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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May 28. 2023

#4. 다행히 결혼은 했습니다

그렇게 극 코로나 기간 중에 맞이하게 된 결혼식. 


정부가 정해준다던 하객 수는 50명에서 500명까지 널뛰기를 했다. 하객을 모두 카카오인증?을 해야 한다고 했고. 결혼식장 관계자는 언제 단속이 들어올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잠시 입국해 치러내야 하는 결혼식이었기에, 불필요한 것은 모두 생략했다. 


스튜디오 촬영, 생략. 

브라이덜 샤워, 당연히 생략. 

예물 예단, 생략. 

상견례, 음, 이건 생략할 수 없으니 간단하게.  


청첩장 사진은 집 앞 공원에서 아이폰으로 찍었다  



나는 원래 '축의금을 받지 않는 소규모 결혼식' (하객 50명)을 희망했다. 

하지만 그간 뿌린 게 많은 시댁에선 안 될 말이었다. 또 시댁 친지만 해도 30명이 넘어서, 50명이 무리이기도 했다. 


결국 '축의금을 받고 100명 정도로 하자'고 의견이 모이니, 나는 기왕이면 보고 싶던 사람들을 다 보고 싶었다. 공무원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체류할 기간이 짧았기에 결혼식 날에 모두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100명 정도로 계획이 잡히니 어느 결혼식장을 가든 1천 5백만만원은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2천 5백만원을 들여 200명 예식을 하자. 아싸리, 재밌는 파티 기획을 해보자. 

* 파티 기획은 (별도의 기획 인력이 없는 이상) 50명으로 해야 한다. 200명은 불가능. 불가능이었다. 잘 끝나서 다행인데, 누가 물어보면 다신 안하다고 하겠다.

 

나는 200명 하객에 밤 6시반부터 11시까지 하는, 재즈밴드 라이브 공연이 있고, 와인과 위스키가 무제한 제공되는 결혼식을 꿈꿨다. 아버님은 아주 불편한 기색을 비치셨다. 여러 가지 논리가 있었는데, (1) 밤이 늦으면 하객이 피곤하다, (2) 혼주도 피곤하다, (3) 술 값이 많이 나온다 등등. 어르신들은 일찍 가고 싶으면 가셔도 된다고 했는데, 아버님 입장에선 결혼식이 공식적으로 끝나야 본인이 자리를 비울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보다. 


이 때가 아마 아버님과 나의 첫 한 판이었다. 


며느리 v. 시아버지 (Adobe Firefly)



결론적으로 코로나 통금시간이 있다고 해서, 아버님이 원했던 오후 8시반과 내가 원했던 11시 사이인 오후 10시로 결론이 났다. 


신부 입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시아버님이 해주시겠다는 의향을 비치시기도 했지만, 

나는 최종적으로 엄마 손을 잡고 입장하기로 결정을 했다. 


'딸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 엄마보다 적합한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신부가 입장을 할 때 "아! 나도 엄마 손 잡고 할 걸!"이라고 하는 하객의 목소리가 결혼식 비디오에 잡혔다. 


정신이 없었지만, 식은 아주 좋았다. 

막판에 빌렸던 한복 2부 드레스도 우리에게 잘 어울렸고, 

내가 강하게 주장해서 어머니와 시어머니에게 사 입혔던 드레스도 너무나 너무나 이뻤다. 


내 드레스는 남편이 고르게 두었고 (아티스트다 보니 취향이 분명. 머리 풀라고 한 것도 남편.... 덕분에 면사포가 무거워 고생을 했다) 나는 엄마와 시어머니의 복장과 메이크업에 신경을 썼다. 

내 웨딩드레스의 3배 정도 되는 예산을 써서 두 분의 옷을 맞춰 드렸다. 


여동생의 결혼식 때 한복을 입은 엄마가 평소보다 덜 세련되어 보이고 풍채는 더 좋아보이는 것을 보고 반드시 더 예쁜 옷을 입히리라 다짐을 했던 것이다. 시어머니도 워낙 패션센스가 좋은 분이셔서 새로운 감각의 옷을 입어보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시어머님은 아버님께 말씀하는 것이 두렵다고 하셨다. 

"나... 니네 아빠한테 한복 안입는다고 말 못해..." 

그래서 시아버지는 내가 설득하기로 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말씀드리니, 아버님은 조금 당황하셨지만, 생각보다 쉽게 수긍해주셨다. 스타일보다는 오히려 "이런 옷은 비싼 거 아니냐"며 가격에 더 신경을 쓰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시어머님은 분명히 시아버님이 단둘이 있을 때 화를 낼 것이라며, 

두 분 옷을 맞출 디자이너 선생님 쇼룸에 갔다가 한복집도 꼭 들러보자고 하셔서 두 곳 모두 예약을 잡았다. 



결론은....

핑크색 가운을 입어보시고 사랑에 빠지신 어머님은 "한복집은 취소해도 좋으니 여기서 좀 더 입어보자."고 하셨다. 결혼식 당일 사진에 담기지 않을 만큼 하늘하늘하고 우아한, 두 분의 모습이 신부보다 아름다웠다. 

두 분의 옷을 챙기기 위해 결혼식 내내 도와주신 '시지엔이' 이서정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어르신들을 보내고 나도 재즈 공연을 듣고 와인을 마시며 신나게 놀았다. 



이렇게 결혼식이 잘 끝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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