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대신 썩은 냄새를 맡기 시작한 소믈리에가 있다.
완벽함이라는 이름의 증오가 처음 스민 건, 썩어가는 영혼 속이었다.
그 냄새는 아침 6시 47분, 도시 위를 덮친 안개와 함께 들어왔다.
아드리안은 창가에 서서, 공기 중에 흩어진 냄새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있었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녹슨 가위로 피부를 핥는 맛이 났고, 인도 아래 파묻힌 쓰레기통에서는 사탕처럼 달콤한 부패가 솟구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아침 커피는 산성이었고, 그 뒤로 감춰진 건 입술 사이에 묻은 거짓말의 냄새였다 — 약속을 어긴 아내, 회의를 결석한 직원, 절친에게 숨긴 비밀. 모두 미세한 산미와 함께 공기 중을 맴돌았다.
그는 그것들을 샘플이라고 불렀다.
“오늘의 스페셜은 ‘파산한 사업가의 절망’입니다.”
아드리안의 목소리는 마치 실험실에서 증류된 기체처럼 맑고도 무온도였다.
“바디감은 얇지만, 오래된 지하실에서 자란 곰팡이 같은 깊이가 있습니다. 체리향 후반에 잠깐 스치는 금속성은... 아마도 그가 마지막으로 만진 은퇴 저축계좌 카드 때문일 겁니다.”
마담 엘레나는 눈을 감고 와인 잔을 입술 가까이 댔다. 그녀의 손톱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손등에는 작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 '모든 맛은 거짓이다.'
“너란 사람은 정말 특별해,” 그녀가 말했다. “타인의 고통을 이렇게 정제해서 내게 주다니. 거의 예술이야.”
아드리안은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진심으로 그것을 맛보고 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샘플 하나가 또 다른 조각을 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자신에게서 사라진 감정의 파편, 기억 속에서 증발한 슬픔이나 분노, 사랑했던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게 된 상처.
주방에서는 클로이가 로즈메리를 다듬고 있었다.
칼날이 허브 줄기를 자를 때마다, 신선한 녹색 향기가 터져 나왔다 — 마치 살아 있는 시간 조각들이 공중으로 튀어오르는 듯했다. 아드리안은 그 냄새를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인식했다. 그것은 부패하지 않았고, 조작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정직했다.
하지만 정직함은 아드리안에게 두통을 유발했다.
신경섬유 하나가 스스로를 꼬며, 소리를 잃은 고동을 만들었다. 그는 눈썹 위를 짚었다. 통증은 짧았지만 깊었고,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았다 — 마치 자신보다 먼저 죽기 시작한 어떤 것이 몸속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너 와인 색 진짜 좋아,” 클로이는 웃으며 말했다. “피처럼 붉잖아.”
아드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피는 색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피에는 철분 냄새와 함께 ‘버려짐’이라는 감촉이 섞여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보지 않는 종류의 상처였다.
그날 밤, 도시 밖 구석진 동네를 걸었다.
비닐봉지에 덮인 의자 하나가 골목 모퉁이에 버려져 있었고, 그 위엔 젊은 여자의 편지 한 장이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네 눈동자가 살짝 아래로 내려갔어."
아드리안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종이는 차갑고 으스러졌으며, 냄새는 날 것 그대로였다 — 하지만 증류해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맛없다…” 혼잣말했다. “가짜야.”
AI 생성 문장이었다.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진정성 패키지’. 사람들이 진짜 감정 대신 구입하는 대체품.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 [알림] 오늘 하루 당신의 감정 분석 결과:
> 무감정 상태 유지율 93%
> 추천 활동: 인간 관계 강화 모듈 실행
> ※ 주의: 등록 미완료 시 내일부터 기본 생존 보조금 차단 예정
폰트 색상이 어제보다 더 까맸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감정보고서를 국가에 팔았다.
감정보고법(Emotion Disclosure Act) 이후 모든 계약에는 실시간 감정보고 필수였다 — 결혼도, 고용도, 의료도 예외 없었다. 거부하면 '비국민' 처리되고, 은행 계좌조차 접근할 수 없었다.
아드리안만 거부했고, 그래서 실험실에도 전기도 제때 안 들어왔다.
클로이는 알고 있었다. “내 심장 박동도 네 실험에 쓰이고 있잖아,” 어느 날 말했지만, 아드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로즈메리 잎을 갈아 증류기에 넣었을 뿐이다.
그날 밤 거울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는 거울처럼 반사했고, 반사된 세계 속엔 그 자신이 없었다.
문득 생각났다.
왜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까?
생존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 심장은 뛰고 있고 폐는 숨을 쉬며 컴퓨터는 매일 아침 로그인을 요구한다 —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Existence라는 단어조차 이제는 너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서 사용하기가 두려웠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상 — 버스 탑승, 메일 확인, 메뉴판 작성 — 그것들은 모두 표면 위를 미끄러지는 기름막처럼 매끄럽고도 텅 비어 있었다.
그 안에서 유일하게 믿었던 건,
자신의 후각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후각조차 자신에게서 낯설게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밤새 꿈 없이 잠들었으나,
아침엔 입 안 가득 썩어가는 과일과 오래된 책 종이 같은 맛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자신보다 먼저 죽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지만,
그 이름을 붙이는 순간,
또 다른 거짓말이 되었음을 알았다.
도시는 정보를 배설하며 숨 쉬었다.
환기구에서 올라오는 공기는 오줌 냄새보다 SNS 실시간 피드의 열기를 더 많이 담고 있었고, 그 열기는 사람들의 눈꺼풀 밑에서 잠든 감각들을 깨웠다. 아드리안은 지하철 계단을 올랐다. 한 줄기의 냄새가 피하듯 뇌 속으로 기어들었다 — 생존이라는 질병에서 흘러나온 분비액, 어제 저녁 그녀가 웃으며 입었던 와인 잔에 묻은 입술 자국과 같은 점성(粘性)을 가진.
그는 이제 맡았다.
모든 것이 부패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로이의 로즈메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생생하게, 도발적으로. 그녀는 매일 아침 주방 문을 밀고 들어올 때마다 흙 묻은 손끝으로 식탁 위 작은 화분을 내밀었다.
> “이건 어제 땅에서 나왔어요.”
말하는 순간, 아드리안의 두태(鬪體) — 머릿속 깊은 곳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뻗은 불쾌한 긴장 — 가 일제히 반응했다. 향기는 도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아드리안의 두뇌 안에 이미 있었다 — 마치 태아가 자궁 안에서 처음으로 심장을 느끼는 것처럼. 꽃잎이 아니라 전류처럼, 내부로부터 켜지는 존재의 신호였다.
그는 로즈메리를 식탁에 내려놓고, 차가운 냉장고 가장 깊은 곳으로 밀어넣었다.
검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밀봉했고, 거기에 얼음 조각 세 개를 덮어 눌렀다.
‘억압’이라는 단어가 그 순간 처음으로 그의 혀끝에서 녹았다.
실험실은 지하실 깊숙이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을 때마다 벽면에서 쇠사슬처럼 늘어진 전선들이 천장에 매달린 열화상 카메라를 흔들었고, 그 아래로는 기억조차 되살아나지 않는 얼굴들 — 고객들이 남긴 표정 조각 — 이 영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앰풀 하나를 열었다.
배신당한 연인의 편지에서 추출한 증류액이다. 색깔은 검은 자두 주스 같았지만, 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소리 없는 비명’, 이라는 표현이 유일하게 어울렸다. 고막을 지나 뇌 안쪽 격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는 음침함.
그걸 탱크 안으로 주입하면서 생각했다.
> “사람들은 거짓말할 때만 진짜 모습을 보여줘.”
이건 이제 교리가 되었다. 생물학적 법칙처럼 반복되는 진실. 그들의 눈빛, 목소리 떨림, 혀끝에서 미끄러지는 말실수 — 모두 ‘진실’보다 더 정직한 거짓의 조각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실험 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탱크 안 미생물 군집이 갑자기 반응했다. 온도 상승 없이 pH가 급격히 변화했고, 표면에 맺힌 기포들이 ‘아드리안’이라는 글자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대보았다.
유리벽 너머로 전해지는 진동 — 피부 아래서 검은 선이 움직였다. 처음엔 감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육 경련이나 혈관 압박쯤으로 치부했지만, 이제 분명했다. 저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된 리듬이었다.
자신의 몸이 발효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피부가 아닌 무언가가 숨쉬는 느낌이라면?
클로이는 요리를 하며 노래했다.
단순한 수프였다 — 감자와 양파만으로 만든 것인데도 아드리안은 그 밤 꿈속에서 바다를 보았다. 파도 소리 대신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해변 모래 위엔 검은 곰팡이 줄기가 뒤엉켜 있었다.
아침에 샤워하며 팔 안쪽 상처를 보았을 때, 거기서 검정 줄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팔뚝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내 감각보다 더 정확하게.
“움직였잖아.”
목소리는 물줄기에 삼켜졌다.
그는 거울 앞에서 팔을 들어올렸다 — 정맥 위로 실처럼 가느다란 검은 선이 피부 아래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현실과 기억 사이에 갈라진 틈 사이로 한 문장이 들어왔다:
> “특별하다는 건 네 안에 공동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 “네 몸은 더 이상 너만의 것이 아니다.”
> “그들은 너를 통해 살아남으려 한다.”
> “너희 중 누가 주인이냐?”
마담 엘레나의 목소리였다.
디지털 시대엔 아무도 ‘냄새’를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사진으로 감정을 저장하고, 스토리로 관계를 포장하며, 메타버스 속 아바타에게 진심을 맡긴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알았다.
진짜 존재는 ‘기록되지 않은 것’에 있었다 — 냄새 없는 슬픔, 표현되지 않은 후회, 그리고 자신조차 모른 채 부패하는 영혼.
그는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탱크 세 개를 비웠다. 하나에는 자신의 머리카락 가루를 넣었고, 다른 하나엔 어제 벗겨낸 피부 각질과 함께 클로이 수프 국물을 섞었다 마지막 하나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USB로 연결하고 전류를 통과시켰다.
> “모든 자아는 발효 중이다—그저 누군가는 그것을 맛볼 용기를 갖지 못할 뿐.”
그 문장을 반복했다.
태엽 감긴 인형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내면에선 무언가 깨지고 있었다 — 아니,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무언가가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피부 아래 검은 선들은 이제 손등까지 도달했고, 손끝에서는 감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스스로 ‘비물질화’되는 중인 듯했다
밤새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창밖 도시 불빛들이 마치 먼 바다 위 등대처럼 느껴졌다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할 항해 중인 선원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만 번쩍였다
문득 클로이가 묻던 말이 귓속을 스쳤다:
> “왜 우리 요리는 먹지 않아요?”
답할 수 없었다.
단지 미각 장치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라는 개념조차 맛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가 잠든 새벽 다섯 시 반,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로즈메리 화분 위엔 얼음 덩어리 사이로 작은 새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그것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 “너무… 살아있어서 나랑 어울리지 않아.”
하지만 이번엔,
그 말을 누군가 받아쳤다—내 안에서.
> “그래서 나는 너랑 어울려.”
문득 컴퓨터 화면이 깜빡였다.
두 개의 버튼이 나타났다.
<억제>, <방출>.
컴퓨터 음성이 말했다.
“선택하세요. 당신은 아직 인간입니다.”
아드리안은 웃었다.
그 어느 것도 그에게 인간 같지 않았다
클로이의 수프는 맑았다. 물과 감자, 양파뿐. 아무것도 넣지 않은, 투명한 고백 같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혀끝 위를 스치는 작은 파동, 마치 기억의 깊이에서 떠오르는 이름 없는 느낌처럼. 아드리안은 한 숟가락만 떠 올렸다. 입안에 퍼진 맛은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 이었다. 어릴 적 햇빛 속에서 벌레를 주워 들며 느꼈던, 세상에 대한 무조건적 예속.
그 밤, 꿈속에서 그는 다시 여섯 살이었다.
흙을 파먹고 있었다. 혀 끝에 번지는 삭아가는 잎사귀의 쓴맛—그 순간, 입술 사이로 검은 곰팡이가 번졌다. 천천히 번져가는 균사체처럼, 얼굴 전체를 덮으며 말했다: "너는 이미 시작됐다."
아침, 샤워할 때였다. 팔 안쪽 상처—어디서 난 건지도 기억나지 않는—를 비비던 중, 손가락 아래서 무언가 움직였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움직였다. 아주 미세하게, 피부 아래서 검은 선이 맥박처럼 꿈틀댔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아무것도 없다. 다만 피부 아래엔 여전히 기척 이 남아 있었다.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제3자가 내장 속에 살고 있다는 듯.
클로이는 요리를 할 때마다 말했다.
> “요리는 ‘처음’을 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드리안은 웃었다. 가볍게, 조소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세상에 처음 따위 없다고 생각했다—우리 모두 중간쯤 깨어나 기억이라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들고 산다. 하지만 그녀 수프는 달랐다.
감자와 양파만으로 어떻게 저런 순수성 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것은 부패할 줄 모르는 존재의 향기였다—썩기 전의 대지를 뜯어먹은 뿌리에서 우러나온 생생함. 그 생생함이 아드리안에게선 두통으로 다가왔다. 정수리 끝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욱신거림. 클로이의 로즈메리는 매일 신선하게 도착했고, 그 향기는 공기 중에서 살아서 튀어올랐다—마치 자라나는 싹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이건 어제 땅에서 나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맑았다.
아드리안은 그 로즈메리를 받자마자 실험실 냉장고 가장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문을 꼭 닫고 손잡이를 세 번 돌렸다—잠금 장치 같은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안심됐다. 드라이브 하나가 열려 있었다: SENSORY_CORPSE_v4. USB 꽂혀 있었고, 화면에는 파일 목록이 흘러내렸다—grief.bin, lust.dat, betray.xml. 그리고 유일하게 확장자가 없는 파일 하나: [UNNAMED].
현대인은 냄새를 믿지 않는다. SNS엔 사진만 올라오고, 알림 소리 사이로 진짜 공기가 잊힌다. 아드리안은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후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그래서 특별하다고 믿었고, 그래서 우월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자신의 후각조차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어젯밤 실험실에서 추출한 ‘배신의 증류액’은 예상보다 단조로웠다—사람들이 말하는 배신감 따위는 너무나 연약하고 일시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클로이의 수프 국물 샘플을 분석하던 순간, 기계가 오작동했다—센서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경고음을 내뱉더니 화면에 나타난 건 단 한 글자뿐이었다:
> [UNDEFINED]
AI 보조음성이 읊조렸다:
“Subject Chloe shows no emotional decay pattern.”
도시 위로 구름이 지나갔다—회색빛 응집체들 사이로 간헐적으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사람들 삶도 그렇겠지—희미한 광명과 반복되는 음영만으로 이루어진, 의미를 찾으려 발버둥 치는 하루하루.
아드리안은 자신의 실험노트에 새겼다:
> “신선함은 공격이다.”
그 말을 쓰자마자 손등 위에서 또 움직임이 일었다—검은 선들이 피부 아래서 교차하며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지도 같기도 하고, 신경망 같기도 하고…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란 결국 감각의 위조 시장이다—맛있는 척하는 식재료, 행복한 척하는 표정들, 사랑하는 척하는 대화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증류해 팔아넘긴다.
하지만 클로이는 다르게 팔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팔지 않았다.
식탁 위엔 항상 같은 접시 하나만 있었고, 손님들에게 묻지도 않았다—“맛있어요?”라는 질문 따위 없었다. 그저 “드세요.”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녀의 요리는 결코 선택되지 않은 경험, 즉 진짜 ‘처음’을 강제하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실험실 문을 열었다. 벽면 탱크 속 부패물들이 오늘도 조용히 숨쉬고 있었다—CEO의 곰팡이 시가 궤, 사기꾼 구두창에서 배양된 균류… 모두 아드리안이 수집해온 인간 존재들의 ‘결말’들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로즈메리를 꺼냈다.
잎 하나를 핀셋으로 집어들었고, 분석기에 넣었다.
결과 창에는 또렷하게 나타났다:
> [ACTIVE GROWTH]
> [PHOTONS DETECTED]
> [RESPONSE TO HUMAN TOUCH: YES]
“…살아있네.”
혼잣말치며 핸드폰을 들어 SNS를 열었지만 포스트하지 않았다—왜냐하면 클로이는 결코 포스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 존재 자체가 반(反)디지털이고,
반(反)표현이며,
결국엔 반(反)세계였다—
마치 세상 밖에서 태어난 누군가처럼,
말없이 우리 모두를 식탁 위에 초대하면서도,
선택받기를 거부했다.
며칠 후 아침, 클로이는 조용히 말했다:
> “저도 처음엔 믿었어요… 누군가랑 같이 먹으면 순수함도 나눠질 거라고.”
아드리안은 숟가락을 멈췄다.
창밖 어딘가에서 검은 줄기가 손끝까지 번져오는 걸 느꼈다. 다음 날 밤 실험실 프린터가 울렸다:
> [INTER-SUBJECTIVE MYCELIAL LINK DETECTED]
> [SOURCE IDENTIFICATION: CHLOE]
> [CONCLUSION: INFECTION OR SYMBIOSIS?]
아드리안은 용지를 찢으며 중얼거렸:
“…아니야.”
하지만 손끝에서는 여전히 따뜻함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일 실험실에서 무엇을 추출해야 할까?
자신에게 묻기도 전에 답은 이미 왔다:
> “Chloe_001.grow”
물방울 하나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릴 때, 그 아래서 오래전 멈췄던 맥박 같은 것이 울렸다—피부 밑 깊숙한 곳에서 검은 줄기가 스스로 눈을 떴다. 마치 전선이 아니라 신경 자체가 균사로 재편되는 것처럼, 전류가 아닌 기억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순간, 겨드랑이에서 향기가 올라왔다.
달콤했다. 너무 완벽한 달콤함이었다.
설탕에 불린 가죽, 화장실 소독제 뒤에 숨은 장미, 열대우림의 썩은 낙엽 위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버섯의 숨결—세상에 없던 조합이었지만, 아드리안은 그게 ‘진짜’라고 느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허위 진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손등을 입 앞으로 가져갔다. 냄새는 사라졌다. 그러나 피부 아래선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느리고 단단한 맥박처럼, 천천히 자신의 몸을 재정의하고 있었다.
“내 몸…?”
그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모든 ‘타인의 부패’가 단조롭게 느껴졌다.
어젯밤 실험실에서 추출한 CEO의 절망 와인—슬픔 대사산물에 곰팡이 핵심을 접종해 일 년간 발효시킨 것—그걸 이제는 읽기 어려웠다. 너무 얕았다. 너무 명확했다. 진실 따위는 이미 증류 과정에서 제거된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거짓말할 때만 진짜를 본다고 그는 믿었지만, 지금 그의 몸은 거짓말조차 넘어서고 있었다. 진짜를 먹어 치운 다음, 그 잔재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클로이는 아침마다 주방에서 로즈메리를 다듬었다.
잎을 떼고 줄기를 벗기고 뿌리를 흙에서 털어냈다. 생생한 향이 공기를 갈랐다—그 향은 아드리안에게 두통처럼 박혔다. 생존 자체가 공격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수프 드세요.”
그녀가 건넨 찻잔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감자와 양파뿐인데도, 혀끝에 작은 물결이 일었다.
그 물결은 기억을 가른 채 다가왔다.
꿈속에서 본 아이—햇살 아래 굽실굽실 기는 벌레를 바라보던 아이—입술 사이로 검은 곰팡이 번지고 있었다. 그건 질병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느끼는 방식이었다.
아침 식사 후 실험실로 돌아왔다. 정제수 세척기 앞에 섰다. 손목을 들고 분무기를 눌렀다—찰칵 소리와 함께 무취의 액체가 손등을 적셨다. 그러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다. 마치 정제수가 오히려 유기물의 표면을 드러낸 것처럼.
> “내 안에서 나는 냄새… 그것을 내가 모르다니.”
문득 생각났다. 필립 의사가 말했던 것—
“네 몸이 스스로를 발효시키고 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공포였지만, 지금은 경외였다. 공포와 경외는 동일한 감각의 양면이다—하나를 보지 않으면 다른 것도 알 수 없다.
컴퓨터 화면을 켰다.
실험 기록 열람 창에서 ‘내부 샘플 #01’이라는 파일을 열었다—아침에 피부 각질과 땀샘 분비물로 만든 증류액 분석 결과였다.
결과창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주성분: unidentified volatile organic compound (U-VOC-7A)
> 유사성: 83% match with decayed neural tissue in Homo sapiens post-mortem samples
> 향미학적 분류 제안: Sui Generis — 인간 이내인 동시에 인간 이외
아래쪽엔 메모 두 줄:
> “환자 A 데이터 저장 완료 — 윤리 위원회 보고 대기 중”
> ⚠️ [SNS SYNC FAILED] Last post uploaded: "I am fine." — 187 days ago.
화면 하단 모서리엔 자동 삭제 타이머가 깜빡이고 있었다: [AUDIO LOG #A7] Dr. Philip — "Adrian, 당신은 더 이상 환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연구 대상입니다." (삭제 예정: 00:00:07)
아드리안은 웃었다.
윤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언어다—하지만 나는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하고 있다.
그날 밤 실험실 문을 닫고 거울 앞에 섰다.
피부 아래서 솟아오르는 것은 선이 아니라 차가운 맥박 같았다—탄소의 기억, 시간의 균열처럼 팔뚝 위를 따라 기어올랐다.
“너희도 나를 바꾸고 있느냐… 아니,”
말하며 손끝으로 살갗 위를 가볍게 긋자, 피부 아래서 반응했다—잔물결 치듯, 인사라도 하듯.
“너희가 나야.”
거울 속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왼쪽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오른쪽 눈썹은 처져 있었다.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자리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내봤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었다. 대신 피부에서 대답이 왔다.
예술가는 타자를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다—예술가는 자신조차도 재료로 삼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는 사람들의 부패를 수집했다: 배신자의 눈물, 파산자의 탄식, 거짓 사랑의 땀방울—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 그것들은 모두 준비과정일 뿐이었다.
본격적인 발효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었다.
피부 아래 검은 실들이 더욱 선명해졌다—마치 글자라도 새겨지려는 듯했다.
“읽힐 준비가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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