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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n 19. 2021

집중하지 못함

2021/6/18

세상에 나만큼이나 집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며칠은 '집중하지 못함'에 대해 많고 많은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히 있음에도 왜 노트북 모니터만 보면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걸까? 그래서 하루하루의 집중하지 못함에 대해 일기라도 써보기로 다짐하였다. 곧, 나는 매일 이 일기를 써나가게 될 것이다. 


'집중'의 반대말은 산만함일까..? '산만함'은 그래도 여러 가지 (원치 않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정말정말 너무나 무슨 일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시간을 들이지만, 원하는 산출물을 내놓지 못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포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은 '집중하지 못함'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 오늘 집중하지 못함 지수: 8/10 

- 객관적인 방해물 지수: 6/10 


목디스크 때문에 여러 차례 병원을 왔다갔다 해야했다. 그래서 객관적인 방해물이 있기는 하였지만, 지금도 편안하고 즐거운 카페에서 '집중할 수도 있었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40% 정도는 충분히 집중의 여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여튼. 왜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 


1. Obliger (달리 말하면, 노예 근성). 

나는 내 자신의 깊은 곳에 노예근성이 있다는 것에 확신한다. 그리고 이 노예근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매주 십수 개의 보고서를 썼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보고서를 쓰는 것이 과제로 주어진다면 일주일간 단 한 건도 쓰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면 난 저 뒤로 일을 미뤄두곤 하기 때문이다. 


Gretchen Rubin이라는 사람의 네 가지 습관 유형 분석 책을 본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동기부여에 어려움을 겪던 내게 남자친구가 도움을 받았다며 제안한 책이었는데 https://quiz.gretchenrubin.com/ 여기에 가면 각자 퀴즈를 해볼 수가 있다. 마지막에 이메일 주소를 넣어야 결과지를 볼 수 있는데, 가짜 이메일을 넣어도 무방한 듯하다. (난 진짜 이메일을 넣었더니 계속 습관형성 프로그램을 100불로 할인해준다는 광고메일이 도착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모든 종류의 동기부여에 반발하려는 속성을 가진 Rebel이 나왔고, 난 오로지 inner expectation, 즉 내가 나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에만 동기를 갖는다는 Questioner가 나왔다. 


4가지 유형 출처: https://gretchenrubin.com/

굉장히 그럴 듯 해보였다. 당시 나는 '내가 필요하다고 납득'하는 일에는 빠르게 반응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스스로에게 필요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었다. 그러면 과제를 쉽게 해결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1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 미국에서 2년 정도 공부를 해보고 난 후 다시 테스트를 해보니 Obliger가 되어 있었다. Obliger는 Questioner의 정 반대로, inner expectation에 의해서는 움직이지 않고 external expectation에 의해서만 동기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스터디그룹을 하면서 스터디원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는 경우가 그들에겐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난 100% obliger였던 것 같다. '약속을 지키고'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내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면, 한 번 약속시간을 정하면 상대방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시간을 잘 바꾸지 않는다. 무조건 '선약' 중심으로 움직여야, 내가 마음 속에 불편함을 덜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나 자신에게 부과하는 기대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excuse를 찾아내곤 만다. 오늘은 '쉼'이 필요했으니까, 오늘은 xx 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 내 마음 속의 clients 중에서 나 자신은 가장 맨 마지막에 있다.


2. 코로나로 인한 장소의 제약. 

그나마, 내가 활용했던 많은 방식 중에 가장 work out을 잘했던 것이 남들이 보는 장소에 나를 두는 것이었다. 운동도 헬스장에 가서 하면 잘되고, 도서관에서도 open desk에 앉는다. 밀폐된 좌석을 제공하는 독서실 같은 곳은, 오히려 감독관이 나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다시 내면의 집중 방해꾼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그래서 촥 트인 로스쿨 도서관이 참 좋았었다. 또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도 좋은 자극원이 된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resource 들이 줄어들고 말았다.


3. '궁극적인 목표'의 부재.  

예전에 행정고시를 할 때는 '시험합격'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어찌보면 공부가 쉬웠다. 문제를 풀고 책을 읽고 같이 공부하는 고시반 친구들이 있었다. 쉬웠다기 보단, 공부의 방법에 불확실성이 적었다. 그래서 2년 동안 조용히 스님처럼 공부만 하는 삶을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만 명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나만의 우선순위를 위해 혼자서 공부를 한다. 경쟁자도, 공부의 방식도, 목표도 불확실하다. 나는 이 공부를 마친 후 학계에 가고 싶은 것일까? 학계에 가고 싶다면 갈 수는 있을까? 갈 수 없기 때문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현재의 명확한 목표는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 뿐, 그리고 기왕이면 fruitful한? 경험들을 많이 얻어가고 싶다는 것 뿐. 5년 후의 내 미래에 대해 이렇다 할 생각을 갖고 있지가 못하다. 그래서 가장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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