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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May 28. 2023

#3. 사기결혼 아니냐는 시아버님

  

시부모님과 첫 영상통화를 하던 날이 기억난다. 

아마도 2021년 1월. 워싱턴 주의 벨뷰에 깜짝 놀랄 만큼 눈이 많이 오던 겨울날이었다. 


메이든바워 파크 앞에서 



오랜만에 눈을 봐서 신난 남편은 사진촬영을 하러 나가자고 했다. 

사진촬영이라고 해봐야 아이폰으로 서로 찍어주는 사진. 

그러다가 엉겁결에 아버님, 어머님과 처음으로 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눈을 많이 맞아서 볼품이 없었는데, 

아버님 얼굴에는 함지박 미소가 걸리셨다. 

남편은 아버님의 그런 얼굴을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했다. 


아주 간단하게 안부만 주고 받은 통화였지만, 어머님은 나를 보시더니 눈물을 글썽이셨다. 


10년 간 미국에 혼자 둔 아들에 대한 애잔함, 애틋함이 밀려오신 것이겠지. 

부산에서 자라 눈만 보면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우셨을지. 

스키바지를 입고 뛰어 나온 남편을 열심히 찍어주는 아내가 생긴다니, 얼마나 행복하셨을지. 



누군가 열심히 만든 눈사람! 마음 좋아 보인다. 



손발은 시리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남편의 반응은 다소 예상 밖이었다.

첫 대면이 무사히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면서도 "우리 아빤 이런 걸 누릴 자격이 없어!"라고 말을 했다. 남편은 아버님이 처음으로 보여주셨다던 그 아빠미소에 속이 상한 것 같았다. 



우리 남편은 컴퓨터 그래픽을 하는 아티스트이다.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창의적인 일이 아니면 쉽게 싫증을 느낀다. 그런 남편에게 아버님은 언제나 "공무원이 되라. 공무원이 최고다."라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고. 남편의 사촌 동생들은 실제로 교육직 공무원, 경찰직 공무원 등등이 되어 부모를 기쁘게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 남편은 공무원이 되는 것만큼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고. 

남편은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러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아버님은 완강하셨고, 결국 6개월 간 집을 나와 서울 홍대 부근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며 초등학생 미술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며, 결국 아버님은 미국 유학을 지원해주셨고, 남편은 여러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일을 하며 멋지게 살고 있다. 


둘 사이는 제대로 봉합된 적이 없는 듯하다. 

아버님은 여전히 "그래서 연봉이 얼마라고?"라는 질문만 하고 있고. 

남편은 아무리 승진을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여전히 불만족해 보이는 아버님, "네가 맞았다"라고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아버님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지니고 있다. 아버님은 본인의 아들이 꿈에 그리던 직장에 갔을 때보다, 조카가 경찰 내에서 승진을 할 때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리고 하필 나는 공무원이었다. 그것도 5급 공채.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남편은 행정고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듯 했다. 

난 그것도 좋았다. 고시 합격자라고 하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기도,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냥 아무 시선을 받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시동생이 아버님께 "형수가 행시 합격자래."라고 했을 때, 아버님의 첫 반응은 "사기결혼 아닌지 잘 알아봐라."라는 명령이었다고 한다. 시동생은 구글에서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신문기사를 보내 주면서 "아저씨. 사기결혼 아니니 걱정마쇼."라고 답을 했다고. 그래도 안심하지 못하셨던 아버님은 본인의 친구인 고위 공직자에게 내 신원 정보를 조회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을 하셨다고 한다. 






사기결혼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 아버님의 기쁨이 어느 정도였을지. 

이게 꿈이야 생시야. 공무원 며느리를 들이다니!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다고 의사 며느리를 꼭 환영하란 법은 없을텐데. 

우리 아버님은 정말로 가족 구성원 중에 공무원 1명쯤 있기를 바라셨던 것인지, 내가 공무원이란 사실을 너무너무 기뻐하셨다. 


남편은 그래서 "그 아저씨는 공무원 며느리를 누릴 자격이 없어!"라고 말했던 것이다. 

공무원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남편의 꿈과 무관하게 그 직업을 강요했던 아버님. 

아버님의 인정을 바라면서도 자신의 꿈을 끝까지 추구했던 남편. 

그 둘의 해묵은 긴장관계가 내 직업에서 터져나오게 되었다. 


여하튼 아버님의 입은 귀에 걸렸고, 

남편은 툴툴 거렸다. 



왠지 고양이와 쥐 같은 둘의 관계 (...) Adobe Fire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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