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 분석기

by 물마루


말문이 턱 막힌다. ‘뭐 또 외박을 하고 오겠다고?’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본다. 그는 당당하다. “연수년 선생님들하고 서울에서 1박 2일 하기로 했어.” 그리더니 가족 스케줄 전용 칠판에 날짜를 적어 넣는다. ‘아빠 연수년 모임’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연수년 모임 선생님들이라 봐야 다들 경기도 살 텐데, 굳이 서울에서 자야 해?’에서부터 시작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주일 전으로 올라간다. 뒤 베란다로 나가다 우연히 본 가족 스케줄 달력 속 남편 연수 일정이 4박 5일로 바뀌어져 있었다. 1월 초 가족이 모여 스케줄 달력을 갱신했을 때는 분명 2박 3일이었는데 말이다. 국어 교사 모임 연수가 그렇게 길 리가 없다. ‘이게 뭐지? 연수는 분명 2박 3일일 텐데. 그것도 첫날은 오후에 시작하고 마지막 날 오전이면 공식 연수 일정은 모두 끝날 건데’ 자세히 보니 첫날 오전에 ‘아빠 회의’라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오전에 생긴 회의 참석을 위해 하루 전날 출발을 하겠다는 거다. ‘KTX를 타면 공주까지 2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텐데. 굳이 전날 가서 자겠다고? 그래 회의는 그렇다고 쳐. 연수 끝나고 남은 1박 2일은 무얼 하겠다는 거지’ 기시감이 든다. 두어 달 전에도 그랬다. 가족 스케줄 달력에 없던 외박 일정이 적혀 있기에 무어냐고 물었더니 초임학교 발령 동기 선생님들과 등산을 하기로 했단다. 그때도 이미 일주일 전쯤 다른 피치 못할 외박 일정이 있었던 터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부럽지?”라며 씽긋 웃던 남편. 나는 대꾸 대신 서재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지금, 남편은 내 눈치를 살피며 주위를 맴돈다. 내가 뭔가 화가 났음을 느끼는 것일 게다. 평소보다 조심스럽고 빠릿빠릿하게 자신이 해야 하는 집안일들을 하면서 자꾸 내게 말을 건넨다. 쓸데없는 말들이다. 말문이 막혀버린 나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몇 번의 질문과 무 대꾸를 오가다 결국 남편이 폭발한다. “대체 뭐가 문제인데?”


그러게, 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걸까? 남편이 외박하는 것 때문에? 남편에 대한 애정이 넘쳐 남편 없이 하루도 못 지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할 만큼 그에 대한 신뢰가 바닥난 것도 아니다.(그리고 나는 배우자의 외도까지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외박 일정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통보’하는 남편의 태도 때문일까?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럼, 남편에게 “당신이 외박 일정을 통보하듯 전달하는 것에 나는 화가 나.”라고 말하면 되는 걸까? 그런데 왜 다른 일정들은 아무 때나 스케줄 달력에 적어놓기만 해도 괜찮은데 ‘외박’에만 이렇게 예민해지는 걸까? 다른 곳에서 잠을 자고 온다는 것이 나에게, 우리 가정에, 어떤 영향이 있는 것이기에 나는 그것을 문제 삼는가?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터져 버릴 것 같다. “아, 몰라, 그냥 짜증 나!”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울지 않아야 칭찬받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배웠다. 나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곧 어른스러움이고 집 안의 장녀로서 인정받는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나의 감정의 변화들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냥 내가 꾹 눌러버리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삼촌에 사촌에, 항상 10명이 넘었던 대가족. 사업 실패와 잘못 선 보증으로 밤낮 없이 일에 매달리셨던 아빠. 새벽마다 도시락을 4~5개씩 싸고 밤에는 세탁기에서 바로 꺼낸 교복을 매일 다리시던 엄마. 엄하기만 하시던 할아버지, 삼촌들과 사촌 챙기느라 정신없던 할머니. 어린 내가 느끼는 감정에 신경을 써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정을 느끼는 내 자신을 사치스럽다 여겼다. 그곳에서 내가 존재감을 인정받는 방법은 ‘무던한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쑥 찾아오는 서운함, 조직 체계에서 느끼는 불합리함, 매일 밤 찾아오는 불안함에도 나는 서둘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나의 감정을 무시할수록 나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프로다운 어른’으로 인정받아 갔다. 겉으로는 호수를 우아하게 유영하는 백조 같았지만, 수면 아래 내면은 태풍이 몰아치는 절벽 끝 바다처럼 위태로웠다. 이런 나 때문에 가장 힘든 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내 내면의 격정을 알 리 없으니, 그들에겐 너무나 생뚱맞게 느껴질 나의 감정선. 예고 없이 폭발하고 입을 닫아버리는 나의 기괴한 표현에 그들은 당황하고 답답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힘든 건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외면해 버린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 나를 잠식하곤 했다.


이제는 나는 그 불편한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한다. 나는 남편이 나에게 미리 상의도 없이 일정을 정한 것이 ‘언짢다(몹시 마음에 들지 않고 좋지 않다)’. 분명 지난번 비슷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같은 일을 한 것이 ‘노엽다(화가 치밀만큼 분하고 섭섭하다)’. 나는 ‘외박’이라는 것은 가족 구성원에게 미리 공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에 ‘굴욕적’이고, 나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다. 밖에서만 좋은 사람일 그가 ‘같잖고’, 반복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낀다.


감정에 관한 책과 사전을 뒤적이며 내 안의 감정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본다. 형체 없는 소용돌이 같던 감정들이 명확히 명명되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 감정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죄스러워할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정당한 마음들이었다. 내가 나의 감정을 허용하는 순간,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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