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읽어주는 남자]-박근형 지음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책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 읽는 게 아니라는 말,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내 책꽂이 프로그램의 목록이 이토록 휑한 것을 보면...... 아니, 아직은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항변해 본다. 이사하느라고 정말 정신없이 바빴고, 이곳에 와서도 적응하느라, 학원 다니느라 짬이 그다지 없었다고...... (자고로 말이 많으면 그건 변명일 뿐이다.)
그런 나의 게으름을 알고 신랑이 읽으라고 던져 준 책이 [중국 읽어주는 남자]- 박근형 지음, 명진출판-이다. '그래, 중국에 왔으니 중국에 대해 뭔가 좀 알아야 하겠지.'하는 생각으로 펼쳐보니 의외로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는 글이라 죽 읽어나갈 수 있었다. 중국의 역사를 통해 중국인들이 왜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세속적이고 부자가 되는 것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지, 한자가 중국인들에게 미친 영향 등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내용들이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이 싫어하는 발언은 정치이고, 중국 공산당이 허용할 수 있는 발언은 정치가 아니다."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정치에 관심 없어!"
그들은 '이것은 정치다!'라고 판단되는 순간 머릿속의 자물쇠를 잠가버리기 때문에 '관심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치에 관심이 없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자기가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중국 정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중국 공산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지하는 젊은이들, p51
작가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역사를 바로 보려 하는 냉철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권에 대한 비판을 나라에 대한 비판으로 착각하여 모든 것에 대한 비판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문제점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왠지 너무나 익숙하다. 얼른 뒤표지를 넘겨 출판일을 확인해보니 2010년 7월에 출판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작가는 우리나라와 다른, 중국의 단점으로 젊은 층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정권과 조국을 구별 못하는 것을 지적했는데 2016년 3월 현재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의 문제점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 되어버렸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중국 공산당은 옛날 청나라 왕실처럼 당을 보전하기 위해서 외국에게 영토를 떼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인민에게는,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변명하고 '중국은 이렇게 배포가 크다'며, 다시 '정신승리법'을 내세우는 것이다. 영토는 주었지만 '사실은 우리가 이겼다'고 인민들이 착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특이한 집단정신을 가졌다. 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지하는 젊은이들, p51
공산당 덕분에 부자가 된 5,000만 명은 자기 재산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 변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공산당을 욕하면서도 공산당을 지지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분열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공산당을 욕하면서도 공산당을 지지한다.
- 부자는 되었지만 '불안한 부자'가 되었다, p143
아, 어쩌면 이 책은 예언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보면 볼수록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똑같다. 6년 전 '너희는 이것밖에 안 돼'라고 말했던 우리의 자만이 너무나도 창피할 정도로...... 그럼 우리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못된 아이 손가락질하면서 닮는다고. 어쩜 이렇게 동생을 본 아이처럼 퇴보하여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왜 이런 교육체제를 유지해나가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현재 공산당 독재체제이다. 이런 교육을 해야만 국가를 통치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의심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애국'을 의심하면 안 된다.
- 모든 것은 교육 체제에서 시작된다, p205
역사교과서를 통해 끊임없이 애국을 주입시키는 중국 정부나, 정부 주도의 역사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라는 우리나라 정부나 학생들에게 고정관념을 주입시키고 '생각하기'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똑같다. 그것이 지금 당장 정권을 유지하는 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에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근본은 잘못된 것에 저항할 줄 아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판단하고 생각할 줄 하는 국민성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가르치라고 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을 비판하던 손가락이 이제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절대 가르침이 될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비판할 줄 아는 국민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