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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May 28. 2023

#2. 애비 없는 자식도 괜찮으시대?

 

스물 여섯살쯤이었을까. 

저녁을 먹다가 큰 어머니께서 갑자기 말문을 여셨다. 


"xx야, 너는 좋은 집에 시집 가긴 어려울 수도 있어. 

아버지가 안계시잖니. 남자 쪽 집에서 싫어한단다." 


엄마가 함께 있는 자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큰 아버지는 계셨다.


나는 "아 네…"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남자들과 연애도 곧잘 했다. 큰 엄마의 아들들이 부모의 그늘 아래서 독립을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나는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자식이었다. 그런데도 9살에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사실이 내 결혼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구나. 우리 엄마는 홀로 세 자식을 건사하며, 그리고 나도 내 자리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큰 어머니의 기준에는 미흡한가보다. 


무슨 뜻에서 하신 말씀일지 궁금했다. 내가 좋은 집안에 시집 가기를 꿈꾸다가 출신 성분의 하자로 인해 꿈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예방주사를 놓고자 하신 말씀일까.

아니면 그냥 나를 괴롭게 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까. 

 


"쓸데 없이 질투를 하는거야."라고 엄마는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말을 쉬이 넘길 수가 없었다. 

아빠 없이 자란 자식을 불편해하는 마음이 혹시 일반적인 것은 아닐까? 다들 예의상 내게 말을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고보니 편부모 가정, 결손가정이라는 말도 있잖아? 결손가정의 자식보단 완전체가정의 흠결 없는 사위/며느리를 선호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만약, 예비 시부모님이 나를 한부모가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우리 엄마는? 아직 물망에 있지도 않던 결혼에 대한 공포감을 갖게 되었다.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던 나였다. "집안에서 10억 받잖아? 그러면 10년 간 시댁 이불빨래 해야돼!!"라는 김미경 대표님과 비슷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돈 벌고, 남편도 돈 벌고.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 같은 사람과 결혼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그랬기에 나는 "저는 좋은 집안 사람과 결혼할 맘 없는데요?"라고 할 수도 있었고, "그걸 어떻게 큰 어머님이 아세요? 너무 무례하신 것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테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강한 린치를, 가슴 한 가운데에 맞은 나는 그 자리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내 안에 계속 남아 있었다. 



AI Art (저자 prompt + Adobe Firefly)




그 후로 거진 10년이 흘러 미국에서 만난 남편이 데이트한지 얼마되지 않아 결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오랜 기간 싱글 생활의 외로움에 지친 남편은 렌트기간이 끝나면 나와 살림을 합치고 싶어했다.


우리 집은 특별히 엄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결혼 전 동거를 환영할 것 같지 않았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엄마에게 걱정을 끼쳐온 것도 미안했기에, 혼전 동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각자 렌트를 유지하되 일주일에 2-3일 정도 같이 있으면 되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남편은 어차피 둘 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양가에 결혼 허락을 받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어느 날 꽃과 반지를 사와서 조그맣게 프로포즈를 했다. 진도가 빠르게 나가고 있었다. 


기뻐하기는 커녕 차분한 표정을 하고 남편에게 질문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 쪽 집에서 아버지 없이 자란 것을 싫어할 수도 있대. 부모님께 한 번 여쭤보고 이야기해줘." 

신랑은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럴 일은 절대 없어!!!"라며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내 안에는 큰 엄마의 말씀이 여전히 메아리 치고 있었다. 

나는 보통 아들 가진 부모들의 시각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꼭 확인을 받아달라고 했다. 

남편은 "설마!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런 시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난 절대로 물러서지 않아. 그건 말이 안되는거야."라고 했고, 나는 "말이 되든 안되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잖아. 그리고 그건 합리적인 이유를 든다해도 잘 설득되지 않아. 난 우리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시부모님을 가질 생각이 없어."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섭섭했겠다 싶지만, 남편은 부모님에게 확인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시부모님은 "세상에, 그런 게 어떻게 흠이 될 수 있겠니. 우리는 xx이를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길러주신 어머님께 너무 고맙구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한다. 내가 그런 걸 확인하고 싶어하는 걸 들으시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오죽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그런 걱정을 하겠나, 안타까워하셨다는 말씀도 들었다. 


우리 시동생이 "형수님 아버지는 뭐하신대?"라고 물어 남편이 "어릴 때 돌아가셨대."라고 하니, 시동생이 답했다고 한다.


"합격"


그 합격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쏭달쏭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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