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의 꿈은 오로지 국어 교사였다. 빌어먹을 면서기의 펜이 내 생년월일을 잘못 적고 지나간 덕에 본의 아니게 초등학교를 1년 ‘재수’하게 되었고, 그 적막한 시간 동안 집에 있던 책이란 책은 모조리 외워버린 것이 시작이었을까. 혹은 중학교 시절 교실의 소란스러움을 서슬 퍼런 카리스마 하나로 한순간 제압해 버리시던 국어 선생님의 모습에 매료된 탓이었을까. 나의 꿈은 한 번의 항로 이탈도, 한 번의 좌절도 없이 실현됐다.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던 해,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나는 곧바로 경기도의 중학교로 발령받았다.
물론 초보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 때문에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오기도 했고, 때로는 아이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짠 게 아닐까 하는 망상 같은 의심에 빠지기도 했다. 또한 “애들을 다 갈아 마시고 싶어!”(당시 ‘갈아 만든 배’ 음료가 유행이었다^^)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으로 아직 교직에 들어서지 않은 동기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활기찬 인사에 감동을 받았고, 수업 시간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실린 기대감에 뿌듯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설 때면 내 무대의 완벽한 마무리에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교직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도 하나의 작은 경쟁 사회였다. 어제까지 친구니 동료니 하면서 웃고 떠들던 선배 교사들이 학년말이 되면 서로 1등수를 받겠다며 교무실에서 핏대 세우고 손가락질에 욕까지 하며 싸웠다. 수업과 맡은 업무는 설렁설렁 대충 하던 동료 교사는 자기 승진 점수 계산에는 그 누구보다 영리했다. 나에게도 승진을 위한 이런저런 조언들이 쌓였다. 그럴수록 나는 수업에만, 내가 맡은 업무에만 몰두했다. ‘선생님 수업 짱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해?’ 나의 수업을, 나의 업무처리 능력을 인정해 주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나는 만족했다.
한 달 전부터 시간 외 근무를 달아가며 수능 시험장 책임 업무를 무사히 마친 후, 그 결과로 내려온 표창장을 회식 장소에서만 열심히 일했던 교무부장이 받아가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 했다. 아침에 공문을 던져주고 그날까지 계획서를 내라던 부장이 완성된 계획서를 본인의 이름으로 올린 것도, 내가 모를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 협의회에서는 ‘부장님 뜻대로 해 보세요.’하던 교감이 내가 올린 계획서를 무작정 반려할 때도, 아니면 ‘이걸 왜 이딴 식으로 마음대로 했어요?’라며 학생 꾸짖듯 들이밀 때도, 나는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이유를 계속 찾았다. 과속 알림음도 못 듣고, 정신을 차려보면 생각지도 못한 길을 지나고 있던 운전이 계속되던 어느 날, 길가 차단벽을 보며 ‘저기에 어떻게 차를 갖다 박으면, 죽지는 않게 다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나를 만났다.
그게 이유였다. 타인과의 갈등과 마찰이 두려워 모든 것의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것. 내가 조금 더 참고 내가 조금 더 하면 될 거라는 내 선의는, 그들에게 나를 ‘누르는 대로 군말 없이 상품을 출력해 주는 자판기’로 여기게 만들었다. 남들에게 항의를 하고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나를 다그치던 자책이 내 안을 썩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온순했다. 나의 이 힘듦이 타인을 향해야 할 정당한 분노인지 매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전히 엉망진창인 부서원의 일을 대신 수정해서 처리했고 담당 부장이라는 이유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애매한 일에도 책임을 졌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면전에서 듣기 힘든 말을 들을 때에도, 말보다 먼저 나오는 눈물에 대꾸 한마디 못한 채 이미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일에 치일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항의는 ‘학교를 옮기는 것’ 뿐이었다. 몇 년마다 학교를 이동해야 하는 공립 교사의 순환 근무제는 나에게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자 최후의 무기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경기도의 한 구석 전교생 30여 명뿐인 작은 학교에 와 있다. 남들은 승진을 위해 꼭 들러야 하는 곳이지만 나는 나의 마음을 보살피고자 찾은 은신처이다. 창밖으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나는 출퇴근길, 오십이 넘은 나를 ‘SM상을 지닌 최애 연예인’이라 칭송해 주는 아이들이 있는 곳. 다른 교사와 업무적으로 엮일 일이 없이 내 일과 수업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곳. 남들은 비겁한 선택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여기서 조금씩 나를 돌보며 ‘불온해지는 연습’을 해보기로 한다. 때로는 거절하고, 때로는 적당히 대충 하며, 나 자신을 자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지 않기로 한다. 다른 사람의 태도와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오롯이 나의 마음을 우선순위에 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