your fertility? You're missing out on the great privilege to have a wonderful family!" 같은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는 아니고 한인 사회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사회적 압력도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미국 사람들이 내 결혼이나 임신에 대해 묻지 않는 이유는 "그건 네 문제"라는 확실한 선긋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결혼이라는 중대한 숙제를 피하는 어린 아이같은 취급을 받는 것보단,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주는 사회가 훨씬 편안했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26세에 결혼을 해서 31세가 된 지금까지 남편과 살고 있다. 미국-유럽의 대륙 간 원거리 연애를 했고, 결혼 후에도 꽤 오랜 기간 떨어져 살았다. 그 친구에게 왜 결혼했는지 물으니 "우리 둘 다 인생이 너무 정해진 게 없으니, 관계라도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결혼을 했다."고 답했다. 그렇게 결혼을 해두니까 결국은 수 년에 걸쳐서 각자 제 자리에서 커리어를 추구하다가 궁극적으로 같이 살게 되었다. 둘은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며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결혼에 대해 후회 없어? 결혼하니까 좋은 것 같아? 

친구: 결혼? '내 결혼'은 좋아. 난 운이 좋지. 그치만 결혼이 일반적으로 좋은 건지 아닌지 그런 답이 어디있겠어? 

나: 난 자꾸 나이가 들어서 빨리 결혼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어. 너처럼 좋은 커플을 보면 '아 결혼도 할 만 한 건가' 싶기도 하고. 

친구: 친구의 결혼이 좋다고 해서 네 결혼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커플이 있는데, 둘 다 커리어도 성공적이고 둘 다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그런데 이번에 남자가 바람핀 것이 알려지면서 이혼을 하게 되었어. 우린 둘 다와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에게 한 행동이 너무 했어서 아마도 여자랑만 친구로 지낼 것 같아. 근데 그 커플이 불행해졌다고 해서, 내 결혼이 불행해지는 건 아니잖아? 

나: 그건 당연히 그렇지! 

친구: 난 이혼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어. 이 사람이랑은 몇 년만 같이 지내도 좋겠다, 이런 가벼운 마음. 결혼을 하면 나는 이 사람에게 유럽 비자를 줄 수 있고, 난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으니 편의상 결혼을 했던 것도 있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지! 원래는 결혼 후에 open relationship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애도 해볼 생각이었어. 그런데 살다보니 서로에게 commitment가 강해져서 그렇게는 잘 안되더라구. 질투심도 복잡하고. 재밌지? 이젠 너무 남편을 사랑해서 남편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 

나: 시간이 지나면서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 

친구: 응. 내 경우는 그런 것 같아.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나니 '결혼도 할 만한 건가'하며 통계치를 찾고 있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100명 중의 90명이 행복하게 살아도 내가 불행할 수도 있는 건데, 도대체 무슨 숫자에 기대고 싶었던 걸까? 


그런 환경에서 6개월 정도 흐르고 나서 '진공상태'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24시간 째깍째깍 돌아가던 가임기 시계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결혼을 해야 하나'라는 큰 고민에서 '어떤 연애를 해볼까,' '누구랑 있을 때 내 기분이 좋은가'라는 '작은 질문'으로 고민의 단위가 내려갔다. 좋은 사람을 만나니 굳이 떨어지고 싶지 않았고, 공공행정이나 사회서비스가 미비한 미국에선 '팀웍으로' 처리하면 인생이 편해졌다. 



사회적 압력이 없어지고 나니 

오히려

순수하게 나의 의지로 결혼을 선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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