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때로는 더 폭력적이다.
영화 관련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즐겨보는 편이다.
이번 편에서는 '어린이 학대와 방임'에 관한 영화를 다뤘다.
(한국 영화 <어린 의뢰인>과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
학대에 관해서는 모두 한마음이었다.
얼마 전 발생한, 16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의 폭력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건에 온 국민이 치를 떨고 있는 터라 예능 스튜디오의 분위기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물리적인 폭력은 정말 나빠! 안돼!
그러나 방임에 관해서는 살짝 반응이 달랐다.
<아무도 모른다>는 네 명의 아이가
출생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에게, 사회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는데, 어린 아들에게 하는 엄마의 이 말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네 아빠도 떠났었잖아. (네 아빠는 그랬는데)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거니?”
출연자 중 한 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마도 이 장면을 통해 '떠남'을 선택했던 엄마의 입장을 보여 주려 했을 거라는 해석을 내놨다.
그럼 우린 이 장면을 보며 아주 조금이라도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건가?
‘그래,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엄마도 행복 찾아 가야지.’
아니면, 칼을 던져야 할까?
"터진 입이라고 말은 잘도..." 이러면서.
이도 저도 아니면 도인이 되는 거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관점이 있구나. 어험.'
이런 참혹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면서 담담한 어조로 짧게나마 엄마의 관점까지 챙기다니, 감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방임에 학대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던 건,
얼마 전 일어났던 ‘라면 형제 사건’과 ‘내복 아동 사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나가야 했던 부모들과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만나 생긴 사회적 비극들이 아직 우리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본 영화 스토리는 이런 사회적 불행과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사실, 영화 속 엄마는 돈이 없어 돈을 구하러 떠난 게 아니었다. 마음이 없어 떠났지.
게스트로 나온 인권 침해 사건 전문 변호사는
‘방임은 학대만큼 나쁘다 ‘는 걸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얘기하러 출연했던 걸로 보이는데,
정작 프로그램은 사회적 책임과 사회 시스템 정비 필요성 강조에,
'엄마도 사정이 있었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까지 던져주며
논점이 살짝 흐려진 채 마무리된 느낌이다.
그녀는 '학대만큼 나쁜 방임이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목소리 높여 심각하게 얘기했는데,
출연자들이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방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이번 프로그램은 조금 부족한 듯도 보였다.
이 영화 속 방임 사건의 1차적인 원인은 '부모의 직무 유기'였는데
어쩐지 그런 얘기는 사회적인 이슈에 휩쓸려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
그 점도 아쉬웠다. 너무 당연해서 안 한 얘기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럴수록 더욱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실, 방임도 폭력이다.
정신적인 폭력.
'도덕'이라는 게 뭘까? '윤리'는?
선진국의 자유로운 사례들을 보면 그런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원칙은 있는 것 같다. 약자를 보호하는 거다.
AI 인간 '이루다'에 관한 많은 논란 가운데 하나는
AI를 만든 회사에서 도덕과 윤리에 대하여 로봇에게 '확실히' 가르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 걱정도 된다.
먼 훗날, 아이 넷 딸린 엄마 혹은 아빠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AI가 이렇게 대답해줄까 봐서 말이다.
“당연히 떠나야지. 네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데. 국가가 운영하는 아동보호소 전화번호 가르쳐줄까? ”