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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Jun 19. 2021

이십대가 미웠다

오늘의 좋은 구절 2021/6/18

졸업 무렵의 학교는 뭔가를 얻은 곳이 아니라 잃은 곳이었다. 연애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준비도 부족한데 학교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은 가까워졌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소설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채 사회로 던져졌다. 어쩌면 패배감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소설이란 충분한 경험이 필요한 것이고 그때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모든 게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모교가 아니라 나의 이십대가 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 사랑 밖의 모든 말들, 105면.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나의 이십대가, 특히 이십대 초반이 너무 미웠다. '사회에서 내 몫 하나 해낼 수 있을까'라는 본연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미대생으로서 내가 나를 벌어먹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십대가 되면 나 혼자 설 수 있으리라 자신했건만, 자칫 부모님에게 혹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배우자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삼십대를 갈망했다. 지금보다는 더 확실해져 있을, 최소한 하루 끼니는 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자립해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십대 중반쯤 그렇게도 원했던 '확실성'을 얻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정년을 보장받은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공무원 생활을 했다. 뛰어난 공무원이 되고 싶다기보단, 주변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수 년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십대의 불확실성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배우고 싶었다.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길이 미워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현듯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물론, '불현듯'은 아니고 착실하고 고통스러운 준비를 한 후였다.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간다니 정말 대단해. 넌 배움에 대한 욕구가 남달라. 


그리고 내 바람대로 미래는 다시 불확실해졌다. 유학을 와서보니 '인생을 설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직장을 평생 직장으로 여기지 않는다. 옥스포드 대학교 법학과를 나와서 영국 변호사가 된 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수십년을 일하다 나시 미국 로스쿨에 들어와서 변호사시험을 보는 50세 친구를 보았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삶은 너무 작아보였다. 


유학을 올 때 그렇게도 '내 이름으로 된 글을 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석사논문을 도저히 써내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면 기회만 되면 내 이름으로 된 글을 실컷 쓰겠노라 어떻게 자신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코로나 때문에 공부할 곳이 없어 집중을 못한다고 외부요인을 탓하듯이, 그 때도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고 외부요인을 탓하였나보다. 정작 멍석을 깔고 연구를 직업으로 삼게 되고 나니 글을 쓰는 것이 그렇게도 싫어졌다. 그러면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알았으니 글쓰는 것이 본업이 아닌 일을 하면 되지 않은가.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마음 안에서 맴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불확실성과 외부의 불확실성을 미워한다. 이십대의 두근거림을 얻은 대신 이 끝없는 자학의 고리를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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