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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May 28. 2023

#6. 변호사시험을 보러 갔다가 신랑 달래기

남편 연봉이 적다는 아버님

2021년 11월에 결혼을 하고 2022년 7월에 미국 변호사시험을 보러 워싱턴 DC에 갔다. 

그러니 결혼을 하고 8개월이 흐른 시점이다. 


미국 로스쿨에는 통상 3종의 학위가 있다. 

J.D. (Juris Doctor): 우리나라의 로스쿨 3년 과정과 같다. 미국 대학 학부에는 법학 전공이 없다. Pre-law 같은 학위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그 학위를 받는다고 로스쿨에 더 가기 쉽거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다른 전공을 한 학생이 로스쿨에 간다. 왜 미국 로스쿨은 대학원 3년제가 되었나.. 1900년대 하버드로스쿨 학장을 했던 Roscoe Pound는 타 학부와 마찬가지로 법학부(LL.B.)와 대학원(Ph.D.) 과정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법학은 직업 학위이지, 학문이 아니다!"라는 타 학과의 반대와, 견습 직원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할 권한이 있던 당시 변호사 단체의 반대에 밀려 실패했다고 한다. The Rise of an Academic Doctorate in Law: Origins Through World War II by Gail J. Hupper :: SSRN 그렇게 우리나라에도 이식된 3년제 로스쿨 J.D. 과정이 미국의 일반적인 법학 교육의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LL.M. (Master of Law): 해외에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 변호사가 손쉽게 될 수 있도록 1년짜리 교육과정을 마련해둔 것이다. 미국의 변호사 자격은 각 주의 변호사협회가 부여한다. 각 로스쿨은 자신의 LL.M. 학위 과정이 전미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에서 요구하는 자격기준을 맞추어 인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ABA가 인증한 로스쿨의 LL.M. 학위과정 졸업생들은 J.D.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에서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S.J.D. 또는 J.S.D. (Doctor of Juridicial Science): J.D.를 법학 박사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S.J.D.를 법학 박사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S.J.D.는 보통 LL.M.을 이수한 학생들이 조금 더 공부하고 싶은 경우에 진학하는 학위이다. 3-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LL.M. 기간 동안에는 정신 없이 변호사 시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반면, S.J.D. 과정에선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정해 지도교수와 함께 논문을 쓴다. S.J.D.는 J.D.나 LL.M.과 다르게 변호사 시험 응시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LL.M.을 이수하지 않고 바로 S.J.D. 과정에 들어온 학생의 경우 변호사 시험 자격을 갖추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 위 3종의 학위가 아닌, Ph.D.라는 학위 과정을 다니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심플했다. 내가 받은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J.D.나 LL.M.은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S.J.D.나 Ph.D.를 선택했어야 했는데, 내가 지원한 학교 중에선 (1) 도시에 있고, (2) 학위 과정이 비교적 탄탄해 보이는 곳이 우리 학교였다. 후일 잘못된 생각으로 판명되었지만.... 


고로, 나는 아무리 변호사 시험 과목 이수를 많이 해도 시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변호사 시험을 보러 미국 로스쿨에 온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한국 공무원으로 복직할 계획이었고, 실컷 미국법을 공부해보고 싶다,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오롯이 글 쓰는 데에 집중하고 싶다 정도가 나의 마음이었기 때문. 하지만 우리 로스쿨은 생각보다 '연구 중심'으로 굴러가지 않았고, 로스쿨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으려면 J.D. 학생들의 수업을 듣고 이벤트에 참여하고 인턴십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스쿨에서의 Ph.D. 학생은 뭔가 계륵 같은,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변호사 시험 과목을 상당히 많이 들었고, 여차저차 알아보다 보니 워싱턴 DC에서는 26학점을 이수하면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 자격요건을 확인하는 데에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워싱턴 DC의 변호사시험을 관할하는 법원이 한국의 법학사 취득 요건이나 학점 이수 기준을 계속 바꾸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특이한 학위는 더더군다나 마지막까지 시험을 볼 자격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려웠다. 


결국 1,000불 넘는 비용을 내고 시험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시험을 보기 40일 전쯤이 되어서야 내가 자격요건을 모두 갖추었다는 통지를 받게 되었다. 요즘에는 DC 법원에 인력이 많이 확충되어 이메일로도 문의 사항을 쉽게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전의 Shanks라는 Director는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새로 오신 분은 훨씬 전향적이고 답장도 빨랐다. DC 변호사시험 기준이 궁금하신 분들은 걱정하지 마시고, 사무국 직원 분들께 이메일을 보내 보시길! 



문제는 시험 기간이 4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보통 J.D. 학생들도 60일은 오롯이 시험에 쓰기 때문에 나는 시험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다. 한창 미국 법학 저널(Law Reviews) 논문 마감 시점이어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버거웠다.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하며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 있기도 했다. 이혼할 때 재산이 어떻게 분할된다든지, 드라마 속 부잣집 도련님들의 믿을 구석으로 많이 나오는 trust fund가 어떠한 절세 목적에서 형성되어 온 관행인지, 숲 속의 집 앞에서 도로까지 가는 길을 계속 쓰면 나의 사용권이 생긴다든지 하는 잡학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당시 표현의 자유에 대해 미치도록 깊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고, 알쓸신잡 스러운 변호사 시험 강의노트를 공부하는 일이 어려웠다. 


얕고 차가운 물과 깊고 어두운 물을 마구 번갈아 수영하는 기분. 



시험이 가까워질 수록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비행기표를 끊어 DC까지 가면서 숙박비+항공료까지 1,000불 이상을 더 쓰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의심이 들었다. 이번 응시료는 자격 요건을 확인한 비용이었다고 생각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못 먹어도 고'하는 성격 탓일까. 결국 DC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변호사 시험 자료를 들춰보던 나를 발견... 하루에 32불 정도 하던 저렴한 에어비앤비는 다행히 깨끗하고 좋은 곳이었다. 그 에어비앤비에서 착한 분들과 한국 음식을 해 먹고 반주를 하기도 했다. 



에어비앤비의 뒷뜰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저렴한 방인데, 무료로 에스프레소 머신도 쓸 수 있다니. 참 친절하고 좋은 곳이다. 

공부가 부족한 채로 시험을 봐야 하는 내 맘도 모르고 7월의 DC는 후덥찌근하고 아름다웠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 잘 있었어?

나: 응. 밖에 앉아 공부하는 중. 날씨가 너무 좋네.

남편: ...

나: 왜?

남편: 응... 그냥. 

나: 미안. 혼자 있으니 외롭지?

남편: 아니야. 방금 아빠랑 통화했어.

나: 응. 뭐라셨어? 

남편: 역시 아빠야. 다짜고짜 지금 회사에서 연봉이 얼마인지 묻더라. 그래서 얼마라고 말해줬어. 

나: 근데? 뭐라셔? 

남편: 그걸로 생활이 되녜. 

나: 응?? (잘못 들었나?) 

남편: 그 돈으로 미국에서 생활이 되녜. 빠듯하지 않냐고. 

나: 응?? 안 빠듯한데?? 

남편: 그러니까!!!! 

나: 안 빠듯하다고 말씀 드렸어? 

남편: 응. 요즘은 너도 돈 벌고 있고. (난 학교에서 조교월급을 받는다) 렌트도 싸서 전혀 부담 없다고 이야기 했는데. 아빠 친구 딸은 구글인가 어디에서 xx억도 넘는 연봉을 받는다는거야. 그래서 지금 내 연봉 가지고는 미국에서 여유로운 생활 하기에는 택도 없는 거 아니녜. 

나: 헐... 너무하시다. 왜 그런 말을 하셨지? 

남편: 우리 아빤 날 맘에 안들어하니까. 항상 돈 생각 뿐이지 뭐. 내 삶엔 관심 없어. 

나: 아니야. 그럴 리가. 뭔가 팁을 주려고 하신건가? 왜 그러셨지? 자기가 능력이 많다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지? 

남편: 응. 난 내 일이 좋고 행복하고. 솔직히 미국 내에서 내 직역에서 이 정도 대우 받는 사람 진짜 드물어. 

나: 그래. 당연하지. 

남편: 내가 예전에 영주권 받았을 때도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O비자 받았을 때도. 그러니까 지금 내 일도 전부 돈으로만 생각하는거야. 

나: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야기해드리면 안돼? 자기네 회사 티셔츠 입고 코스트코가면 사람들이 막 반가운 척 인사하고 사인해달라고 하고 그러잖아. 

남편: 됐어, 듣지도 않을거야. 오히려 큰 소리만 날걸. 그래도 자기에게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하다. 오늘 하루종일 힘들었어. 

나: ......



남편의 가슴앓이는 그 다음날까지 지속되었다. 

남편은 신경쓰지 않는다면서도 도무지 그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버님은 도대체 왜 갑작스럽게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기죽이는 소리만 하고 끊으신걸까? 

목표는 기를 죽이는 것인가? 겸손해지라고? 연봉이 낮다고 타박을 하면 연봉이 올라가나? 


띠링. 

카톡이 왔다. 

"xx야. 변호사시험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너무 부담갖지 말고 편안하게 보려무나."

다정한 아버님의 말씀. 

내게는 이렇게 다정하신 분이 아들에겐 왜 그럴까. 

남편에게는, 아마도 본인의 아들이 한 가정의 main breadwinner가 되었다보니 의식주를 제공하는 데에 혹시 부족함이 있지 않은가, 본인이 도와줄 것은 없나, 하는 노파심에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내게는 왜 한없이 다정하신걸까? 

학생 신분이라서? 

본인의 자식이 아니라 채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걸까? 

공무원 시험 합격자로서 소급효도를 했으므로 미국 변호사시험은 떨어져도 된다고 생각하시나? 




아버님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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