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뷰의 정원 Aug 17. 2021

외숙모 장미숙 (1)

장미숙 씨는 이마가 비뚤어져 있었다. 앞머리도 반듯하지 않고 양 눈썹도 가지런하지가 않아서 이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 수록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보든 한쪽 눈을 치켜뜨고 있는 듯, 불만스러워 보였다. 입이 조금 튀어나오고 한쪽 볼에 어둑어둑한 점이 있어서 가만히 있어도 뾰루퉁한 인상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때 미숙 씨는 아이가 한 명 있는 30대 아줌마였다. <응답하라 1988>의 어머니들처럼 빠글빠글한 파마 머리에 페이즐리 무늬의 월남치마를 즐겨 입었고, 평생 서울에서만 산 사람이었는데도 어딘지 사투리 같은 억센 말씨가 있었다. 


미숙 씨는 어린 시절 서울의 강서구 끝에 위치한 동네의 한 기와집에서 자랐다. 행정구역 상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매 언덕마다 밭이 수놓인 시골 마을이었다. 미숙 씨의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미숙 씨의 할아버지는 꽤 더운 날에도 겹겹의 두루마기를 입고, 인동 장씨 직계 26대손인 것을 자랑으로 삼는 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외출했다 돌아올 때면 주머니 가득 간식거리를 들고 오곤 했기 때문에, 집안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보이면 서로 밀치며 뛰어가기 바빴다. 미숙 씨는 아홉 살부터 집안일을 했고, 동생들을 업었다. 미숙 씨의 어머니나 사촌 언니나 하나 같이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했기 때문에 미숙 씨도 불평이 없었다. 


미숙 씨는 책가방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을 즐거워했지만 학교 공부에는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했다. 미숙 씨의 집안 사람들도 미숙 씨가 공부를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미숙 씨가 설거지를 완벽하게 해놓지 않거나 동생들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으면 "이 가스나가!!!!" 하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미숙 씨는 하루치의 일을 해놓고 언니들과 방 안에서 수다를 떠는 일이 가장 재밌었다. 다들 테리우스 같은 남자랑 결혼을 하겠으며, 아이는 아들딸 두어 명쯤 놓겠노라, 그리고 나이 들어서도 한 동네에 같이 살자고 약속을 했다. 


미숙 씨가 사춘기에 접어들 때쯤 언니들이 우르르 시집을 갔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미정 언니가 거제로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미숙 씨는 몇 일을 방 안에서 울었다. 형부는 배 만드는 공장의 기계공으로 건실한 사람이라고 했으나, 검고 투박한 얼굴에 머리도 벌써 희끗희끗 숱이 없었다. 미정 언니는 외모는 남자 답게 보아주겠으나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이 싫다고 했다. 미숙 씨는 테리우스 털끝에도 못미치는 남자 때문에 여덟 시간이 걸리는 거제도로 언니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보자고, 제사 때는 꼭 올라와야 한다고 굳게 약속을 했다. 


미숙 씨는 스물 한 살에 집안 어르신의 소개로 동준 씨를 만났다. 집안 어르신들은 말했다. 동준 씨는 집안도 좋고 대학도 나온 훌륭한 사람인데, 어머니가 최근에 쓰러지셔서 하루 빨리 장가를 들고 싶어한다고. 여자 쪽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에만 동의하면 아무런 혼수 필요 없이 몸만 오면 된다고 했다. 바로 위의 미정 언니가 스무 살에 시집을 갔었던 터라 미숙 씨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 것이 부담스럽던 차였다. 미숙 씨가 업어서 키운 사촌동생들은 벌써 교복 입을 나이가 되었고, 미숙 씨가 점순이라서 시집 가기는 글렀다며 놀리기 일쑤였다.


미숙 씨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지하철을 타고 충정로역에 내렸다.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 물방울 무늬 블라우스에 남색 플리츠 치마를 입고 한 쪽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사뭇 유럽 풍의 느낌이 나는 오래된 1층 건물에 '폴링인더레인'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동준 씨는 약속한 대로 노란 색 시집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1:9 가르마의 긴 머리를 하고 골덴 자켓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성동준입니다." 

미숙 씨가 테이블 가까이에 가자 동준 씨가 일어서서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미숙 씨는 동준 씨의 긴 머리가, 노란 빛의 골덴 자켓이, 물씬 풍기는 서울 대학생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동준 씨는 작고 옆으로 긴 눈을 가지고 있고, 잘 웃지 않는 편이었다. 눈이 나쁜 사람처럼 얼굴을 종종 찌푸쳤고, 어쩌다 미소를 지을 때면 입가에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더 깊어졌다. 


"무역보험공사라는 곳에 다니고 있습니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안정적으로 나오는 곳이에요. 공무원이랑 비슷합니다." 

미숙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준 씨는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사정을 내비쳤다.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가버렸고 여동생도 곧 결혼을 할 예정이라,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자기 뿐이라고 했다. 미숙 씨에게는 어차피 매일 대가족의 식사를 챙기고 청소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남편 둘을 단촐하게 모시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어르신이 아프시면 모셔야죠. 평생 배운 게 집안일이라, 그렇게 무섭진 않아요." 

그렇게 큰 틀에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동준 씨와 미숙 씨는 편지를 주고 받고, 한 달에 한 두 번씩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동준 씨가 차가 없었기 때문에, 미숙 씨가 명동 거리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면 청계천을 걷다가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미숙 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복궁에 가 보았고, 박물관 구경을 했다. 동준 씨는 한국 역사나 외국 역사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동준 씨의 회사도 깜짝 놀랄 만큼 큰 건물 안에 있었다. 미숙 씨는 동준 씨를 만난 이래로 빠른 시일 내에 결혼을 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동준 씨가 미숙 씨네 집에 인사를 왔다. 대학 나온 남자가 수박 한 통과 참외 한 박스를 거뜬히 들고 온 것을 보고 집안 어르신들은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할아버지에게 미숙 씨는 "동준 씨가 원래는 서울대에 갈 수 있었는데, 시험 운이 없어서 3군 대학에 갔다."는 안타까운 사정을 소상히 설명 했다. 여전히 겹겹이 한복을 입고 지내시던 할아버지는 "미숙이의 어디가 좋은가?"라고 물으셨다. 동준 씨는 "참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라고 답했다. 미숙 씨의 어머니는 동준 씨의 강단 있는 눈매를 마음에 들어 했다. 


미숙 씨도 동준 씨네 집에 인사를 갔다. 파마를 다시 했고, 남색 면 블라우스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베이지색 치마를 입었다. 두껍게 피부 화장을 하니 점이 조금 희미해졌다. 처음으로 가본 동준 씨의 집은 다세대 주택의 방 두 개짜리 집이었다. 여동생과 어머니가 한 방을 쓰고, 동준 씨가 한 방을 쓰고 있었다. 이화여대에 다닌다는 여동생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문을 열어 주었다. 웃으면 눈이 반달 모양이 되는 오목조목한 인상이었다. 어머니는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이부 자리 위에 앉아 계셨다. 마르고 아파 보였지만, 동준 씨만큼 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주고 받고 여동생이 주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나와 보니 블라우스의 겨드랑이가 다 젖어 있었다.


누가 보아도 가난한 집이었다. 어쩌면 미숙 씨네가 더 상황이 좋은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준 씨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지 않은가. 한 달에 20만원만 꼬박꼬박 가져오더라도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여동생이 시집을 가고 나면, 신혼을 꾸리기에도 그렇게 나쁜 집이 아니다. 


다음 주에 만나자는 편지가 왔다. 동준 씨가 미숙 씨 집 근처에 오겠노라고 했다. 미숙 씨는 로맨틱한 프로포즈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동준 씨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 같은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식장을 잡고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미숙 씨는 기분 좋게 단장을 했다. 


동준 씨는 예의 그 노란 골덴 자켓을 입고 있었다. 동네를 거니는데 동준 씨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셔. 아프신 양반이 전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 결혼은 어려울 수도 있겠어." 

미숙 씨는 놀라고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동준 씨는 노인들이 고집을 부리는 데 이유가 있냐며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미숙 씨는 혼수를 못챙겨가서 그런 것이냐, 그건 그 쪽이 필요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혼수가 필요하면 집에 이야기를 해보겠다, 내가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그런 것이냐, 요즘 여자 중에 대학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나는 현모양처가 되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가 보낸 1년은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 울면서 따져묻기 시작했다. 

동준 씨가 말했다. 

"이마가 좁은 여자는 복이 없대. 미숙이랑 결혼하면 내가 운이 없어질 거라고 믿으셔. 그런 미신은 갖다 버리라고 말해봤지만 소용이 없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 결혼은 안된대." 


작가의 이전글 이십대가 미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