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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an 12. 2024

7. 시험관은 하지 말자 우리.

크리스틴의 모성

나와 친한 친구인 크리스틴(가명)은 92년생이다. 남편이 9살 연상이고 둘 다 처음부터 아이를 원했기에 5년 전 결혼을 했을 때부터 자연임신을 시도했다고 한다. 처음 둘은 원거리 부부였다. 비행기를 타고 3시간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었고, 향후 미국에 살지 유럽에 살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자는 유럽에, 남자는 미국에 살고 싶어했다.


그럼에도 '일단 아이는 갖고보자'는 그들의 마인드가 신기하고 부러웠다. 크리스틴의 뜻이 그러하니 남편도 당연히 동조했다. 아이를 갖고나면 남편이 직장을 옮기는 어떡하든 방책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처럼 박사과정에 있던 그 친구는 대체로 나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었다. 처음부터 학과에 RA로 취직되어 있어서 펀딩이 안정적이었고 페이퍼를 제출하거나 가시적 성과를 내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보였다.


: 아이가 생기면 박사과정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크리스틴: 글쎄, 휴학해야겠지? 졸업은 할 수 있겠지? 언젠가?

나: 그렇게 일정이 틀어져도 괜찮아?

크리스틴: 어차피 모든 시기가 여자에게는 아기 낳기 가장 안좋은 시기야. 직장에 새로 들어가도 그렇고 승진 앞두고서도 그렇고. 커리어의 희생은 무조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좀 더 빨리 감수하는 쪽을 택하려고.

: 그렇구나 정말 대단하다. 아이를 원하는지 어떻게 알았어?

크리스틴: 난 엄마가 빨리 돌아가셨잖아. 그리고 난 아빠와 사이가 가깝지 않아.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해주었듯 내가 사랑을 줄 아이를 만나고 싶었어. 아이를 원한다는 걸 결혼하기 전부터 난 알고 있었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 와, 그렇구나.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아는 거구나. 정말 아름다운 마음이다.

크리스틴: 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너가 나랑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 아니야, 알지??



그녀에게 아기가 오길 간절히 바랐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주변 친구들을 잘 챙기는 예쁜 부부는 시간이 갈 수록 더 단단해졌다. 코비드 덕분에 마법처럼 원격근무가 가능해지면서 남편은 시애틀로 완전히 이사를 오게 되었다. 둘은 3층짜리 신축 주택을 샀다. 원래도 미적 감각이 뛰어났던 크리스틴은 중고 가구와 저렴하게 구입한 식물들로 감각적인 집을 만들었다. 크리스틴의 남편이 영주권을 받으면서 신분도 안정적이게 되었다. 유럽을 그리워하던 크리스틴도 어느새 미국에 꽤 정착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지만 아이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미국 난임 부부의 삶을 목격하게 되었다. 인공수정이 몇 번 실패하였다. 크리스틴의 보험은 두 사람의 임신불가능성을 입증해야 시험관 아기를 커버해줄 수 있다고 했고, 크리스틴은 다량의 난자를 생성하기 위해 호르몬 약을 먹으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한국도 2017년 전까지는 시험관 아기가 국민건강보험에서 커버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차이는, 미국 병원은 의사를 한 번 만나는 데에만 500불이 예사로 들기 때문에 보험 없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1회 시술에 수 천만원이 될지도 모른다. 보험 커버를 위해 몇 달 간 병원 시술을 받는 그녀를 보며, "자연임신이 되는데 굳이 시험관아기를 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런 생체실험까지 해야 하는거야??? 정말 미국 보험은 너무하다!!!!"라고 하니, 크리스틴은 "It is what it is."라고 하며 힘 없이 웃어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사람은 거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 절차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었다. 크리스틴은 시간을 재며 배에 주사를 놓는 삶을 시작했다. 가끔 만날 때면 두 사람의 활기가 조금씩 줄어갔다. 어느 샌가부터 우리는 시술이나 경과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같은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일 것 같았다.



크리스틴을 보며 마음 아파한 남편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내게 선언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절대 하지 말자. 이 마음 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시험관이 힘든 과정이긴 하지만 내 친구들은 꽤 많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나에게 당장 하라고 한다면 엄두가 안 나겠지만, 남편의 강한 바람을 고려할 때 난자를 냉동해두고 언젠가 인공수정 또는 시험관 아기로 임신을 시도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 '옵션'이 있었기에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남편의 바람을 저버리는 것을 내심 정당화하고 있었다.


한편 크리스틴이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고 싶었던 남편은 유튜브 동영상을 여러 개 찾아보았단다. 거기에선 많은 여자분들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남자는 오로지 정신적 지지밖에 해줄 수가 없고, 여자가 오롯이 온 몸으로 견뎌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남편 생각엔 어차피 내가 갑작스럽게 아이를 간절하게 원하게 될 가능성이 없을텐데, 남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뒤늦게 임신을 시도하고 시험관 아기를 하게 되면 본인이 너무 미안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40대에 임신을 시도하면서 병원에 가고, 임신이 어렵단 사실을 깨닫고, 인공수정에 실패하면 왠지 더 절박해져서 시험관 아기를 여러 번 시도하게 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아기를 왜, 얼마나 원했는지도 잊게 되고,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는 마음을 가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정작 그 때가 되면 또 마음이 어떻게 바뀔지모르니(우리가 40대가 되면 주변에 시술을 받는 사람이 더 늘어날테니) 이렇게 결단을 내려 놓아야 할 것 같다는 취지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연애할 때 가질 수 없는 상대에게 괜시리 더 마음이 갈 때가 있듯이, 아기도 '마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대상'에서 '노력해도 가지기 어려운 대상'이 되면 더 갖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DNA의 부름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듯이 내게도 언젠가 그런 부름이 찾아오는 날이 올까. 그 때 내 몸 상태가 아이를 갖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괜스레 더 아쉽고 절박한 마음이 들게 될까.




남편은 특유의 긍정성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육아는 대부분 본인이 전담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어차피 본인은 재택근무고 아이를 좋아하니, 자기 회사 사람들처럼 아이를 안고 미팅에 들어가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 및 난임 관련 영상을 한참 보면서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가 여성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을 지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난임시술을 제외하면 우리가 40대 이후에 아기를 갖게 될 가능성은 줄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내 건강과 우리의 현재의 삶을 우선시하겠다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남편은 1년 동안 아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난 만 37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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