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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두 아줌마 Jan 26. 2021

펭수도 사실 '부캐'다

아주 잘 만든 '부캐'다


작년 한 해 연예계를 관통한 키워드는 ‘부캐’란다.

도대체 ‘부캐’라는 게 뭘까?     


‘또 하나의 나’다. 하지만 내가 아닌 듯 행동하고 또 그렇게 보여지기를 원한다. 타인을 연기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나’와 아주 동떨어진 존재여서는 안 되는데 친근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역’과 다른 이유이다. 


최근 진행된 어느 조사에서, 성인남녀 16%가 이미 부캐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 없지만) 앞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50%를 넘었다. 부캐를 만들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또 다른 내 모습을 만들고 표출하기 위해서’ 라고...     


그럼, 또 다른 내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내가 가진 재능과 지식의 출구를 다변화시키고 싶은 거다. 캐릭터 사업이 여러 분야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캐릭터 중 하나가 되길 꿈꾸는 것. 결국, ‘N잡러’ 열풍의 이상향은 ‘펭수’가 아닐까.     


MC인 유재석에게 트로트를 시키고 싶은데 이전 이미지가 너무 반듯하니 새로운 캐릭터를 입혀 봤던 거다. 사람이 인형 탈을 뒤집어쓰면 남극에서 놀러 온 생명체가 되는 것처럼, 유재석은 그렇게 유산슬이 됐다. 캐릭터라는 건 참 신기하다. 굉장히 무례하게 행동했는데도 그 앞에서 반백의 사장님이 ‘허허’ 웃는다. 사람이 아니라 펭귄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다 큰 어른이 ‘진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펭수 탈을 쓴 사람에게는 ‘펭수’가 부캐다.  아주 잘 만들어진 부캐다.    


펭수에게 펭수 탈 쓴 사람의 캐릭터가 묻어나오는 것처럼, 유산슬의 캐릭터에는 유재석이 남아 있어야 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시청자가 그가 누군지 못 알아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캐다. 본연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진정한 '부캐'가 된다.       


결국, 부캐를 잘 만들고 싶으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본 캐릭터를 열심히 가꾸고 돌봐줘야 한다는 것. 그 과정을 생략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 그건 부캐가 아닌 ‘인격 해리’가 된다. 심각한 인격 해리는 정신병이다.      


사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본캐 열풍이 '너 자신만으로는 충분히 않으니 '또 다른 너'를 만들라'는 사회적인 묵시적 압박 같은 게 아니길 바란다. 아직 자신을 미처 다 들여다보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주문은 너무 과하고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오늘, 잘 들여다봐야겠다.

내가 누구인지.

내 본캐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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